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이동 사다리에 오르려는 중산층의 욕망, 사교육에 올인
전두환의 ‘과외금지’로도 안된 사교육 근절
사교육을 걱정하는 시민단체까지 생긴 나라
사교육비 1만원 오를 때 합계출산율 0.012명 감소
"혁신적 미래인재 양성과 사교육 과열 상충"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이고 일관성 있는 노력 절실"
한국에서는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어도 최종 승자는 사교육업계로 귀결됐다.
그들은 대입 제도에 변화 바람이 불면 한발 빨리 눕고 한 박자 먼저 일어나는 신공을 발휘한다.
예비고사나 본고사·학력고사·수학능력시험과 같은 지필시험의 변화이든, 학생부종합전형과 같은 컨설팅의 영역이든, 논술의 도입이든 사교육은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고, 적응에 성공했다.
영악한 사교육은 얄밉게도 공교육보다 진단과 예측이 정확한 편이다.
 | 지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개원을 축하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
이번 의대 정원 확대도 마찬가지 운명이 될 것 같다.
사교육 업체들은 현역 수험생은 물론 N수생, 그들의 학부모는 물론 미래 고객인 유치원·초등학생·중학생까지 겨냥해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2025학년도 의과대학 증원이 확정되고 대학들이 지역인재전형을 크게 늘리자 지방 학원가는 때아닌 특수를 누릴 조짐이다.
◆정권마다 번번히 좌절된 사교육 근절 대책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정권을 잡더라도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교육정책이 ‘사교육비 줄이기’였다.
돌아보면 사교육을 육성하자는 주장을 편 정권은 해방 이후에 단 한 번도 없었다.
학부모의 등골을 빼먹는 사교육을 지지하는 정책으로 표를 받을 수 없을 터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교육비 줄이기 대책 가운데 가장 극단적인 조치로 꼽히는 ‘과외금지’는 전두환정권 때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했던 전두환 정권은 ‘과외금지’와 ‘본고사 폐지’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사교육비를 줄여 민심을 얻고자 했다.
전두환정권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1980년 7월30일 재학생의 과외 교습 및 입시 목적의 재학생 학원 수강을 금지하는 이른 바 ‘7·30 교육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당시 국보위 위원장이 전두환이었고, 과외금지의 타깃은 공직자와 사회지도층 인사 자녀였다는 점에서 사정(査定)의 성격도 강했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거친 후 등장한 보수와 진보 정권도 수많은 사교육비 줄이기 대책을 쏟아냈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면서 되레 학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잦은 입시제도 개편은 새로운 사교육을 낳으며 사교육 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더욱이 경제 성장으로 자본을 축적한 중산층은 신분상승의 사다리에 오를 가장 안전한 장치로 자신이 경험한 교육을 택함으로써 너도나도 사교육 열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미래전략 인사이트 제93호-사교육 과열과 미래인재 양성: 관련성 분석 및 정책 제언’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성문주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학벌주의, 물질주의와 공교육에 대한 불만족, 사회적 규범 등이 사교육 과열의 주요 원인”이라고 짚었다.
 | | 사진=연합뉴스 |
◆급증 사교육비에 학부모들 신음
학부모들은 급증하는 사교육비에 숨이 턱 막힌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020년 19조4000억원에서 2021년 23조4000억원, 2022년 26조원으로 급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7조1000억원까지 치솟았다.
가계동향조사에서 교육 지출은 2021년 1분기를 시작으로 13개 분기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같은 기간 증가세가 한 번도 끊기지 않은 지출 항목은 교육이 유일했다.
사교육비 지출에서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월평균 소득이 800만원 이상인 가구에서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67만1000원이었다.
대신 소득이 300만원 미만인 가구는 18만3000원을 사교육비로 지출했다.
소득에 따른 격차가 3.7배나 벌어졌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전체적으로 대학에 들어갈 학생은 줄고 있지만 가고 싶은 일부 대학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은 여전히 넘쳐나기 때문이다.
초조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대학 입학설명회, 진로·진학 상담회를 돌며 정보전에 나 서고, 사교육 업계는 이들의 불안 심리를 활용해 지갑을 열게 하는 신공을 발휘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연령대가 이제 초등학생, 중학생으로 낮춰졌다.
영재학교와 과학고, 전국단위 자사고 등은 ‘상위 0.1%’ 학생들이 가는 고교 서열화의 최상 층에 자리하는 학교다.
합격하려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른바 ‘속진’으로 불리는 선행 학습이 필수적이다.
현실적으로 사교육 없이는 대비할 수가 없어 ‘사교육 끝판왕’으로 불린다.
제로섬의 입시 게임에서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버리고 있다.
◆22대 국회는 돌파구를 찾아낼까
사교육비 부담은 저출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도한 사교육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거기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을 몸소(?) 체험한 20, 30대는 출산은 고사하고 결혼과 연애까지 포기한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사교육비가 1만원 오를 때 합계출산율은 0.012명 감소한다.
윤석열정부들어 사교육카르텔 근절, 공교육 입시컨설팅, 에듀테크, 늘봄학교 등 사교육경감대책을 발표했지만 피부에 크게 와닿지 않는다.
4·10 총선을 통해 22대 국회에 입성한 교육계 출신 의원들은 사교육비 근절에 대한 문제의식에는 크게 공감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저출생이다.
저출생의 원인 중에는 육아(돌봄)와 사교육비 등이 크게 차지하고 있다”면서 “육아 및 정책에 대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또 과도한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체계로 일부라도 끌어들여야 한다.
학교의 교육경쟁력 강화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초등교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백승아(39) 의원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고 사교육비 부담으로 학부모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백 의원은 그러면서 “현재 교육은 입시의 수단이며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지금까지 입시제도가 변해왔지만 어떻게 줄 세울까 방법을 고민하는 문제였지 줄 세우기 자체는 여전했다”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실적 과시형 정책을 강행하며 기초학력지원 예산을 축소하는 등 공교육의 중요한 역할을 경시하고 있다.
학교가 본연의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공교육 정상화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성문주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래전략 인사이트 제93호-사교육 과열과 미래인재 양성: 관련성 분석 및 정책 제언’ 보고서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 선진국으로서 지속적인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혁신을 통한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미래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필요다는 점에서 사교육 과열이 이와 관련한 교육정책의 목표와 전략과 상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교육 과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이고 일관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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