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최대 정적’ 옥중 의문사 후폭풍
사망 소식 후 러 전역 추모 움직임
러 정부, 시민 최소 400여명 구금
언론 통제하며 여론 잠재우기 부심
인권단체, 나발니 사망 발표 이틀 전
보안국 당국자 교도소 방문 주장
바이든 등 국제사회도 비난 목소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政敵)이었던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47)가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사망하자 국내외에서 책임과 원인을 둘러싼 의혹과 함께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인권단체 ‘OVD-Info’를 인용해 지난 16일 나발니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이후 현지에서 열린 항의·추모시위에 참여한 시민 최소 400여명이 구금됐다고 전했다.
 |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 AFP연합뉴스 |
수도 모스크바의 ‘슬픔의 벽’에도 나발니를 추모하는 수백 송이의 꽃과 촛불들이 놓였다.
슬픔의 벽은 소련 스탈린 독재정권에서 정치적 박해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기념비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전시상황을 이용해 여론을 통제해온 러시아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집단행동은 흔치 않다.
러시아 당국은 술렁이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다.
모스크바 검찰은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자는 메시지가 온라인에서 유통되고 있다”며 “행정당국과 조율되지 않은 것이니 유의하라”는 경고 성명을 냈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나발니의 사망 소식을 30초 단신으로 처리하는 데 그쳤다.
당국의 통제 정책에도 나발니의 죽음이 ‘암살’이라는 ‘푸틴 책임론’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나발니는 푸틴 정부가 저지른 부패와 폭력, 그리고 모든 나쁜 일들에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며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푸틴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나발니가 암살됐느냐’는 질문에 “나발니의 죽음이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어떠한 행동에 따른 결과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답했다.
암살설을 뒷받침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7일 영국 타임스는 나발니의 사망이 발표되기 이틀 전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당국자들이 나발니가 수감돼 있던 교도소를 방문해 폐쇄회로(CC)TV와 도청장치의 연결을 끊었다는 현지 인권단체의 주장을 보도했다.
교정당국 보고서를 입수한 해당 단체는 나발니의 공식 사망 시간 이후 2분 만에 당국이 나발니의 사망을 발표했고, 7분 후에는 크레믈궁 대변인이 사망 사실을 언급했다며 “모든 것이 사전에 계획되고 조율됐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 고조되는 추모 열기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민들이 같은 날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서 옥중 사망한 러시아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P연합뉴스 |
나발니의 시신도 행방불명이다.
나발니의 모친은 17일 그가 사망한 교도소 인근 마을을 찾았으나, 영안실에는 시신이 없었으며 교정당국은 나발니의 사망원인에 대한 재조사가 끝난 후에 시신을 인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친은 또 나발니의 사인을 ‘돌연사 증후군’으로 통보받았다고 한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초기 보도에서 나발니의 사인을 혈전이라고 밝혔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국영기업·고위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면서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대표 반(反)푸틴 정치인으로 명망을 얻었다.
푸틴의 눈엣가시가 된 그는 2020년 8월 모스크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며 쓰러져 죽음의 고비를 넘겼는데, 당시에도 암살설이 제기됐다.
독일에서 치료를 마친 나발니는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2021년 고국에 돌아왔으나 귀국길 공항에서 바로 체포됐고, 법정모독·극단주의 활동 선동 혐의 등으로 30년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나발니는 지난해 12월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교도소로 이감된 후 두 달 만에 돌연 의문사한 것이다.
러시아 교정당국은 16일 오전 산책 후 컨디션 난조를 호소한 나발니가 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소생술을 시도했으나 결국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지안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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