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교사, 러시아서 간첩 혐의로 체포
과거 리비아·이란서도 한국인 체포 당해
북러 밀착…한국 압박 의도 가능성
한국 국적자 1명이 올해 초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러시아 타스 통신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사법 당국자를 인용해 “간첩 범죄 수사 중 한국인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체포당한 한국인 백모씨는 선교사로 확인됐다.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은 처음이다.
타스 통신은 또 백씨가 국가 기밀 정보를 외국 정보기관에 넘긴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형사 사건 자료가 ‘일급기밀’로 분류됐다고 설명했다.
13일 외교가에선 백씨가 체포되고 두 달이 지난 뒤에야 러시아 관영 매체를 통해 보도된 배경이 있을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러시아 당국의 한국을 향한 일종의 ‘인질외교’ 성격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과거 간첩 혐의와 관련해 해외에서 한국인이 조사받은 사건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 | 러시아서 간첩 혐의 체포된 탈북민 구출활동 선교사 백모씨의 사업장이 등록된 건물.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
◆리비아·이란서 체포당한 한국인…외교적 해법으로 석방
2010년 리비아에서 한국인 2명이 종교법 위반 혐의로 체포당했다.
당시 리비아 당국은 한국 국가정보원 직원이 리비아의 무기목록 등 군사정보를 수집해 이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넘기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간첩 혐의를 적용해 이 직원을 추방한 상황이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국정원 직원과 선교사 구금 문제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설명했으나 리비아 보안당국은 이들에게 간첩활동 연계 혐의까지 함께 적용해 조사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된 이들은 선교활동을 하던 구모씨와 구씨를 도운 혐의를 받는 농장주 전모씨였다.
구씨는 같은해 6월, 전씨는 7월 각각 체포된 후 한 달가량 지나도록 정확한 소재지조차 파악되지 않았고 일반 구치소로 이감된 후에야 가족과 면회를 받을 수 있었다.
외교부는 리비아 측과의 면담에서 국정원 직원의 잘못을 인정하고 장동희 당시 주 리비아대사 소환 등 담당자 문책을 ‘상응하는 조치’를 제시해 석방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씨와 전씨는 체포된 지 약 4달 만에 석방될 수 있었다.
구씨와 전씨는 현지 사법절차에 따라 재판을 거친 뒤 전례대로 국외 추방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들은 본인 의사대로 리비아에 계속 머물 수 있게 됐다.
2012년에는 여행객이 간첩 혐의로 구금된 적이 있었다.
이란에서 여행하던 김모씨는 국경 등에 있는 민감한 시설을 다량으로 찍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고 체포됐다.
그는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아 1년 넘게 구금당했다.
2013년 9월 열린 1심 재판에서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후 정부는 김씨를 석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씨는 2014년 4월 석방돼 귀국했다.
당시 정부는 “그동안 김씨가 현지 법과 현지 실정을 모르는 상태였고 스파이 행위를 할 의도가 없었다고 진술하는 점과 가족들이 타국에서의 수감 생활을 염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란 측에 인도적 배려를 요청했다”며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 대한 특별 배려로 송환된 것”이라고 밝혔다.
 |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복잡해진 한·러 관계…사안 배경은
이번에도 외교부는 지난 12일 한국인 선교사가 체포된 것과 관련해 러시아 측과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정부로서는 우리 국민이 하루빨리 가족들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한·러 양국 간의 외교 채널을 통해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체포된 한국인의 신원, 정부의 사건 인지 시점, 러시아 측 의도 등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고자 한다”고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이번 사안이 긴밀해진 북러 관계에 따라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체포된 선교사 백씨는 선교사로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북한이탈주민 구출 활동 등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러시아가 자국 내 북한 노동자나 탈북민에 대한 남측의 지원 활동에 과거보다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으로 한·러 간 민감한 쟁점이 남아있는 점도 이번 사안의 배경으로 꼽힌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특별군사작전 이후 한국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백씨 체포 사건을 한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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