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라이벌이자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왔던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안보와 경제를 위협하며 창끝을 턱 밑에 들이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사실상 무역 금수 조치 속에 경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43%를 차지하는 양국의 경제 탈동조화(디커플링)는 이미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양국 갈등은 공급망과 플랫폼·기술·외교 등을 포함한 전방위적 전면전으로 확전 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관계 파탄으로 새로운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며 "경제적 관계가 틀어지면서 향후 수년간의 전반적인 세계 안보와 경제적 안정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본지는 군사, 기술, 경제 부문에서 펼쳐지고 있는 두 강대국의 패권 전쟁 실태와 파장 등을 총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수십년간 불가분의 무역 파트너로 공존해 온 미·중이 '경제적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의 길을 걷고 있다.
미국 로이터통신은 이를 두고 "디커플링은 더 이상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라고 짚었고, CNN은 "아주 복잡한 이혼 절차"에 비유했다.
최대 245%(미국)와 125%(중국)의 고율 관세로 핑퐁 게임을 벌인 양국은 반도체·희토류·선박·태양광 패널까지 모든 교역 대상을 무기화며 상대국을 압박 중이다.
다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관세 '50% 인하'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화해 무드'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씩 나오고 있다.
중국 정부의 비판처럼 100%를 넘어선 관세는 더 올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미국이 최근 꺼내든 카드는 동남아 태양광 셀·패널 반(反)덤핑 관세다.
미 상무부는 말레이시아·캄보디아·태국·베트남 등 4개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대상이라고 지난 21일 예고했다.
반덤핑 관세는 6.1~271.28%며 상계 관세는 14.64~3403.96%다.
특히 캄보디아는 조사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3521%를 때려 맞았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미 상무부는 1년간의 조사 끝에 "4개국의 회사들이 중국부터 보조금을 받아온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는 6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심의를 거쳐 확정된다.
사실상의 퇴출 조치가 확정될 경우 미국 태양광 시장 성장에 수혜를 입어온 이들 기업의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 때 도입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힘입어 미국 태양광 시장은 폭발적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단기 에너지 전망(STEO)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믹스 내 태양광 발전 비중은 2023년 4%에서 2024년 5%, 2025년 7%로 순증 추세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됐다.
2025년에는 무려 석탄 화력발전 용량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주 중국의 조선·해운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산 선박을 이용하는 모든 해운사에 오는 10월부터 미국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USTR은 중국 기업이 운영하거나 소유한 선박에 t당 50달러의 입항 수수료를 징수하고 이를 매년 올려 2028년에는 t당 140달러가 되게 하겠다고 밝혔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을 이어 대중 반도체 칩 수출 제재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바이든 지우기'에 나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전임 정부 기조가 이어지는 거의 유일한 분야이기도 하다.
반도체 칩 제조사인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인텔 등이 희생양이 됐다.
이들 기업은 중국에 반도체 칩을 수출하고자 할 경우 미국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
엔비디아의 경우 그동안 규정을 위반해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에 반도체 칩을 제공했는지 조사도 받고 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엔비디아가 싱가포르를 우회했는지 여부도 들여다본 바 있다.
중국은 전략적 자원 수출 제재로 맞불을 놨다.
연초에는 텅스텐 등 3종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중희토류 7종으로 확장됐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퍼스트 버디'로 불렸던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조차 중희토류 금수 조치에 당혹스러워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해당 품목은 다양한 전기 모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자석의 핵심 재료다.
이 전기 모터는 전기차·드론·로봇·미사일·우주선의 주요 구성 요소이며 내연기관 차량에도 사용된다.
아울러 중희토류는 제트 엔진·레이저 장비·자동차 전조등·점화 플러그를 제조할 때 활용되는 화학물질에도 사용되며 AI 서버와 스마트폰 칩의 부품인 커패시터(축전기)의 핵심 재료이기도 하다.
중국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수출을 통제함으로써 각국에 은근한 경고를 보내는 한편 특정 국가를 타깃으로 한 조치로 인해 받을 수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재도 피했다.
이번 주에만 34개국과 무역 회담을 진행하는 미국 편에 세계 각국이 선뜻 서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시진핑 국가주석 역시 올해 첫 외교 순방지로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 등 3개국을 찾으며 '내 편 만들기'에 나섰다.
양국 관계가 틀어진 후 중국은 보란 듯 미국 기업들을 배척하는 모습도 보였다.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를 포함한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군민 양용 물자 수출을 제한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행기 제조사인 보잉사는 중국이라는 초대형 고객을 잃고 좌초해 사업 포트폴리오까지 조정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영화 수입에 제동을 걸면서 할리우드에 치명타를 입히기도 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대목은 양국 지도자들이 '무서운 것 없다'는 기세로 양국 경제를 갉아먹는 '치킨게임'에 달려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트럼프 1기 때와 달라진 시진핑 국가주석의 태도에 전 세계 외신들이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 매체인 프랑스24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7년간 수출처를 다변화하며 미국 의존도를 낮췄다"며 "미국은 1기 때와 달리 '방 안의 어른(adults in the room)'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방 안의 어른은 1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를 막았던 존 켈리 전 비서실장, 짐 매티스 전 국방부 장관, 허버트 R.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중국과의 대화를 호언장담했지만 시진핑 국가주석과는 아직 통화를 하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미국 언론을 통해 "중국과 곧 협상할 것" "중국의 전화를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내보냈지만 중국은 묵묵부답으로 응수했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달라졌다.
지난 22일에는 품목별로 최대 245%에 달하는 대중(對中) 추가 관세에 대해 "매우 높다"고 인정하면서 협상할 경우 "그 정도로 높게 있지는 않을 것이며 상당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뒤인 23일에는 "향후 2~3주 안에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절반 이상 낮춘 50~65%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국가 안보 위협 여부를 기준으로 품목에 따라 대중 관세를 차등 부과하는 방안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