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진호 자생한방병원장 |
독일의 문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1929년 발간한 반전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넷플릭스 영화로 재탄생했다.
지난 1930년 판과 1979년 판에 이은 세 번째 영화화 작품으로 전작들보다 원작의 정수를 제대로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 전선에서 싸운 독일군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파울(펠릭스 카머러 분)’과 그의 친구들은 프랑스를 무찌를 생각에 들뜬 마음을 안고 전선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전쟁의 실상은 공포뿐이었고 집에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바로 옆을 달리던 전우가 화염방사기에 산 채로 불태워지거나 탱크에 깔리는 등 참혹한 전쟁터에서 파울과 친구들은 18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다.
마침내 휴전 소식이 들려오지만 파울은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위태로운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이처럼 영화는 전쟁으로 인해 겪는 정신적인 공포를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이 같은 장병들의 고통을 ‘포탄 작열에 의한 충격’ 혹은 ‘전쟁 신경증’으로 명명하고 하나의 증상으로 분류했다.
질환보다는 일종의 향수병이나 개인적인 나약함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심약한 병사들을 걸러내는 심리검사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증상을 호소하는 병사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 개인적 나약함보다는 환경적인 상황에 의해 발생하는 ‘질환’이라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우리에게 익숙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는 공식적인 의학 명칭이 등장하게 됐다.
PTSD는 전쟁 뿐만 아니라 천재지변이나 사고, 범죄 등 여러 요인들로 인해 발생한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질환인 만큼 PSTD의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을 겪었다면 자신과 주변인의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PTSD 증상을 경험하게 되면 불면증이 나타나거나 주인공 파울처럼 멍한 표정과 함께 집중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심할 경우 자극에 과민한 상태에 도달해 충동조절 장애나 우울증, 공황발작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이 같은 증상들은 환자의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한의학의 주요 치료법 중 하나인 침치료는 PTSD 치료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정수리 주변의 백회혈이나 미간에 위치한 인당혈 등에 침을 놓아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교감신경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교감신경은 신체를 흥분 및 긴장 상태에 놓이게 하는데 침치료를 통해 지나치게 활성화된 교감신경을 억제하면 불안감을 비롯한 PTSD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된다.
실제로 미군에서는 2016년부터 침치료를 적극적으로 전장에 도입 중이다.
미군에서 시술되고 있는 야전침술요법의 경우 PTSD 완화와 더불어 아편류 약물에 대한 의존성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화의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우리 모두를 100년 전 재앙으로 이끌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요즘. 각종 분쟁과 갈등, 건강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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