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최용학 경남 합천 연제농원 대표 둥근 공 닮은 빨간색의 열매… “원산지는 중국” 중국 문헌 뒤지고, 실험 통해 재배방법 터득 재배 실력 인정받아 선도 농가에도 지정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모두 전달할 것” 귀농계획표 강조… “적어도 5년치 계획 세워야”
난생 처음 보는 열매다. 옅은 빨간색의 열매는 둥근 공을 닮았다. 호두알 크기의 작은 송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마치 축구공을 보는 듯 했다. 열매가 달린 나무는 엄지 손가락 굵기에 키는 2m가 넘었다. 가느다란 나무에 새파란 잎사귀가 20∼30개씩 달려있다. 지줏대에 의지한 나무는 비닐 하우스에서 제법 큰 포트망에서 3년 정도 자랐다. “원산지는 중국 남서부 고산지대죠” 귀농 8년차인 최용학 연제농원 대표는 이 나무를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국내에서는 아주 생소한 과일 나무다. 이 나무 이름은 흑노호다. 최 대표는 국내 재배 선구자다. 최 대표는 2016년 퇴직 후 여행삼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른 경남 합천군 황계폭포에 반했다. 최 대표는 그 길로 아내를 설득해 밭을 구입하고 전원주택을 지었다. 최 대표는 부산에서 굵직한 회사에 다닌 엔지니어링 출신이다. 그는 대우조선에서 특수용접 훈련교사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후 강관 철탑을 세우는 사업을 했다. 연 매출 100억원대를 올렸으나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때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손을 댄 것은 PCM보일러 회사다.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갔죠” 최 대표의 인생 1막은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도 자연스럽게 직장과 사업에서 손을 뗐다. 귀농 후 그는 친구들을 전원주택으로 불러 백숙을 삶아먹는 등 한가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냥 놀고 먹기엔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귀농 생활이 무료하고 심심했다. 합천군에서 운영하는 새합천미래농업대학에 등록했다. 아내와 함께 2년간 귀농아카데미인 농업대학에 다녔다. 여기서 우연히 흑노호를 알게 됐다. 이 때부터 흑노호와 함께하는 인생 2막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흑노호의 가치를 봤어요” 그는 흑노호가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는 작목이라 언젠가는 빛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미래가치가 있는 작목으로 판단하고 더 알려지기 전에 선점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흑노호의 재배는 쉽지않았다. 처음엔 친환경 EM(유용미생물균)을 너무 많이 주는 바람에 흑노호의 줄기가 말라죽어갔다. “물을 많이 뿌려주고 겨우 살렸어요” 이렇게 재배방법을 하나씩 경험으로 터득했다. 중국 문헌도 뒤졌다. 직사광선보다는 흐린 빛을 좋아하고 병충해에 강하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비닐하우스에 직사광선을 막아주는 가림막을 설치했다. 뿐만 아니다. 토양은 중성이나 약산성이 좋고 비료를 뿌리는 방법도 재배 실험을 통해 알게됐다. 여기까지 오는 데 5년이 걸렸다. 그는 흑노호 재배방법을 거의 터득했다. 재배에 자신감이 생겼다. 흑노호는 열매와 줄기, 뿌리는 비타민C와 18종의 아미노산이 풍부해 식용이나 의약용품으로 쓴다. “어디에 좋은지 과학적인 입증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그는 부산 동명대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2022년 대학 교수들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암세포 성장억제와 관절염, 류마티스, 항염증, 심혈관 여성들의 피부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됐다. 이를 토대로 합천군 농산물가공센터에서 액상차를 만들었다. 곧바로 특허처에 특허 등록까지 마쳤다. 마지막 관문은 마켓팅이었다. 아무리 좋은 액상차라도 팔지를 못하면 소용 없는 일이었다. 쇼핑몰을 두드리고 유통 시스템을 활용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 연간 매출은 5000만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액상차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홍보가 되지 않은 게 안타까웠다. 최 대표는 최근 합천군에서 지정하는 선도 농가에 이름을 올렸다. 흑노호 재배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흑노호 멘토가 됐다. 합천군과 함께 재배 면적 확대를 위해 멘티를 선정했다. 멘티에 선정된 다섯농가 모두 귀농인들이다.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모두 전달할 것입니다” 그는 흑노호 재배의 지름길을 멘티들에게 전수할 계획이다. 그가 5년간 재배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압축해서 가르치기로 했다. 지난 해 그는 흑노호에 관심을 보인 주변 지인들에게 5∼6그루를 길러보라고 줬지만 단 한사람도 성공하지 못했다. 흑노호를 처음 재배할 경우 대개는 실패한다. 아열대 작물인데다 온도와 습도, 채광 등 생육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최 대표의 흑노호 재배 목표는 항노화 기업설립이다. 사람에게 이로운 흑노호 원료를 기반으로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공장을 짓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재배보다는 흑노호의 대중화와 유통, 판매망 구축에 나설 방침이다. 흑노호 재배는 그가 지정한 위탁 농가에 재배 기술을 전수해 보급하고 전량 수매하는 방법으로 흑노호 원료를 확보할 방침이다. 최 대표는 예비귀농인들에게 귀농계획표를 반드시 짜서 내려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5년치 계획을 세워야 해요” 그는 작물 선정은 물론이고 판매전략까지 세워서 귀농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 조언은 작목 선택이다. 요즘 귀농하는 대부분은 일정한 소득이 필요하다. 농사를 지어 수입을 내야 해 작목을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는 의미다. 주의할 점은 주변인이 추천하는 작물을 꼼꼼이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추천을 받고 내가 재배할 수 있는지, 공급은 넘치지 않는지, 판로가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귀농인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달라고 물었다. 사업가 출신인 그의 말이 아직도 귀전에 맴돈다. “어떤 사업보다 귀농사업이 더 어려웠다” 합천=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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