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러軍 훈련 문서 29건 확인
영토 침범·전략핵잠 20% 파괴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대응책 명시
中 침공 대비 시나리오도 담겨
유럽 ‘우크라 직접 파병’ 거론에
러 “개입 땐 핵무기 사용할 수도”
러시아가 강대국과 충돌 시 자국 영토를 침범당하거나, 전략핵잠수함 20%가 파괴되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마련한 사실이 확인됐다.
유럽에서 불거지는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론’ 등이 나오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략적 핵전력이 준비 상태에 있다”며 위협했다.
파이낸셜타임스가(FT)가 28일(현지시간) 입수한 2008∼2014년 러시아군 훈련을 위해 작성된 29건의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기준은 러시아 영토 공격과 같은 대전제부터 전략핵잠수함 20% 파괴 시, 순양함 3척·공군기지 3곳 또는 주요 해안 사령부에 대한 동시다발적 공격 시 등 다양하다.
러시아 군대 전투 패배, 적대국 침략 억제, 영토 상실 방지 등의 기준도 명시된 것으로 확인됐다.
 | | 지난 2022년 2월 19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극동 캄차카반도에서 시험 발사한 RS-24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모습. 타스연합뉴스 |
스웨덴의 싱크탱크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는 5889기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알렉산더 가부에프 러시아유라시아센터 소장은 FT에 “이와 같은 문서가 공개적으로 보고된 건 처음”이라며 “(러시아가) 재래식 무기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문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서가 1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지금 상황에 대입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국제전략연구소의 기술 및 무기 통제 책임자인 윌리엄 알버케는 러시아가 여전히 문서에 명시된 핵무기 사용 기준에 따라 행동한다며 “재검토된 계획(rethink)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문서에는 중국의 러시아 공격 시 러시아가 중국군 2차 침공 전력의 진격을 막기 위해 전술핵으로 대응하는 시나리오도 담겼다.
우크라이나 전황 악화로 유럽에서 ‘레드라인(한계선)’으로 여겨지는 직접 파병이 거론되는 점도 러시아의 핵 위협을 부채질할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과 국경을 맞댄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한 바 있다.
라트비아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독일 DPA통신에 “나토 동맹국이 파병에 합의하면 라트비아도 참여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등이 파병설을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일부 유럽 국가들은 호응하고 있다.
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28일 “이제는 러시아 동결자산의 초과 이익금을 우크라이나를 위한 군사장비 공동구매에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밝혀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된다.
EU는 러시아 동결자산에서 발생한 이자, 배당금 등 수익금을 민간 분야 재건에 활용하자는 안엔 어렵사리 합의했지만 전장에서 필요한 무기를 구입하는 데는 합의하지 못했다.
푸틴 대통령은 29일 모스크바 크레믈궁 인근 고스티니 드보르에서 한 상·하원 의원 대상 연례 국정연설에서 최근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는 방안을 논의했다며 “러시아에 새롭게 개입하려는 시도는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 대규모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나라 영토에 파병했던 자들의 운명을 기억한다.
이번에 개입하는 사람들의 결과는 더욱 비극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핵 추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닉과 수중 핵무기 포세이돈 등 차세대 핵무기 시험이 완료 단계고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은 실제 운용되고 있으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마트를 곧 전투 임무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선 약 보름 전 이뤄진 이번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의문사에 대해선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러시아의 ‘다음 침공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옛 소련 국가 몰도바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몰도바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이날 몰도바 정부로부터 경제 봉쇄를 당하고 있다며 러시아 의회에 도움을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민경·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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