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로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 로마로 향하는 전용기 ‘에어포스원’ 안에서 취재진에게 던진 말이다.
‘그런 일’이란 역시 미사에 참여하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만나 대화할 가능성을 뜻한다.
기자의 관련 질문에 ‘나로선 그저 하찮게 여긴다’는 속내를 솔직히 드러낸 것이다.
장례 미사를 취재한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 기자는 “지난 1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 이후 처음 같은 장소에 있었던 바이든 부부와 트럼프 부부가 인사를 나눴는지, 심지어 서로 발견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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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만난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인사를 건네고 있다. 바이든은 이탈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게티이미지 제공 |
양자회담이든 다자회의든 국제 행사에서 최고의 의전과 예우를 받길 원하는 트럼프를 위한 교황청 측의 배려였다.
트럼프는 2022년 9월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국장(國葬)에 참석한 바이든 당시 대통령 부부에게 맨 앞줄이 아니고 그보다 몇 줄 뒤의 좌석이 배정되자 “세계가 미국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증거”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바이든처럼 물러 터진 지도자가 미국을 대표하니 무시를 당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정치든 뭐든 위치가 가장 중요한 것(LOCATION IS EVERYTHING)”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교황의 장례 미사에서 바이든 부부는 트럼프 부부보다 몇 줄 뒤에 앉았다.
각국 조문 사절 중에서도 장관 등 ‘급’이 다소 떨어지는 인물들을 위한 구역이었다.
자연히 행사 내내 바이든 부부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고는 하나 현직이 아니고 전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바이든은 풀 죽은 모습은 아니었다.
WP에 따르면 바이든은 앞선 4년 동안의 정상외교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외국 지도자들과 눈이 마주치면 환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경우 함께 휴대전화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포즈도 취했다.
상원의원 생활만 36년을 한 노련한 정치인의 관록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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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부인 질 바이든 여사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 미사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올해 1월 퇴임을 앞두고 바이든은 최후의 해외 순방국으로 이탈리아와 바티칸 교황청을 선정했다.
그 자신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과 만나 안부를 묻고 건강을 기원함은 물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의 국제 정세를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싶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LA) 등 미 서부를 강타한 대형 산불 진화가 시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한가하게 외유나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통령을 그만두기 전 교황과 마지막으로 재회하길 간절히 원했던 바이든의 꿈이 산불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