[아시아경제 황서율 기자] “서울에 가을을 선물한 듯한 공간이네요. 비오는 날에도 우산쓰고 오기 좋고, 일부러 찾아 올 만 합니다”
9일 오후 1시께 찾은 송현동 부지. 가을비가 내려 쌀쌀한 날씨임에도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산책나온 시민들로 활기찬 분위기가 전해졌다.
코스모스, 해바라기가 심어져있는 꽃밭과 달 모양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던 한 시민은 내리는 비에 가방과 옷이 다 젖었는데도 얼굴엔 웃음이 묻어났다.
100년 간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있어 시민들에겐 미지의 영역이었던 송현동 부지가 지난 7일부터 녹지광장으로 임시개방됐다.
서울시는 이번 공원 개방을 통해 부지를 둘러싸고 있었던 4m 높이의 장벽을 1.2m 돌담으로 낮추고, 서울광장의 3배 정도 되는 부지에 잔디광장과 야생화 군락지를 만들었다.
시 관계자에 따르면 앞으로 이곳에서 11월 중순까지는 다양한 가을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생긴 탁 트인 공간에 시민들은 개방감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송현동 부지 때문에 가로막혔던 경복궁~북촌은 광장 내부 보행로와 연결됐으며, 공원에서는 뒤편 인왕산과 백악산도 조망할 수 있다.
친구들과 방문했다는 김태현씨(51)는 “인근 직장이 있어 개방되기 전에는 (송현동 부지 옆)감고당길을 빙 돌아서 출근을 해야 했는데 담장이 없어져서 좋다”며 “꽃들이 피어있는 모습이 좋아 일부러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고 전했다.
인근 동네에 거주해 가족들과 함께 나온 이모씨(45)는 “과거에 막혀있던 공간이 열리니 동네가 더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여기가 닫혀있었던 지가 100년도 넘었잖아” 송현동 부지의 역사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시민들도 있었다.
경복궁을 바라보고 오른편에 위치한 이 곳은 조선후기에는 왕족이 살았던 곳이다.
당시 소나무 숲이 있었다던 송현동 부지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 시는 양묘장에서 키운 소나무 40여 종을 공원에 심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일제강점기 식민자본인 조선식산은행 사택이 들어서며 4m의 높은 담이 쌓였고, 광복 후에는 1997년까지 주한미국대사관 직원의 숙소로 쓰였다.
이후 소유권을 갖게 된 삼성생명, 대한항공이 각각 미술관, 한옥 호텔 등을 지으려했지만 무산되고, 자금난을 겪던 대한항공이 매각을 결정하면서 이 부지가 시민들의 품에 돌아온 것이다.
이모씨(51)는 “담장에 가린 것만 봐서 어떤 공간인지도 몰랐는데, 오늘 와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한항공의 3자간 합의를 통해 소유권은 올 7월 초 대한항공에서 LH로 변경됐다.
서울시는 강남구 서울의료원 남측부지와의 맞교환을 통해 소유권을 획득할 예정이다.
송현동 부지의 변신은 한번 더 이뤄진다.
현재 임시개방된 이 곳은 2025년부터 공사에 들어가 2027년 이건희 기증관을 품은 문화공원으로 개장된다.
시는 현재 기본계획안을 마련한 상태이며 설계지침을 정하고 내년 상반기 국제 현상공모를 거쳐 2024년까지 구체적인 설계에 들어간다.
시의 계획에 시민들은 기대 반 우려 반 저마다의 생각을 공유했다.
김상현씨(51)는 “설계 공모를 할 때 지역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이질적인 공간이 되지 않고 우리 것과 현대적인 것이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선택할 수 있게끔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모씨는 “서울에는 건물로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없다”며 “이 곳은 비워두는 공간으로 계속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황서율 기자 chest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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