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행동 ‘초읽기’
전공의 사직예고에 수술 연기 속출
일정 확정 안된 환자도 ‘무기한 대기’
병원들도 중환자실 등 인력 재배치
지방 전공의들 ‘개별사직’으로 가세
보건의료노조 “국민이 직접 나서야”
“파업한다는 의사들 정말 무책임하네요. 수술 못 받아서 더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책임진답니까?”
대형병원의 핵심 인력인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사직을 예고하면서 수술과 진료가 연기되는 사례가 벌써부터 속출하고 있다.
병원들이 전공의 집단행동에 대비해 환자들에게 수술 일정 연기를 안내하며, 곳곳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18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환자들 가운데, 전공의 집단사직 예고로 짧게는 1개월 이내, 길게는 4개월까지 수술이 연기되는 사례가 나왔다.
 | 서울 대형 종합병원 빅5(서울대, 서울아산,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 소속 전공의 2,700여명이 오는 19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기로 한 가운데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환자가 의자에 앉아있다.
뉴시스 |
◆‘수술·입원 연기’ 사례 속출
다음주로 예정됐던 아이의 수술이 6월로 밀렸다는 보호자 A씨는 “수술에 맞춰서 이사와 대소사를 다 조정해 놨는데 너무 당황스럽다”면서 “20개월 아이에게 수술 전 검사를 또다시 받게 할 생각을 하니 너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오는 20일 고관절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는 B씨는 “병원에서 수술을 5월로 미뤘다가, 3월이 지나면 수술 전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고 병원 측이 비용을 지불해야 해서 3월로 일정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일정이 취소됐다는 연락만 받고 향후 일정이 확정되지 않은 이들은 “무기한 대기 중”이라며 불안해했다.
 | 18일 서울 한 병원 전공의 전용공간에서 의료진 등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오는 20일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갑상선 수술을 받을 예정이던 C씨는 병원에서 수술 취소 안내를 받았다.
C씨는 “정확히 언제 (수술)할지 정하지도 않고 ‘(파업이) 길어질 것 같으니 정상화되면 다시 연락주겠다’고만 한다”며 “한두달 기다린 것도 아니고 수술 전 검사도 다 했는데,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서울대병원에서 폐암 수술 일정을 조율 중이던 D씨는 “병원에서 일정을 잡고 연락주기로 했는데, 결국 전공의 파업으로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며 “다른 병원으로 전원해야 하는지, 무기한 대기해야 하는지 고민된다”고 했다.
이번주 서울대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받기로 E씨는 “혹시 수술이 연기될까 걱정하다가, 병원에 전화해 봤지만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파업으로 의료인력이 빠져나갈 것에 대비해 중환자실에 인력을 우선 배정하면서 비응급 환자들을 서둘러 퇴원시키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재활의학과에 입원하다 지난 16일 퇴원 통보를 받았다는 F씨는 “아침 회진까지 별 말이 없다가 오후 5시쯤 담당교수로부터 갑자기 전화로 19일에 퇴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며 “원래 퇴원 예정일은 3월4일이라 지금 너무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 무거운 발걸음 ‘빅5’ 종합병원으로 불리는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 병원 전공의들이 20일부터 근무 중단을 예고해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시스 |
◆병원들 수술 연기·인력재배치 ‘비상’
병원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예고된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은 긴박한 수술을 먼저 진행하는 식으로 조정하고, 연기된 환자들에게는 교수나 간호사가 전화 등으로 사정을 안내하고 있다.
동시에 중환자실 등 중증도 환자가 많은 곳을 위주로 인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19일 사표 제출 상황을 보고 진료과별로 수술이나 입원을 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증도에 따라 응급이나 긴박한 수술을 우선적으로 한 뒤에 먼저 잡혀 있던 환자들의 수술을 순차적으로 할 예정”이라면서 “지금 잡혀 있는 수술이 몇개월씩 밀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도 현재 입원예정환자를 대상으로 일정 연기 관련 연락을 하고 있으며 전공의들의 사직 상황 등에 따라 수술 일정을 조정할 계획이다.
신촌세브란스병원은 다음 주 수술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전공의 사직… 지방도 확산 중
빅5 병원 전공의에 이어 지방 수련병원 전공의들도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전남대병원 전공의협의회는 이날 320명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 사직 여부를 ‘개별적 선택’에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표면상으로는 개별사직이지만, 상당수 전공의가 타 병원의 사직 행렬에 발맞춰 사직서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주 7명의 전공의가 개별적인 사직서를 낸 조선대병원 역시 추가로 사직하는 사례가 늘 가능성이 있다.
병원과 환자들은 전공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해 의료공백이 커지는 상황을 우려한다.
전공의들의 단기간 이탈은 병원 인력 재배치 등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집단행동이 장기간 이어지면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던 전임의(펠로)와 교수들의 ‘번아웃’(소진)이 나타나며 피해가 커질 수 있다.
 |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앞으로 구급차가 지나고 있다.
뉴스1 |
대한간호협회는 전공의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의 PA(진료보조) 간호사 활용 계획에 적극 협조할 방침이다.
PA 간호사는 수술실이나 검사 및 시술 등의 보조 역할 등을 하고 있다.
전국에 약 1만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막기 위해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날 대국민 호소문을 내고 “의사 집단 진료중단은 국민 생명을 내팽개치는 비윤리적 행위”라며 “국민들이 나서서 진료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집단 진료중단을 막기 위한 국민촛불행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7일 회의를 열고, 정부가 전공의 사직 및 업무개시명령 불응에 대해 ‘면허박탈’을 거론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이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단 한 명의 의사라도 이번 사태와 연관해 면허와 관련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수 있음을 강하게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비대위는 다음달 10일쯤 대규모 집회를 열 방침이다.
이정우·조희연·윤솔 기자, 광주=김선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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