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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국헌신 태극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세계일보 기사제공: 2024-03-07 15:29:20

“어렵게 얻은 그 비행기를 겨우 이틀 타고 전사한 것이 원통하다.
” 6·25전쟁 초반인 1950년 7월 신성모 당시 국방부 장관이 북한군과의 전투 도중 목숨을 잃은 이근석 공군 대령을 추모하며 남긴 기록 일부다.
개전 직후 우리 공군엔 연락기와 훈련기만 있을 뿐 전투기는 한 대도 없었다.
급한 대로 주일미군이 보유한 F-51 무스탕 전투기 10대를 넘겨받기로 했다.
이를 인수하기 위해 이 대령 등 공군 조종사 10명이 한국을 떠나 일본 이타즈케(板付)에 있던 미 공군기지로 갔다.
1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F-51 조종법을 익혔다.
제대로 된 훈련은 단 하루뿐이었다는 전언도 있을 만큼 말 그대로 ‘벼락치기’ 공부였다.

공군대구기지 안에 있는 이근석(1917∼1950) 장군 흉상. 6·25전쟁 당시 이 장군이 몰았던 F-51 전투기가 대구 비행장에서 출격한 점을 기념해 1962년 들어섰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들은 쉴 틈도 없이 한국 복귀 이튿날인 1950년 7월3일부터 곧장 실전에 투입됐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7월4일 이 대령은 경기 안양 방면에서 북한군 기갑부대 공습에 나섰다.
적이 쏜 대공포에 맞아 추락할 지경에 이르자 그는 전투기를 몰고 북한군 탱크로 돌진해 장렬히 산화하는 길을 택했다.
이튿날 신 장관이 이런 기록을 남겼다.
“어제(1950년 7월4일) 오전 11시 적의 탱크가 수원을 향하여 들이밀 때에 이것을 폭파하려고 나갔던 우리 비행기 4대 중에 이 대령이 조종하던 비행기가 적탄에 맞아서 떨어졌다.
” 이 대령에겐 준장으로의 1계급 특진이 추서됐다.
1962년 공군대구기지에 고인을 기리는 흉상이 세워졌다.

6·25전쟁 당시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F-51 무스탕. 뉴스1

고인은 1949년 공군 창설 직후부터 전투기 확보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하지만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 고조를 우려한 미국은 호락호락 전투기를 내주지 않았다.
고인의 산화에 가슴 아파하던 공군 장병들의 말을 인용해 신 장관은 “군인으로서 전사한 데 대하여 슬퍼 우는 것이 아니라, 지난 두 해 동안 그 비행기를 얻어가지고(얻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 드렸던(들였던) 이 대령은 어렵게 얻은 그 비행기를 겨우 이틀 타고 전사한 것이 원통하다는 뜻이오, 하늘 같이 믿고 그 비행기 뒤를 따라 날아갔던 공군 장교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 하여 운다”라고 소개했다.
당시 우리 군의 처지가 얼마나 딱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6일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72기 졸업 및 임관식에서 6·25전쟁 참전 조종사인 이배선 예비역 대령(왼쪽)이 공사 72기 졸업생 대표 강민성 소위에게 태극기를 걸어주고 있다.
뉴시스

6일 충북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제72기 졸업 및 임관식이 열렸다.
공사 1기생이자 6·25 참전 조종사인 이배선 예비역 대령이 졸업생 대표 강민성 소위 어깨에 태극기를 걸어줬다.
전쟁 당시 그가 몰았던 전투기가 바로 그 ‘어렵게 얻은’ F-51이다.
해당 태극기에 얽힌 사연도 눈물겹다.
1952년 공사 2기 후배들이 전쟁터로 떠나는 선배들의 무운을 빌며 저마다 격려 문구와 서명을 적어 전달한 일명 ‘위국헌신 태극기’를 72년 만에 실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올해 92세인 이 예비역 대령은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70여 년 전 목숨 바쳐 조국을 지켰던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가슴이 찡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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