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성장 기대·주주환원 기업 등 선별
30일부터 지수 실시간 제공 계획
11월 ETF 선봬 자금 유입 활성화
정부 추진 밸류업 프로그램 연계
기업들 참여 저조해 과제도 산적
전문가 “지배구조 개선 노력 필요”
선진국과 비교해 부진한 성장을 보이는 국내 증시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거래소가 24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발표했다.
지수를 통해 성장이 기대되고 주주환원에 적극적인 기업을 선별하고 11월 이를 기초로 한 상장지수펀드(ETF) 상품을 출시해 연기금을 비롯한 투자자 자금 유입을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들의 참여는 여전히 미흡해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래소에 따르면 총 100개 종목으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오는 30일부터 시장에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지수에는 정보기술과 산업재 관련 종목이 각각 24개, 20개로 가장 많이 포함됐고 헬스케어 12개, 자유소비재 11개, 금융·부동산 10개 등 종목이 담겼다.
코스피 시총 상위 종목에서는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를 비롯해 현대차, 기아, 셀트리온, 신한지주 등이 포함됐다.
거래소는 산업군별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해 특정 산업에 편중되지 않고 고르게 종목을 구성했다.
초대형주에 지수가 쏠리지 않도록 개별종목의 지수 내 비중은 15%로 제한했다.
코스피와 코스닥 종목 비중은 7대 3 수준이다.
밸류업 지수는 투자자가 국내 시장을 대표하는 종목 중 수익과 주주환원 등 향후 성장이 기대되는 종목을 한눈에 파악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시총 상위 400위 내 종목을 대상으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기업은 제외했고, 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을 한 종목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증권가에서 저평가 기준으로 삼는 주가순자산비율(PBR)과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중심으로 지수를 구성했다.
지수는 올해 첫 개장일인 1월2일을 1000포인트로 잡아 기준점으로 삼고 유동 시가총액에 따라 오르고 내리도록 설계됐다.
종목은 매년 6월 선물 만기일 다음 거래일마다 연 1회 변경한다.
투자자가 밸류업 지수에 투자하면 지수에 포함된 우수 기업들로 자금이 흐르고, 이는 다시 기업들의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확대 노력으로 이어져 기업가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거래소의 구상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도 연계해 우수 밸류업 공시기업과 표창기업은 지수 편입에 우대를 받는다.
올해는 조기 밸류업 공시기업에 대한 특례 편입이 이뤄졌고, 내년에는 표창기업과 밸류업 공시기업에 대한 편입 우대가 적용된다.
2026년 6월부터는 공시이행기업 중심으로 지수를 구성할 계획이다.
거래소는 코리아 밸류업 지수가 시총 위주로 설계된 코스피200, KRX200 등 기존 지수 대비 양호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봤다.
거래소가 2023년 6월부터 지난 8월까지 밸류업 지수와 코스피200 지수의 수익률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밸류업 지수(12.5%)가 코스피200(4.3%) 대비 3배 가까운 수익이 났다.
2021년 6월부터 지난 8월까지 최근 3년으로 계산해도 코스피200은 -16.5%를 기록했지만 밸류업 지수는 -7.0%에 그쳤다.
11월 초 출시하는 밸류업 지수 ETF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가 주요 자산운용사들에 수요조사를 한 결과 10개사 내외 운용사가 관련 ETF 출시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밸류업 지수를 기초로 한 지수선물도 11월4일 상장될 예정이다.
다만 정부가 추진하는 밸류업에 대한 기업 참여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 중인 밸류업 공시는 이날까지 전체 상장사(2594개사) 중 13개사(코스피 10개사, 코스닥 3개사)만이 참여를 완료했고, 26개 기업은 공시를 예고했다.
코스피 상장사 평균 PBR도 올해 초 1.48에서 전날 1.28로 가치 저평가 정도는 오히려 심화됐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의 평균 PBR은 3.2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가 대주주 위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 밸류업의 한계는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밸류업은 일반주주를 대하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지배구조 개선 노력 없이는 어렵다”며 “일본은 거래소 차원에서 기업들을 만나며 밸류업 참여를 독려했는데 우리도 적극적으로 기업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동국대 교수)은 “밸류업 지수가 PBR, ROE 등이 우수한 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밸류업 취지를 생각하면 유망기업에 비중을 두는 방향이 맞았다”며 “산업 평균 이상 기업들을 넣으면 기업가치에 투자해서 주가를 올리도록 하는 유인이 퇴색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일본의 주요기업들은 기금이 대주주이고 1인 소유주가 없는 구조를 갖지만 우리는 1인 대주주가 많다”며 “그런 차원에서 밸류업 프로그램 진행 속도가 더딜 수 있지만 일반 투자자들의 기대가 크고 행동주의펀드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 요구가 있는 만큼 기업들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위한 노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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