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정착지원법 ‘헛바퀴’
첫째 아들 北에 두고 남한땅 왔지만…
함께 온 둘째 적응못해 ‘고통의 나날’
노동시장 진입 벽 높아 경제적 고립
‘지인 찬스’ 28%… 취업 경로도 한계
“산업재해 등 법률·인권적 지원 제한
지원단체간 유기적 협력 가장 중요”
“너무 힘들어서 옥상에 올라갔는데, 경비 아저씨가 말렸어요. 한국은 법과 인권이 있으니까 살아보라면서요. 그렇지만 잘 모르겠어요.”
이순복(55)씨가 2017년 탈북을 결심한 당시에만 해도 남한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씨에게 그 희망은 마치 ‘파랑새’처럼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함께 내려온 둘째 아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있고, 북에 두고 온 첫째 아들은 지난달 소식이 끊겼다.
이씨는 “자식 하나를 죽이고 이렇게 건너왔는데 남은 자식도 죽으려고 한다”며 “이제는 끝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지난 2023년 12월1일 열린 북한이탈주민 일자리 박람회에서 구직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정부가 북한이탈주민법에 근거해 북한이탈주민을 지원하고 있으나 노동시장 진입이 쉽지 않아 이들 상당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뉴스1 |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 늘면서 최근 5년간 사망자 8명 중 1명은 스스로 삶을 등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신체·정신적 질환, 고독으로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기 위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이 1997년 처음 시행됐지만, 27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적 고립 등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의 어려움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통일부에서 받은 ‘북한이탈주민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간 탈북민 사망자 518명 중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68명(13.1%)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8명 중 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것이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16명(18%), 2019년 10명(12.5%), 2020년 9명(8.4%), 2021년 18명(15.2%), 2022년 15명(11.8%)으로 줄곧 10%대 수준이다.
사망 원인은 극단적 선택 외에 병사 380명(73.3%), 사고사 51명(9.8%), 원인 미상 19명(3.6%) 순이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실시하는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서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낀 북한이탈주민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결과 신체·정신적 질환 및 장애(28.5%)가 가장 많았다.
이어 경제적 어려움(26.2%), 외로움·고독(16.24%) 때문이라고 답했다.
북한이탈주민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는 경제적 문제가 주로 거론되는데, 이는 노동시장 진입에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취업자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나 인턴이라고 답했다.
비정규직과 인턴의 고용계약 기간은 1년 미만이라는 응답이 60.8%에 달해 고용안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의 취업 경로에서도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인을 통한 취업이 27.5%에 달했고, 남북하나재단 13.1%, 고용노동부 고용센터 9.1% 등으로 직접 지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탓에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45.7%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사회 안착을 위해서는 일자리나 일상생활 등에서의 세밀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따가운 시선 속에서 체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적응 문제가 사회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는 만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북하나재단이 매년 300억∼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탈북민 보호 및 정착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탈북민 사각지대는 여전하다”고 꼬집는다.
특히 법률·인권적인 지원이 제한돼 있다는 지적이다.
탈북미혼모·장애인 자립지원협회의 이나경 대표는 “남북하나재단에서도 산업재해, 임금 체불, 의료 소송, 다단계 피해, 사기 등과 관련한 법률 지원은 예산에 책정돼 있지 않아서 지원을 해 줄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산하 북한이탈주민법률지원위원회에서 법률 지원을 하는 송윤정 변호사는 “북한이탈주민이 겪는 어려움은 복합적이기 때문에 법률 상담이나 소송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 많이 있다”며 지원 단체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강조했다.
이씨 아들의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이씨의 아들은 지난해 8월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지난해 5월 이씨가 가정폭력을 행사한 남편 A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청구했는데, 그 과정에서 세대주인 A씨가 친자가 아닌 이씨 아들의 전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씨의 아들은 현재 탈북민단체 사무실에 전입돼 있다.
이씨는 “아들과 남편 셋이 탈북해 이곳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내 아들이 내 밑으로 전입이 안 되는 이유를 알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송 변호사는 “이들이 법을 잘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탈북민이 일상생활에서 오는 어려움들이 있어서 적절한 대응을 하기 어려워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그래서 보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예림·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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