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교수 증원카드 꺼내고
대화 제스처… 의료계는 ‘냉담’
이탈 전공의 3% 복귀… 체감 못해
여의도성모, 의사 없어 수술 줄자
간호사에 ‘긴급휴업 신청’ 받기도
정부 대화 제의에 “쇼 일뿐” 비판
“전제조건 그대론데 누가 응하나”
의료특례 공청회도 의사들 외면
“294명은 병원이 문서로 보고한 수치다.
돌아오고 싶어도 동료의 따가운 눈초리에 망설이는 전공의들이 많아 병원별 복귀 규모는 제시하기 어렵다.
”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집단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정부가 복귀시한으로 제시한 29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전날까지 294명의 전공의가 복귀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전날 오후 7시 기준 100개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낸 전공의는 9997명(80.2%),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9076명(72.8%)이다.
294명이라고 해봐야 이탈한 전공의의 3%가 조금 넘는다.
 | 전공의 집단이탈 열흘째이자 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인 29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66명 복귀한 병원 있다는데…
정부는 “병원으로 돌아오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최후통첩한 이날까지 꽤 많은 전공의가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박 차관은 “어느 특정 병원이 많이 돌아왔다고 하면 그 안에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이거를 보호해 줘야 한다.
모든 사태가 종결되면 자료와 통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파악한 근무지 이탈 비율은 지난 27일 73.1%에서 전날엔 0.3%포인트 감소했다.
정부에 따르면 100개 수련병원 중 한 명 이상의 전공의가 복귀한 병원은 32곳, 10명 이상 복귀한 병원은 10곳, 최대 66명이 복귀한 병원도 있다.
정부 발표와 달리 의료 현장에선 큰 변화가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66명이 복귀한 병원이 어딘지를 두고 의료계는 하루종일 설왕설래했다.
 |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2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
서울 ‘빅5’ 중 하나인 A병원은 “66명은 우리는 아니다”며 “전혀 움직임이 없다”고 했다.
또 다른 B병원은 “66명 (복귀한) 그런 데가 있었냐. 우리는 아니다”며 “사직서 수리가 금지돼 다 보관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반려해 달라는 접수가 없다”고 밝혔다 환자 상태가 궁금한 전공의들이 전자의무기록(EMR)에 접속한 기록만으로 ‘복귀’로 단정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병원에선 오히려 “곧 전문의도 움직일 것”이라는 등 현장이 흉흉한 분위기라는 얘기가 돌았다.
전문의까지 이탈하는 다음주엔 수술을 50%까지 줄여야 할 처지인 병원도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은 이날 일부 간호사들에게 ‘긴급휴업신청서’를 내라는 공지를 전달했다.
그동안 성모병원은 전공의 집단공백의 여파로 수술 일정이 대거 미뤄지자, 수술실에 근무하는 간호 인력에게 연차 소진을 권장해 왔다.
그런데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아예 휴업신청서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복귀 시한에 공청회·대화 시도
이날 오후 2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선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공청회가 열렸다.
의대 증원 방침에 의·정 갈등이 극으로 치닫자 정부는 의료계가 줄곧 원해온 특례법 제정을 꺼내들었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과실로 환자 사망사고를 내도 의료진이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하지만 이날 공청회에선 “특례법은 의사 입장만 담은 것 같아 반대한다”는 환자단체의 목소리만 들렸다.
정부 관계자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미 불참을 알렸고 대전협은 연락이 안 됐다”고 했다.
공청회에는 의료계와 학계 인사 등이 참석했지만 전공의로 보이는 인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
정부는 전날 밤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 94명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연락이 닿지 않아 시간과 장소를 정해 알린다”며 이날 오후 4시 여의도 건강보험공단 대회의실에서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박 차관은 이와 관련해 “대화를 위한 협의체이므로 집단행동과는 별개이니 우려하지 말고 대화의 장으로 나와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의협은 “국민들에게 ‘마지막까지 대화를 시도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부는 의대 증원을 철회한다는 언급이나 7대 요구안의 수용 여부도 밝히지 않았다”면서 “대화의 전제조건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냥 대화하자고 말하면 응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사직 전공의인 류옥하다 전 가톨릭중앙의료원 인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부 입장이 매번 다른데 대화 창구는 대체 어디냐”고 따져물었다.
그는 이어 “정부 스스로, 대화 의지를 확인하고 대화 창구를 통일해 달라”며 “전공의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모멸감을 주는 행위도 즉시 중지해 달라”고 주장했다.
 |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건강보험공단에서 열린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과 전공의 대화에 참석한 한 전공의가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
◆교수 증원까지 꺼낸 배경
의사 증원과 교수 증원을 함께 추진하면 의대생·전공의들에게 질 높은 교육과 수련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1900명가량인 국립 의대 교수가 늘면 전공의들의 부담이 줄고 전문의 중심 병원 운영이 수월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젊은 의사들에게 국립대병원 교수가 될 기회가 늘고, 지역 병원 발전으로 수도권 환자 쏠림도 완화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거국련) 회장인 배득렬 충북대 교수(중어중문학)는 “교육 인프라 확충 측면에서 단계적으로 교수 수를 확보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도 있으며 의미도 있다”며 “다만 의대 정원도 한번에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시스템과 교육 인프라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영·정진수·조희연·윤솔·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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