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잊은 포항… 끝나지 않은 ‘힌남노 악몽’
농가 대부분 침수… 삶의 터전 잃어
연휴 내내 복구작업에도 진척 없어
일부 지역선 전기·상수도도 끊겨
“폐기물 언제 다 치울지… 깜깜해요”
市 “전국적인 온정의 손길 절실”
포스코 3·4고로 차례로 정상 가동
“추석 연휴 내내 쓰레기만 치웠지만 끝이 안 보이네요.”
1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진전리 샘지골.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할퀴고 간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지만 시골마을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추석연휴 마지막 날인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에서 한 주민이 가재도구를 씻고 있다.
대송면은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1135가구 중 90% 이상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포항=연합뉴스 |
농가는 대부분 침수됐고, 애써 키운 고추와 고구마 등 농작물은 비닐하우스와 함께 아예 빗물에 휩쓸려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곳에서 15년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김석진(69)씨와 이영이(68)씨 부부는 추석도 쇠지 못하고 복구작업을 했지만 더디기만 하다고 말했다.
급한 대로 인근 마을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눈만 뜨면 집으로 가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 부부는 추석 명절을 보내기 위해 내려온 큰아들, 딸 부부와 힘을 합쳐 복구작업을 벌였다.
큰아들 김원중씨는 “부모님이 살던 집은 돌더미가 들어차 완전 폐허가 됐다”며 “연휴 내내 쓰레기를 퍼냈지만 티가 나지 않아 안타깝다”고 울먹였다.
이 마을 주민들은 진척이 없는 복구도 문제지만 전기와 상수도 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다.
김씨 부부는 “3년 만에 명절을 보냈다는 얘기가 들리지만 이재민들은 명절은커녕 속옷도 못 갈아입고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며 “복구작업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중장비와 기본적인 옷가지가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웃 대송면도 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해병대원을 비롯해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이 침수 폐기물을 치우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민 박모(65)씨는 “가슴까지 물이 차올라서 사무실에 성한 게 하나도 없다”며 “집기 전부를 버려야 하는데 언제쯤 치울 수 있을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치워도 치워도 나오는 쓰레기 때문에 태풍 피해지역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생활쓰레기가 쌓여 있어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일대에 마련된 재난 쓰레기 임시 적환장에 각 피해지역에서 수거된 4000t의 쓰레기가 쌓여 있다.
연합뉴스 |
추석 연휴 내내 피해지역에서는 전방위적인 복구작업이 진행됐지만 피해가 워낙 크고 광범위해 조속한 복구를 위한 범국가적인 자원봉사의 손길이 절실한 상황이다.
포항시는 이날 조속한 피해 복구를 위해서는 전국적인 자원봉사자들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나섰다.
한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휴풍(고로에 바람을 주입하는 작업 중단)에 들어갔던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추석 연휴 복구작업을 이어나가며 3고로와 4고로를 차례로 정상 가동시켰다.
포스코는 이르면 13일 포항제철소의 모든 고로를 정상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에 따르면 10일 포항제철소의 3고로가 정상 가동에 들어갔고 이날 4고로 가동도 재개됐다.
포스코는 이날 고로에서 생산된 쇳물을 제강 공정에서 처리하기 위한 제강·연주 설비 복구에 집중했다.
냉천 범람의 가장 큰 피해를 본 압연 라인의 경우, 대부분의 지하시설물이 침수돼 여전히 배수 및 진흙 제거 작업이 진행 중이다.
 | 12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스코 포항제철소 4고로(용광로)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포스코는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침수 피해로 가동을 중단한 포항제철소 4고로를 이날 재가동했다.
연합뉴스 |
포스코는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포항제철소는 물론, 광양제철소와 그룹사 임직원, 협력사, 관계기관 등 연휴 기간 누적 인력 3만여명이 복구작업에 참여했다.
포스코는 가동 중단에 따른 고객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광양제철소를 최대 생산체제로 전환했다.
긴급한 물량을 우선 판매하는 등 신속 대응을 위한 비상출하대응반도 13일부터 가동할 방침이다.
경북도 등 지방자치단체와 소방청, 도로공사, 조선사, 해병대 등에서도 대용량 방사포, 소방펌프, 살수차, 양수기 등 중장비와 인력 지원을 통해 힘을 보태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전기 복구와 설비 시운전에 앞서 필요한 조치가 누락되지 않도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복구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시설의 복구를 마치고 가동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 | 지난 9일 포항시민 등에게 수신된 '포스코 태풍 피해 설비 복구 전기설비 기술자 구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뉴시스 |
한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번 연휴 기간 포항제철소의 긴급 복구작업을 위해 일당 125만원에 사람을 구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를 두고 ‘스미싱(사기) 문자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해당 메시지는 포항제철소 공단협의회 측이 발송한 문자로 일당 125만원 지급도 사실이었다.
공단협의회 측은 전기 보수를 담당할 엔지니어가 부족한 상황에서 추석 연휴가 겹쳐 긴급하게 문자 메시지로 공고를 내고, 전화 면접 등을 거쳐 복구 현장에 투입했다고 전했다.
포항=이영균 기자, 박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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