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재난관리 훈령 개정 안팎
해병 순직사고 이후 우려 고조
각 군 대민지원 안전규정 고심
해병대 “현장조치 매뉴얼 활용”
강제성 부족한 ‘훈령’으론 한계
‘현역병 중처법’ 헌재서 심사 중
‘상관 처벌’ 法개정 작업 추진도
지난해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고 원인은 사단장을 비롯한 지휘관의 무리한 실종자 수색 지시와 압박, 구명조끼 지참 등 안전조치에 소홀한 점이 꼽힌다.
군 장병 임무 범위를 제한하고 이를 어긴 부대장에게 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뿐만 아니라 각 군도 대민지원 시 안전조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해병대 관계자는 16일 세계일보의 질의에 “순직사고 이후 해병대 안전규정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안전규정은 해병대의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안전 제고 업무와 안전정책 수립 및 시행에 필요한 지휘관의 책무나 안전관리위원회 운영 관련 사항과 절차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안전규정뿐만 아니라 대민지원 시 위험요인 분석, 안전대책, 보호장구 등을 명시한 ‘대민지원 유형별 안전대책’과 ‘현장조치 매뉴얼’을 작성해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 수해복구 지원 구슬땀 16일 육군 35사단 장병들이 지난주 내린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전북 익산시 소재 시설하우스 수해복구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익산시 제공 |
현재 해병대 1사단은 국방 재난관리 훈령상 재난신속대응부대로 지정돼 있다.
경상도 지역만 해병대 1사단이 맡고, 다른 지역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육군 특수전사령부 여단이 지정돼 있다.
신속대응부대는 대형화재 및 고립주민 구조 지원, 폭발·붕괴 사고 시 인명구조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해병대 신속대응부대는 도서·연안 지역 피해복구 및 인명구조·수색 지원이 임무로 명시돼 있다.
이 때문에 병사 중심으로 이뤄진 해병대의 신속대응부대가 위험지역 인명구조·수색 지원 업무에 투입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해 사고 당시에도 채 상병과 같이 수영을 하지 못하는 병사도 수중 수색 작전에 투입됐기 때문이다.
해병대 관계자는 “핸드북에는 실종자 수색작전 시 강상과 해상을 수색하는 부대를 고무보트(IBS) 운용 부대와 수색부대로 구분하고, 필요시 상륙장갑차대대를 지원하는 것으로 명시했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선진국처럼 군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보다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명대학교 최병옥 교수가 최근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이 발간한 ‘월간KIMA 군사와 안보’에 소개한 바에 따르면, 미군은 국방부 안전 및 보건프로그램(SOH)을 통해 군사 및 민간 부문에서 안전과 보건을 보장하는 정책과 절차,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SOH는 각급 부대 최고 지휘관이 안전 및 보건프로그램을 관리·감독하도록 규정한다.
부대는 안전 및 보건 관리자를 지정해야 하며, 이들은 지휘관에게 직접 보고하고 안전 관련 사항을 조언할 책임을 지닌다.
 | | 용산 국방부 청사 모습. 뉴시스 |
다만 강제성이 부족한 훈령만으로는 재발방지에 한계가 있다.
군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현역병도 각종 재난, 수해복구, 작업 등에 위험 임무에 투입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어서다.
현역병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에 포함해달라는 헌법소원도 제기됐다.
국회에서는 긴급상황 등으로 군이 동원될 시 지휘관에게 안전의무관리 의무를 부여하고 인명사고 발생 규정 위반 여부를 판단해 처벌할 수 있도록 관련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군 법무관 출신 심제원 변호사(법무법인 여기)는 “채 해병 사건에서도 사단장, 대대장, 중대장 등 지휘관들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논란이 있었는데 법률에 규정하면 명확해질 것 같다”며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이 아닌 현역 병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취지의 법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이미 직업군인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라고 말했다.
다만 위험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의 특성상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건일 변호사는 “잘못된 지시나 명령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면 징계도 할 수 있고 다른 법령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또 다른 처벌법을 만든다면 사고 책임을 국가보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현모·유경민·박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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