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 논리 두 가지 보니
의대생 등 목소리 협의 반영 필요
1509명 증원되고 휴학생 복귀 땐
평소 2.5배 달하는 인원 수용 불가
교수 채용 동시 진행 땐 확충 난항
정부, 수능 하루 앞둬 불가능 입장
일각선 “2026학년도 논의도 촉박”
여·의·정 협의체 실무위원회가 13일 2025년 의대 증원 감축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지만, 정부가 방침을 바꿔 의대 정원을 재조정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불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시작되는 정원 논의는 정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올해 2월 2000명 증원을 결정한 뒤 이미 한 차례 줄여 내년엔 1509명만 늘리기로 한 상태다.
그렇다고 의료계의 요구를 마냥 거부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여·의·정 협의체를 출범하며 여당은 크리스마스 전까지 의미 있는 결과를 내겠다고 했다.
현재 참여한 의료 단체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이들은 정원 조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강의실이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 |
협의체에 참여한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당장 현행 증원 규모를 유지할 경우 협의체 불참을 선언한 전공의·의대생들의 목소리를 협의 내용에 온전하게 반영할 수 없고, 이대로는 내년 의대생 교육도 힘들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의대학장 단체인 KAMC는 증원 규모가 큰 지방 의대들의 신규 교수 채용이 더디고 당장 기자재·시설 확충이 부족하다는 점 등을 언급하며 “증원 규모 축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명→1509명→1200명?
12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한국의과대학·KAMC는 전날 여·의·정 협의체 전체회의에서 ‘2025년 의대 증원 1509명’과 관련해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넘기지 않고 각 의대들이 증원 준비 상황을 반영해 모집인원을 일부 줄이는 등의 방법으로 증원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통해 기존 증원분(1509명)의 20%인 300명가량을 더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앞서 증원 규모를 줄인 선례가 있어 추가 감축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2월6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을 발표했다.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었는데, 의료계는 증원 백지화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에 사직서를 내고 집단이탈하고 의대생들도 휴학계를 냈다.
3월 말부터 의대 교수들도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반발이 커지자 정부는 증원 규모를 2000명에서 1509명으로 줄였다.
국립대 총장들이 ‘대학별로 의대 증원분을 최대 50%까지 자율적으로 감축하게 해달라’고 하자 교육부가 받아들였고, 내년 의대 모집인원은 4567명으로 확정됐다.
이번에 의료계 제안이 관철되면 최초 정부가 설정한 2000명 증원 규모는 1200명대까지 줄어들 게 된다.
◆“교수·시설 부족, 전공의 참여 필요”
의료계가 의대 증원 축소를 주장하는 건 교수·시설·기자재 부족으로 정상적인 교육이 힘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전공의·의대생들을 양지로 끌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1509명이 증원되고 휴학생들까지 복귀하면 평소의 2.5배에 달하는 7500명이 한꺼번에 수업해야 하지만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지난달 국정감사 등에서 제기됐다.
정부는 국립대 의대 교육여건 개선 및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2025년 330명, 2026년 400명, 2027년 270명 등 교수 1000명을 증원한다는 계획이다.
2025년 예산안에 330명 증원을 위해 260억원까지 편성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2025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보고서’에서 교수 1000명 증원 계획에 대해 “9개 국립의대 등이 내년에 채용을 동시에 진행하면 교수 확충이 어렵고 공개채용에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교수 인력풀이 한정된 상황에 의대들이 경쟁적으로 인력을 채용하면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의 이직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국내 의료인력의 수도권 선호가 뚜렷해 비수도권 의대들은 교수 확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2∼2.5배로 늘어나는 인원을 수용할 강의실 등 시설도 부족하다.
부산대 등 일부 지방대 총장들은 국감에서 “신축 건물이 3∼4년 뒤 완공되지만 교육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학생회관을 개조해 강의실로 활용해야 하는 등 정상적인 교육 여건은 아니라고 의원들은 지적했다.
내년 증원이 임박하면서 교육 위기 우려도 더 커지고 있다.
충북대 고창섭 총장은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에게 “내년에 복귀하면 학업 환경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면서 복귀를 촉구하는 서신을 6일 보냈다.
앞서 고 총장은 국감에선 “내년에 126명, 올해 입학한 49명이 모두 수업을 들어도 강의실은 충분해 문제가 없다”고 했다.
 | 여·의·정 협의체 첫 실무위원회 회의를 하루 앞둔 1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증원 축소, 정부·전공의 입장은?
의료계에선 전공의들을 협의체 논의의 장으로 불러내기 위해서라도 의대 증원 축소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다만 전공의들이 2025년 증원 정지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축소 논의에 호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정부도 당장 증원 축소를 선뜻 받아들이긴 어렵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모집인원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모레 대학수학능력시험이고 수험생들은 수능이 끝나면 곧장 대학별 고사, 정시모집 준비 등에 들어가는데 이런 상황에서 모집인원을 바꾸기는 어렵다”며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해볼 수는 있지만 2025학년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2026학년도 정원을 얘기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여당이나 정부가 협의체에서 다른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2026학년도 정원을 논의할 시간도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고등교육법은 수험생 혼란 방지를 위해 전년도 4월 말까지 대학입학전형시행계획을 확정하도록 하고 있고, 2026학년도 대입 정원 등도 올해 4월 발표됐다.
각 대학이 대입 시행계획을 확정하는 내년 5월까지 시간이 있지만 선발 규모가 늦을수록 수험생 혼란은 더 커진다.
대입은 최상위권 수험생들이 의대부터 채우는 구조라 의대 모집인원이 바뀌면 다른 입시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2026학년도 대입도 이미 대입사전예고제를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라 시간이 많지 않다”며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2026학년도 모집인원도 내년 초엔 확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영·김유나·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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