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규민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를 앞두고 자료를 폐기하거나 숨겨 조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철강회사 세아베스틸지주가 항소심에서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1부(부장판사 김도균)는 지난 7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세아베스틸지주와 직원 3명에 대한 원심을 파기하고 회사에 대해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자재관리팀 부장이었던 A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본사 직원 B·C씨는 벌금 2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지난 2월 1심 재판부는 A씨와 회사에 각각 벌금 1000만원과 3000만원을, B씨와 C씨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한바 있다.

공정위는 2020년 5월 14일 11개 제강사가 철스크랩(고철) 구매를 담합해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세아베스틸 사업장 조사를 실시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같은 날 철스크랩 구매 업무를 담당하며 작성한 2019년 업무수첩 1권과 다이어리를 문서세단기로 파쇄해 조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B씨와 C씨는 다음 날 업무용 PC의 C드라이브를 포맷하거나 단체 채팅방 대화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다.

해당 사건은 공정위 조사를 방해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되도록 관련 법 개정 이뤄진 후 공정위가 고발조치한 첫 사건이다.

A씨와 세아베스틸은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업무수첩과 다이어리 폐기로 조사방해의 결과나 그 위험이 발생하지 않았다”며 “업무수첩은 공정위가 조사한 대상기간 이전에 작성된 점, 다이어리는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기에 업무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사 대상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객관적으로 추정되는 자료를 은닉·폐기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 조사를 방해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폐기한 업무수첩, 다이어리와 B씨와 C씨가 포맷해 삭제한 업무관련 파일들은 공정위의 철스크랩 담합행위 조사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객관적으로 추정되는 자료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조사 방해 행위는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며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 조사 방해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반면 회사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의·감독 충실히 한 사정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그럼에도 피고인들 납득할 수 없는 논리와 주장으로 조사방해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들의 조사 방해 행위로 인해 세아베스틸의 담합행위가 은폐됐다고 볼 증거는 충분치 않다”며 “조사 방해 행위의 규모도 대규모의 은닉·폐기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