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에 직면한 대한민국은 극도의 혼란을 이어가는 가운데 유례없는 '해석의 시간'을 맞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개시됐지만, 절차적 정당성 여부를 두고 법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사법 체계마저 혼돈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쟁점은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철회한 것이다.
국회 탄핵소추단은 지난 3일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두 번째 변론 준비 기일에서 "내란죄를 탄핵소추 사유에서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에서 형법상 내란죄 성립 여부를 제외하고 위헌성만 심리하면 탄핵재판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국민의힘은 이날 헌재 항의 방문에 나서며 거세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내란죄 혐의는 윤 대통령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의 핵심"이라며 "핵심 사유가 철회됐다면 (헌재는) 졸속 작성된 탄핵소추안을 각하시켜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점화하고 있다.
야당이 내란죄를 철회하기로 한 것은 헌재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는 말이 일각에서 나온다.
만약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헌재가 야당 측에 직접 요청할 정도로 깊이 관여했다면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 등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기 전에 대선을 치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란죄라는 핵심적인 부분의 변경은 중대한 문제"라며 "만약 개별 헌법재판관의 의견이었다면 선입견을 갖고 문제를 보는 것이라 윤 대통령 측이 해당 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도 가능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헌재 입장에서는 마음이 다급한 게 사실이다.
오는 4월18일 대통령이 임명한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 시점이 다가오는 만큼 이 전에 대통령의 불확실한 지위가 해소돼야 극도의 혼란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헌재 자체의 중립성에 대해 의심이 생기게 만든 것은 명백한 실수"라면서 "원칙에 기반해 심판 절차를 진행했다면 오히려 문제가 없었을 텐데 고려할 사안이 많다 보니 스텝이 꼬인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내란 혐의 사건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윤 대통령이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불법 수사라는 점을 들어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자 이날 영장 만료를 목전에 두고 집행 업무를 경찰에 일임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공수처가 이제 와서 경찰에 관련 업무를 떠넘기려 한다는 불만이 감지된다.
계엄 사태 후 앞다퉈 수사 경쟁에 나섰던 공수처·경찰이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제기되자 뒤늦게 수습에 나선 모양새다.
수사 주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되레 윤 대통령에게 빌미를 제공한 형국이 됐다.

목적이 정당하다고 수단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재판의 요체는 절차이고 절차가 판결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8인 체제 회의를 시작한 헌재는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법적·절차적 오류 없이 재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을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