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만에 왕위 즉위
커밀라와 불륜 등 치명적 오점
아들 윌리엄보다 지지율 낮아
일부국가, 영연방 연대 재고 중
군주제 폐지 국민투표 추진도
영국의 왕위를 70년 만에 계승한 찰스 3세가 어머니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이어받아 영국 왕실과 영연방의 구심점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일단 찰스 3세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보다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영국 젊은 층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왕실 무용론’과 맞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엘리자베스 2세 서거 이후 영연방 국가들의 이탈이 가속하면 영국 왕실의 상징성에도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 “어머니 본보기 따를 것” 영국 런던에 있는 왕실 저택인 세인트 제임스 궁에서 왕위를 계승한 찰스 3세가 10일(현지시간) 아내 커밀라와 나란히 서 어머니의 본보기를 따르겠다고 맹세하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
◆‘인기 없는 왕’… 英 왕실 무용론 타파할까
11일(현지시간) 미국 주간 타임은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해 “영국 안정의 상징이자 점점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불변의 상징이었다”며 “새 국왕이 직면한 가장 큰 시험은 어머니의 ‘안정’ 이미지를 닮고, 엘리자베스 2세가 평생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왕실을 보존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전했다.
영국 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신망이 두터웠던 엘리자베스 2세를 통해 유지돼 왔던 영국 군주제가 찰스 3세를 기점으로 삐걱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21세기에도 영국의 왕실을 유지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그녀는 강인한 성격과 유머 감각을 갖추고 있어 대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엘리자베스 2세 개인의 매력으로 왕실 폐지를 막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다음 날인 지난 9일(현지시간) 런던 등 영국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상점 등에는 여왕 추모 사진과 메시지가 게시됐다.
연합뉴스 |
그런 엘리자베스 2세도 젊은 층 사이의 왕실에 대한 회의론 대두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지난 6월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실시한 설문에서 ‘100년 후에도 군주제가 유지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영국인 41%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18~24세 연령층에서는 군주제 유지가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3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찰스 3세가 영국 왕실 중 비교적 인기가 떨어지는 점도 문제다.
찰스 3세는 커밀라 왕비와의 불륜으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하고, 이후 다이애나가 비극적으로 숨지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오명을 썼다.
지난 5월 유고브의 설문에서 찰스 3세 지지율은 57%에 그쳤다.
아들인 윌리엄 왕세자(77%)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다.
젊은 층에서의 찰스 3세에 대한 인기는 훨씬 떨어진다.
18~24세의 찰스 3세 지지율은 29%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56%)이나 윌리엄 왕세자(51%)보다 크게 낮았다.
 | | 지난 1989년 3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바베이도스 공항에서 환영식에 참석한 모습. AP뉴시스 |
◆흩어지는 영연방, 찰스 3세에 ‘부담’
영연방의 결속력이 약화하고 있는 점도 찰스 3세에게 부담이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를 뜻한다.
영연방은 최근 제국주의에 뿌리를 뒀다는 비판적 시각이 늘어나면서 유대 관계가 흔들려 왔다.
이런 상황에서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영국 국왕을 계속 국가 원수로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옮겨붙을 전망이다.
일부 국가는 이미 영연방과의 연대를 재고하고 있다.
개스턴 브라운 앤티가바부다 총리는 전날 영국 ITV에서 “우리가 진정한 주권 국가임을 확실히 하고, 독립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라면서 군주제 폐지를 위해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브라운 총리는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를 폐지하더라도 앤티가바부다는 영연방의 헌신적인 국가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추모 메시지 가득 1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세인트 제임스 공원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꽃, 카드, 메시지가 가득 쌓여 있다.
런던=EPA연합뉴스 |
군주제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은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등 다른 카리브해 국가에서도 감지된다.
앤드루 홀니스 자메이카 총리는 3월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자메이카를 방문했을 때 공화정으로 독립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벨리즈도 개헌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영연방 영국 국왕을 국가 원수로 삼고 있는 호주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 폐지 논의가 불붙고 있지만, 호주 총리는 당분간은 공화정으로의 전환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병훈 기자 bh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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