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 불발이 또 다른 정치 혼란을 촉발하면서 경제계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정국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제로의 안갯속에 놓인 상황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로 큰 폭의 증시 하락·환율 급등 등 경제 후폭풍이 이어지자 정부가 서둘러 해외 카운터파트 달래기에 나섰다. 하지만 경제를 뒤흔드는 현 정국 혼란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국가신용등급 하향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는 등 정부의 위기관리가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이번주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인 S&P, 피치, 무디스 등과 컨퍼런스콜을 계획 중이다. 지난 주말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되면서, 윤 대통령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데 따른 동향을 살피겠다는 취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탄핵 폐기 결과에 따른 3대 신평사들의 입장을 듣고 현 경제 상황과 정부의 시장 안정 의지 등을 공유할 계획"이라며 "대면 미팅, 영상 컨퍼런스콜, 이메일 등의 다양한 형식을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기재부는 글로벌 신평사 외 해외 기관투자자와 국제기구 등을 잇따라 접촉할 계획이다.
경제 펀더멘탈과 정책대응력이 견고하다는 점을 적극 설명해 탄핵 불발과 정치 혼란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최 부총리는 전날 열린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무엇보다 대외신인도가 중요하다. 대외신인도에 한 치의 흔들림이 없도록 확고하게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대외 변수에 크게 흔들리는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와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대외신인도는 국가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는 이번 사태가 국가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될 경우 한국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선진국 수준인 'AA'(S&P 기준) 등급이다.
앞서 3대 신평사 중 하나인 피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신용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치는 탄핵 표결 전인 지난 6일(현지시간) "관건은 일련의 사태가 얼마나 빨리 종식되느냐에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신속히 해결되면 성장 위험은 완화될 수 있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위험을 상쇄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가계와 기업 신용 저하와 공공재정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신평사인 무디스 역시 계엄 사태 후폭풍이 적시에 해소되지 않으면 정부 역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평사들의 이번 사태에 대한 평가는 '관망'에 그쳤지만, 이는 탄핵 표결 전에 나온 것으로 탄핵 불발로 정치적 격변이 길어질 것이라는 가정을 반영하지 않은 견해다. 정치적 리스크가 실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 확인되면 등급(또는 등급 전망) 하향이 불가피하다.
실제 이번 탄핵 정국의 경우 경기 둔화 사이클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부정적 충격파의 확산 위험을 더 높인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반도체 수출 빅사이클과 국가 재정적 여력 등으로 국내 경기와 금융시장이 빠르게 정상화되면서 반등했지만, 현재는 수출 피크아웃과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통상 리스크, 내수 위축 등으로 대내외적 상황이 녹록치 않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 경우 외국 자본 이탈이 가속화하고, 기업들의 투자 활동 위축과 소비 심리 악화 등으로 내수 부진이 심화해 한국 경제 성장률 자체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짙은 이유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 불안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해외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국가신용평가 등급 하향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여야가 충돌을 중단하고 빠르게 교착 상태를 해소하지 않으면, 경제가 안정을 찾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