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수습사원으로 일정 기간을 근무한 뒤 곧바로 임시직 근로자로 채용돼 수습 근무 기간을 시용(試用) 기간으로 볼 수 있다면 수습 기간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근로기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씨가 지방 소재 B의료원을 상대로 '미지급한 퇴직금 5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제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에는 퇴직금 산정 시의 계속근로기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B의료원 수습사원 채용시험에 합격한 A씨는 1999년 12월 1일부터 한 달간 B의료원 원무과에서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뒤 같은 해 12월 30일 33만8000원을 급여 명목으로 지급받았다.
이후 A씨는 B의료원의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2000년 1월 1일자로 피고의 임시직 근로자로 채용됐고, 이듬해 8월 정규직으로 임용된 뒤 17년 가까이 근속하고 2018년 3월 31일 퇴직했다.
B의료원은 A씨가 2000년 1월 1일 입사해 2018년 3월 31일 퇴사했음을 전제로 퇴직금을 계산해 A씨에게 8000만원을 지급했다.
B의료원은 2020년 1월 보수규정을 개정해 '1999년 12월 31일 이전 입사자 중 5년 이상 근무자'에 대해서만 기존의 퇴직금 누진제를 적용하고, '1999년 12월 31일 이전 입사자 중 5년 미만 근무자'나 '2000년 1월 1일 이후 입사자'에 대해서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퇴직금 단수제를 적용하도록 퇴직금 지급률을 조정했다.
B의료원은 A씨가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기간을 뺀 나머지 기간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근로기간으로 보고 퇴직금을 산정한 것.
A씨는 자신의 입사일은 1999년 12월 1일이므로 바뀐 보수규정에 따르더라도 '1999년 12월 31일 이전 입사자 중 5년 이상 근무자'에 해당돼 퇴직금 누진제 적용을 받아야 하며, 이에 따를 때 퇴직금은 1억3000여만원이므로 미지급된 5000여만원의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A씨가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기간의 성격을 어떻게 볼지가 쟁점이 됐다.
A씨는 자신의 입사일은 1999년 12월 1일이며, 설사 2000년 1월 1일을 입사일로 본다고 하더라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근로자 과반수로 구성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그 같은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에게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B의료원은 1999년 11월경 한 달간의 실무실습을 통해 적격 여부를 평가한 후 인사위원회 심의를 통과할 시 채용을 조건으로 실습생을 모집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달간의 실무수습 뒤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2000년 1월 1일 비로소 채용된 것으로 봐야한다는 취지였다.
1심과 2심은 B의료원의 손을 들어줬다.
A씨와 함께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20명 중 2명은 수습과정에서 탈락해 임시직으로 채용되지 못한 점 등에 비춰 수습사원 채용시험에 합격한 뒤 근무한 1개월은 '채용의 확정'이라기보다는 임시직 근로자 채용절차의 과정으로서 일종의 '실무전형'에 해당된다는 판단이었다.
A씨가 수습 근무 기간을 마치고 지급받은 33만8000원은 B의료원의 보수규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산정된 것이었고, 지급일도 B의료원의 급여 지급일(매월 20일)과 달랐다는 점, 수습사원의 수습기간은 3개월인데 그 중 실제 근무기간은 1개월에 불과해 일반적인 근로자의 근무형태와 차이가 있었다는 점 등이 근로의 대가로 지급한 임금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근거가 됐다.
또 A씨가 2000년 12월 31일 임시직 채용기간이 만료된 뒤 2000년 1월 1일 입사를 기준으로 산정한 퇴직금을 수령한 사실도 A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보수규정이 근로기준법 제94조가 정한 근로자의 동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A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B의료원이 제주도지사에게 개정안의 승인을 요청할 당시 A씨는 B의료원의 근로자가 아니었고, 개정된 내용도 2000년 1월 1일 이후 입사자에 대한 내용을 신설한 것일 뿐 기존에 근무했던 근로자들에게 불리하게 변경된 것이 아니어서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먼저 "근속기간 중에 직종 등 근로제공의 형태가 변경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용기간 만료 후 본 근로계약을 체결해 공백 기간 없이 계속 근무한 경우에도 시용기간과 본 근로계약기간을 통산한 기간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계속근로기간으로 봐야 한다"는 199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의 수습사원 채용시험에 합격해 1999년 12월 1일부터 1개월간 피고의 원무과에서 수습사원으로 근무하면서 사무보조 등 업무를 수행했고, 1999년 12월 30일 피고로부터 급여 명목으로 33만8000원을 지급받았으며, 이후 피고의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2000년 1월 1일자로 피고의 임시직 근로자로 채용된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런 사실관계를 앞에서 본 법리에 비춰 살펴보면, 원고가 피고의 수습사원으로 근무한 기간은 단순히 실무전형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시용기간에 해당했던 것으로 보이므로, 원고가 수습기간 만료 후에도 계속 피고의 근로자로서 근무한 이상 원고의 수습사원 근무기간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계속근로기간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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