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법·밸류업 등 표류 우려 속
최 부총리 “경제정책 차질 없어야
여야 관계없이 국회에 적극 협조”
원·달러 환율 1주일 새 24.5원 ↑
원화 가치 주요국 중 최대 추락
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경제정책이 정치권의 탄핵 공방 장기화로 ‘올스톱’ 위기에 놓였다.
반도체 특별법, 상속세제 개편안 등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을 위한 주요 경제 법안은 물론이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민생 법안도 동력을 상실해 국회 통과가 불확실한 형편이다.
나아가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까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8일 정치권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던 반도체 산업지원 정책 및 관련 법은 처리가 요원한 실정이다.
특히 반도체특별법은 반도체 기업에 한해 주 52시간 근무를 예외로 허용하고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으로,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당이 중심이 돼 추진했지만, 거대 야당과 합의가 어려워졌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 장관들 합동성명… “韓 대외신인도 지켜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을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합동 성명문을 발표하고 있다.
장관들은 “무엇보다도 대외신인도가 중요하다”며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대외신인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재문 기자 |
반도체 기업의 통합 투자세액 공제율을 현행보다 5%포인트 높이고, 국가전략기술 투자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 시설 투자를 포함하는 정부 지원책도 처리가 난망한 상황이다.
주주환원 증가액 법인세의 5% 세액공제, 배당 증가액의 저율 분리과세 등 밸류업 프로그램도 좌초 위기다.
상속세 부담 완화를 담은 개편안, 정산 주기 단축을 골자로 한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납입 한도 상향 등을 담은 조세특례법 개정안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내년 예산안 처리도 ‘시계 제로’다.
앞서 야당은 정부안에서 4조1000억원을 삭감한 단독 감액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한 바 있다.
탄핵 공방을 둘러싸고 여·야·정부가 앞으로 증액 협상에 나서지 못한다면 준예산 편성 가능성도 있다.
준예산은 직전 회계연도 마지막 날(12월31일)까지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했을 때 최소한의 정부 기능 유지를 위해 전년도에 준해 편성된다.
준예산이 편성되면 공무원 인건비, 국고채 이자, 국민연금, 아동수당, 생계급여 등 기본적인 예산만 집행할 수 있다.
정부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경제정책은 차질 없이 추진돼야 한다”며 국회 협조를 부탁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발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관계부처 합동 성명에서 “경제문제만큼은 여야와 관계없이 조속히 처리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드린다”며 “역대 최고 수준의 소상공인 지원예산, 보다 두터워진 생계급여와 노인일자리 사업 등을 담은 2025년 예산안이 내년 초부터 정상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신속히 확정해주길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 진화에 나서고 있으나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특히 환율이 문제다.
지난주 원·달러 환율이 2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며 원화 가치는 주요국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 바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한 주간 24.5원(주간거래 종가 기준) 뛰었다.
특히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이 국회에 투입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율 변동폭(야간거래 포함)은 41.5원에 달했는데, 코로나19 확산 시기인 2020년 3월19일(49.9원) 이후 4년8개월여 만에 최대치였다.
 | 8일 서울시내의 한 환전소에 달러 등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뉴시스 |
원화 가치는 주요국 통화와 비교해도 가장 약세였다.
원화는 지난주 달러 대비 1.86% 평가 절하된 반면 유로화(+0.03%), 엔화(+0.10%), 파운드화(+0.26%), 대만 달러(+0.51%) 등은 강세였다.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원화 가치는 추가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시아 금리 및 외환전략 공동 책임자인 아다르시 신하는 “경기가 좋지 않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탄핵마저 불발해 원화가 급락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치 불안뿐만 아니라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도 원화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김수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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