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영웅 칭호를 부여하고 메달과 훈장을 수여했다.
사람이 아닌 대상에 영웅 칭호를 부여한 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ICBM용 TEL의 기동성 향상에 성공한 점을 치하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당 중앙군사위원장 자격으로 '화성-17형' 관련 위관급 장교들의 승진까지 직접 챙겼는데, 이 역시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화성포-17형 발사대차 제321호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금별메달 및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했다"고 27일 보도했다.

발사대차는 이동식발사차량이다.
종래의 미사일이 고정진지에서 발사하는 개념이었다면 최근에는 이동 및 방향 전환 기능을 부여해 기동성과 생존 가능성을 높인 장비다.
미사일을 실은 긴 트럭 형태로, 원하는 발사 장소로 이동(Transporter)해 발사관을 기립(Erector)시킨 다음 발사(Launcher)까지 하는 방식이다.

북한은 지난 18일 화성-17형 발사 당시 숫자 '321'이 적힌 TEL을 사용했으며 이 TEL에 영웅 칭호를 부여한 것이다.
다만 이날 기념사진에는 '322' TEL이 등장했는데, 이미 미사일을 발사한 321은 미사일 적재 칸이 비어 있어서 미사일이 탑재된 322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사람이 아닌 대상에 영웅 칭호를 부여한 건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의문이 제기되던 ICBM용 TEL의 기동성 향상에 성공, 이를 치하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북한은 전국 각지를 돌며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발사했던 것과 달리 ICBM 발사 장소는 '평양 순안 일대'로 고정하다시피 했다.
순안비행장의 콘크리트 활주로에서 고정 지지대를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ICBM도 TEL을 이용해 발사하고 있다.

순안비행장은 북한 ICBM 조립 시설이 있는 신리 인근으로, 그간 북한은 길이 24ｍ에 액체추진제 탑재 시 중량 100t에 달하는 화성-17형 등 상당한 규모의 ICBM을 다른 장소로 옮길 능력이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지난 18일 발사 역시 순안 일대에서 이뤄졌지만, 다른 발사 때와는 위치가 조금 차이가 났던 점이 TEL 영웅 칭호 부여의 배경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북한은 올해 3월24일 순안비행장 남쪽의 신리에서 약 1㎞ 떨어진 장소에서 화성-17형을 쐈다.
순안비행장 민간 활주로의 남쪽 지점이었다.
이달 18일에는 민간 활주로에서 북쪽으로 이동, 군용 활주로가 나오기 전의 유도로 구간에서 발사한 것으로 포착됐다.
과거 발사지점과 약 4㎞ 떨어진 곳으로, 신리로부터의 거리를 계산하면 5㎞ 이상 이동한 셈이다.

4∼5㎞에 불과한 거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구간에 위장용 미사일을 여럿 배치해두면 유사시 발사 직전까진 진짜 미사일의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TEL 기동성 향상이 곧 미사일 생존 가능성 향상과 직결된다는 뜻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TEL 영웅 칭호 부여 등에 대해 "기존 ICBM 운용 과정에서 TEL의 기동성 문제가 있었을 텐데, 만족스럽지 못하던 운용성을 개선했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과거 북한 TEL의 기동성이 떨어져 평양 순안공항에서만 ICBM을 쏘는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는데, 이번 영웅 칭호 수여를 통해 ICBM 발사도 장소를 옮겨가며 기민하게 할 수 있음을 의도적으로 암시한 것"이라며 "향후 TEL을 활용해 ICBM 기습 발사를 감행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동체가 세계 최장 길이에 달해 '괴물 미사일'로 불리는 화성-17형을 자유롭게 이동시켜 쏠 수 있는 완성형이라는 점을 과시하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방과학원 미사일 부문 과학자와 기술자 등이 김정은 총비서에 대한 결의편지를 통해 "(김정은의 지도로) 세계최강의 절대병기인 화성포-17형이 최종시험발사에서 완전대성공할수 있었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는 지난 18일 발사가 화성-17형의 '최종시험'이었으며 이때 TEL의 성능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화성-17형의 TEL은 11축 22륜으로 제작됐다.
약 21ｍ 길이로 추정되는 기존 ICBM 화성-15형의 TEL은 9축 18륜이었는데 이보다 바퀴가 더 많아진 것이다.

한편 북한은 이날 화성-17형 발사와 관련된 군인들의 승진도 함께 발표했다.
특히 김 총비서는 당 중앙군사위원장 자격으로 위관급 장교들의 승진까지 직접 챙겼는데, 전문가들은 이 역시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당 중앙군사위원장이 말단 인사까지 개입한 건 매우 특이한 점"이라며 "화성-17형 발사 성공이 그만큼 북한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 뜻"이라고 해석했다.

장창하 국방과학원장, 김정식 노동당 군수공업부 부부장의 대장(별 4개) 승진에 대해서는 이들에게 향후 북한 무력 개발을 이끌 책임이 주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군부의 1인자인 박정천 당 중앙위원회 비서 겸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핵·미사일 개발의 주역으로 꼽히는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뒤를 이어 군부 세대교체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홍민 실장은 "승진 인사로 화성-17형 성공을 확실하게 대외에 알린 것"이라며 "박정천과 이병철을 대체해 장창하, 김정식, 유진(전 당 군수공업부장) 등이 후속 세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