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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나는 전직, 현직 OO 이다), 취미, 특기, 지역정보, 생활정보 등 본인이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가이드라인]
현직 도 닦는 도사입니다. 제가 쓴 글을 올려봅니다. 읽어보시고 조언 부탁드립니다. 24
이름: nature102030


등록일: 2020-09-05 18:29
조회수: 3193 / 추천수: 2





  자유란 무엇인가?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자유로 나누는 것은 고전적이다. 자유란 존재의 총체적 자유로움을 말한다. 그렇다면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자유 말고 무엇이 있을까? 바로 상대적 자유이다. 물질적 조건이 동등하더라도 정신적 자유에 따라서 느끼는 자유도가 달라지고, 정신적 조건이 비슷하더라도 물질적 자유에 따라서 느끼는 자유도가 달라진다. 곧 자유는 마음자세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의미이다. 자유는 존재의 총체적 성장과 완성에 따른 보상이자 대가이다. 그렇다면 존재의 총체적 성장과 완성이란 무엇인가? 존재는 아름다움 곧, 완성을 향해간다. 그 끝이 없는 여정을 가늠하기가 어렵겠지만 얼마만큼 갔는지 그 객관적 상황은 분명 존재한다.

 

  존재의 총체적 성장과 완성을 위해서는 수행과 단련을 해야 한다. 존재의 수행 곧, 구도이다. 구도란 도를 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라고 해서 사이비나 종교단체를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스스로 일어나서 삶의 가치를 향해, 아름다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성찰하며 단련해 나간다. 건강 또한 가꾸어간다. 진리와 함께 스스로 일어나 삶의 가치를 향해간다. 아름다운 삶을 향해간다. 그것이 구도이다. 반복해서 말할만큼 중요한 개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의 가치와 아름다운 삶을 향한 존재의 성장방법론을 다루며 진리를 통찰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존재의 수행 곧, 구도이다

 

자유를 느끼는 라는 존재는 어디에 있는가? 분명 존재하는데 육신에 있는 영혼인가? 뇌의 시냅스에 의한 의식인가? 질문해볼 법 하다. 그러나 그런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 뿐이다. ‘라는 존재는 존재하지만 변화한다. 그것이 객관적 통찰이다. ‘라는 존재는 성장할 수 도 있지만 반대로 역경과 고난에 무너질 확률도 있다. 그렇다면 라는 존재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 의 자세일 것이다. 역시 객관적 통찰이다. “[]라는 존재는 존재의 성장과 아름다움, 완성을 향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바른 선택을 하고, 바른 길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첫 번째이다. 그와 동시에 존재의 성장과 완성의 가치를 깨달아갈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존재의 선택을 했으면 삶에서 라는 존재를 너무 내세우지 말고 그것을 내려놓아야 함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집착과 번뇌가 라는 집착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의 안위, ‘의 이익, ‘의 것 등 모든 활동의 중심이 로 잡혀있으면 자유에서 멀어짐을 알 수 있다. 과감하게 라는 존재를 내려놓아야 한다. 용기이다. 어떻게 할 게 별로 없다. ‘라는 존재를 내려놓고 더 큰 의미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향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된다. 실행해보자. 어떠한가? 바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존재이다.

 

오만하지 않아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내가 확실히 아는 한가지는 내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겸손이며 객관적 통찰의 시작이다. 이 세상과 존재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다. 그것을 통찰해야 더 큰 깨달음이 오는 것이다. 잔을 비워야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다. 마음을, 스스로를 비워야 한다. 스스로를 비우려면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런 그물망 없이 나를 통렬하게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또 겸손과 연결된다. 마음의 작용은 이렇게 유기적이다.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보면 무엇을 비워야 할지 알게 된다. 대다수는 욕심과 원망이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하지? 같은 의문을 해야 한다. 글을 읽을 때에도 저자와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매우 통렬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바로 대답할 수 있으면 득도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아무개이다. 라고만 대답하면 그것이 정답인가? 아니다. 나는 아무개이다. 라고 대답하며 그 안에 깨달음을 담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언어도단. 불립문자, 직지인심 이다. 모든 것은 유기적이다. 곧바로 직관적으로 통렬하게 깨달음이 전달된다. 사람의 도리를 담고, 온세상의 무한한 지혜를 담을 수 있으면 그는 이미 깨달은 존재이다.

 

일어나서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 일어나서 성찰하면 건강해진다. 사람의 작용이다. 건강이 왜 존재하는지 눈치채야 한다. 건강하면 할수록 자유와 가까워진다. 언제나 시작이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일단 지금 시작해보자. 바로 알 수 있다. 왜 알 수 있는가? 사람의 작용이다. 통찰과 지혜가 쌓여가는 원리를 운동을 하며 깨닫고 실행해보자. 삶의 바른 자세를 갖추고 운동을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머리가 시원할 만큼 지혜로워질 것이다.

 

언제나 일어나는 작용이 있는가? 사람의 작용이다. 사람은 온세상의 질서와 함께한다. 그것이 진리이며 도이다. 사람의 모습을 했다고 사람이 아니다. 사람답게 살려는 선택을 한 자만이 사람이다. 올바르지 못한 길을 선택한 존재는 무너지고 시련을 겪으며 다시 바른길로 향해야 한다. 바로 존재의 성장과 완성을 향한 온세상의 질서 때문이다. 질서는 어디에서 어디로 향하는가? 질서는 과연 존재에게 영향을 끼치는가? 고민할 필요도 없다. 마음을, 스스로를 내려놓아보라. 그 즉시 질서에 대해 느낄 수 있다.

 

달마대사는 말했다. 일체 마음을 전부 내려 놓으면 큰강의 흐르는 물처럼 무수한 묘한 촉감과 묘한 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컨디션에 따라 나타나는 느낌이다. 컨디션에 따라 몸의 느낌이 변화한다. 그것을 잘 살펴보면 바른길을 선택하고 노력했을 때 느낌이 좋아지고 풍부해지며 무궁무진해진다. 물론 어리석은 길로 가면 느낌이 이상해진다. 일반적으로 촉이라 부르지만 촉이 다는 아니다. 신비한 작용이 무궁무진하다. 또한 묘한 촉감과 작용은 객관적이어야 한다. 함부로 속단하지 말고 계속해서 노력하며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묘한 촉감과 묘한 작용에 집착하지는 말아야 한다.

 

얼마나 갔을까? 과연 그것을 알 수 있을까? 알 수 있는 지표가 있다. 바로 삶의 가치와 아름다운 삶에 대해 얼마나 깨달았는가 살펴보면 된다. 삶의 가치는 논리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논리를 벗어나야 한다. 온세상의 지혜를 통찰해 내야 한다. 너무 어려운가? 그렇다. 쉬운 것이 아니다. 어디 득도가 쉬운가? 올바른 선택으로 계속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 문듯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작용이며 온세상의 질서이다. 확실하다. 한번 믿어보기 바란다. 안 믿어서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진리이다.

 

책을 많이 본다고 지식이 느는가? 스스로 책을 읽고 성찰하며 통찰해내야 지식이 늘고 지혜가 생긴다. 자유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남이 도와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물론 좋은 스승을 만나면 빠른 시간에 사람의 작용이 활발해져 바른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좋은 스승이란 누구인가? 스스로 비판할 능력을 가진 스승이다. 스승도 틀릴 수 있다. 그것을 알고 항상 겸손하지만 자신감 있는 스승을 분별하는 통찰력을 가져야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다.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이란 누구나 마찬가지로 유념해야 한다. 통렬하게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기적인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란 어디에서 오는가? 인내와 끈기이다. 인내와 끈기가 있는 자는 계속해서 노력하여 문제를 통찰하고 해결책을 찾아낸다. 인내와 끈기가 없는 자는 쉽게 패배주의에 빠져든다.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이 진짜 마음이라 착각해버린다. 우리는 논리를 벗어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바른선택을 하고 바른길로 가는 자에게 통용되는 능력이다. 조급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이미 한걸음 나아간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예상하기 보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급히 알려고 해봐야 많은 변수들을 생각할 뿐이다. 통렬하게 예측되는 것은 대개가 최선을 다하는 순간에 오는 직관적 능력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걱정만 하기보다는 시작을 해야 하며 미래를 디자인하기보다는 통렬하게 예측하는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것은 받아들이기 쉬운 말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라. 논리는 생각을 동반한다. 생각만으로는 대개의 일들이 안되게 되어있다. 사람의 작용으로 통렬하게 예측되는 직관적 능력을 그냥 믿어보자. 잘 살펴보면 손해볼 것이 하나도 없는 말이다.

 

변화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 모든 존재는 변화한다. 변화는 세상의 진리이다. 변화하는 존재를 거부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존재는 시간의 변화속에서 계속적으로 변화한다. 왜 변화하는가? 바로 성장이다. 대자연이 계속적으로 성장을 채찍질 한다. 절대신이 있다면 그가 채찍질을 한다. 절대신은 곧 진리이다. 진리와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면 존재는 성장과 가치를 동시에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함께하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바로 따뜻한 마음, 인간적인 사랑, 삶의 지혜를 계속적으로 가꾸어 나가야겠다는 신념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내려놓으면 곧바로 따뜻한 마음, 인간적인 사랑, 삶의 지혜를 계속적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게 변화한다. 왜 그러하는지 점차 알아가게 된다. 깨달음으로 향해간다. 존재는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갈 때 깨달음으로 한걸음 더 가까워진다. 스스로를 내려놓고,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간단한 일이다. 그것을 실행하여 잘못될 것이 하나도 없다.

 

명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방법이든 무위로 가면 된다. 화두나 수식관정신통일, 묵상기도, 알아차림, 호흡과 감각관찰 등 어떤 방법이든 무위로 가면 된다. 무위란 본래 그러함을 의미한다. 마음을, 스스로를 내려놓으면 어떤 방법이든 저절로 그러하게 명상이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염두해야 할 것이 있다. 내 명상법이 과연 맞을까? 계속 의문을 품어야 한다. 명상법보다는 마음자세가 정답이기 때문이다. 구도자의 기본자세로 그리고 삶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면서 계속적으로 명상의 자세가 옳은 길을 향하고 있나 의문을 품어야 한다. 핵심이다. 바른길. 바른길만 가야한다. 조급하게 속성법을 찾는다든가 내가 하는 명상법만 주창하면 오만에 빠져들게 되어있다. 오만에 걸려들면 엄청난 시련과 변고가 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바른길로 가면 축복과 법력이 찾아오게 되어있다.

 

 명상할 때는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며, 의존하지 아니하며, 을 그리지 아니해야 한다. 득도를 하기 위해 명상을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정신통일을 해야 한다. 원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내맡김 또한 아니다. 중용지도이다. 스스로 일어나서 바른길로 걸어가야 하며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상을 그리지 않아야 한다. 불경 중 금강경에 따르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법상, 비법상을 그리지 않아야 한다고 피력한다. 스스로에 대한 상, 사람에 대한 상, 사람들에 대한 상, 생명에 대한 상, 진리의 상, 진리가 아니라는 상을 그리지 않아야 한다. 특히 명상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상을 그리지 않아야 한다. 곧 겸손과 용기이다. 그러한 상을 그리면 명상이 옆길로 새곤 한다. 주의해야 한다. 

 

맹목적인 시야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 맹목적인 시야에 걸려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멍해진다. 무기공, 악혜공, 단멸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특히 공이 최고라고 아무것도 없고 텅 비어있음을 추종만 하는 악혜공은 치명적인 오류이다. 맹목적인 시야에 걸려들면 화두에 들 때 한가지 생각에만 몰두하게 된다. 화두도 정신통일이다. 명상은 곧 정신통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신통일을 할 때 대자연이 올바른 길로 존재를 인도할 것이다. 이것이 곧 무위이다.

 

남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아야 한다.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마음은 나의 진면목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품어주고 감싸 안아줘야 한다. 내가 더 위야 내가 더 아래야 하며 비교우위에 걸려들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승부지상주의는 우리의 심장을 막는다. 사람은 서로 복돋아 주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물론 스스로 일어나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도의 자세이다. 남을 짓밟으려는 복수심이나 내가 꼭 이겨서 기를 꺽어줘야지 하는 삿된 마음은 구도를 방해할뿐더러 시련과 변고를 부를 수 있다. 유념해야 한다.

 

시련과 변고가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아야 한다. 대자연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과 변고를 부여한다. 과연 그러한가? 왜냐하면 사람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Karma과 삶의 소명Darma이라는 유기적 연유로 시련과 변고가 오는 것이다. 결국 나에게 달려있다. 시련과 변고는 나를 채찍질 한다. 그것에 좌절하고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반성하며 자신감을 다시 회복해야한다. 반성이 첫 번째이다. 분명 나의 업과 삶의 소명이라는 유기적 연유로 시련과 변고가 오는 것이다 라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남탓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어리석은 생각과 삿된 마음이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해내고 고쳐가면 시련과 변고는 금새 물러가기 시작할 것이다.

 

엄청난 변화가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바로 득도이다. 득도는 엄청난 변화를 동반한다. 장담하건데 믿지 못할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의 지난생이 어땠는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득도하면 알게 된다. 결국 스스로 누구인지 알게 되며 진면목을 드러낼 것이다. 이것저것 숨어있던 능력들이 깨어나며 사람을 정화하고 치유할 수 있는 법력이 솟아날 것이다. 그것이 득도이다. 의외로 득도한 존재들이 많다. 삶의 자세를 바로 잡고 바른길로만 간다면 그 존재는 득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람의 작용은 삶의 자세에 달려 있다.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해야 한다. 자유는 분명 존재의 총체적 성장과 완성의 대가이다. 이것은 객관적 통찰이다. 물질적 자유와 정신적 자유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득도를 하면 자유가 동반되기 때문이다. 정신적 자유와 물질적 자유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구도자는 창조의 힘으로 인해 삶의 가치와 아름다운 삶을 실현시켜 나가게 된다. 자유, 진리와 함께 삶의 자세를 바르게 가져나간다. 삶의 소명Darma이란 곧 삶의 가치이며 아름다운 삶이다. 구도자는 이를 유념해야 한다.

 

Karma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업은 내가 지은 죄와 복으로 인한 총체적 실현가능성이다. 악업과 선업이 있다. 이 업은 우리 무의식의 근원이며, 습관과 성격 등을 유기적으로 만들어낸다. 업이 왜 무의식의 근원이며, 습관과 성격 등을 유기적으로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스스로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 말로 설명하기에 곤란한 면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업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않아야 한다. 겸손하고 바른 자세로 업을 대해야 한다. 업을 갚을 수 있는 길은 역시 바른 자세로 바른 길을 가는 것이다. 반성하고 또한 겸손하면 악업을 갚으며, 선업의 복덕을 경험할 수 있다. 명상으로만 업을 해결하려 하면 부작용이 생기게 되어있다. 총체적인 구도자의 면모를 갖추어야만 업을 해결해 나아갈 수 있다.

 

아름다운 삶을 위해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일을 할 때에는 직업의식을 가져야 한다. 도덕책에서 배운 정도만 해도 이미 성인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삶은 삶의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삶의 소명Darma과 함께한다. 아름다움에 대해 상을 그리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삶이 아름다운 삶인가? 나의 가치를 실현시키고 우리의 가치를 실현시키고, 존재 모두의 삶의 가치에 기여하는 삶이 아름다운 삶이다. 너무 어려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역시 삶의 자세이다. 나만을 위한 이기적이고 소유욕에 빠진 삶을 버리고, 모두를 위한 이타적인 삶을 선택한 자에게는 축복과 법력이 뒤따르게 되어 있다. 대자연의 법칙이다.

 

초능력이 존재한다. 모두 알고 있는 능력들이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능력, 사람을 기운내게 해주는 능력,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능력 외 많은 바른 능력들을 우리는 법력이라 부른다. 추구해야 할 길이다. 하지만 삿된 마음을 일으키는 저주, 바른 마음을 무너뜨리는 저주, 엉망진창이라고 패배주의를 심어주는 저주 외 많은 저주가 존재한다. 바른 길을 가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존재들이 하는 행위이다. 그런 존재들을 통찰해낸다면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좋은게 좋은것만은 아니다. 매우 강단있는 대처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초능력이라 부르지만 이제부터는 사람의 작용이라 불러보자. 매우 객관적인 표현이라 본다.

 

어떤자에게는 불가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대개 사람들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 자리 잡았을 때 드는 안좋은 생각이다. 어떤자에게 불가능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바로 사람에게 운명과 업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운명과 업을 부정하며 무조건 무슨일을 추구한다면 그는 완전한 실패와 좌절에 빠져들 것이다. 운명과 업을 바른 자세로 대하며 바른길로 나아간다면 대개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된 것이다. 차이이다. 그러나 운명과 업을 긍정한다고만 말하고 바른자세를 잃어버린다면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정말로 촘촘히 완전하게 아름답게 돌아간다.

 

운명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과거생이다. 과거생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기나긴 세월동안 수많은 사건이 있었고 많은 약속이 있었다. 그것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정해보자. 과연 나에게 과거생이 없다면 왜 이런 많은 사건들이 나에게 일어나는가? 대개의 사람들은 많은 사건을 경험하며 삶을 살아간다. 이제 생은 이번 한번뿐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영혼의 연속성을 부정하면 안된다. 착하게 살게 하려고 하는 말들이 아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라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바른자세로 대하면 된다. 그리고 노력을 하며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존재가 돼야 한다. 그러나 운명을 너무 깊이 알려고 하며 너무 매달리면 또한 부작용이 생긴다. 구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바른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죄와 업Karma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내가 과거에 행한 것의 대가이다. 과거란 지난생과 이번생 둘다 포함하는 시간이다. 세상이 아니라 존재에 기록된다. 세상은 안다. 그 존재에 기록된 행위의 총체가 바로 운명과 업을 일으킨다. 업과 운명은 무엇인가? 운명은 정해져 있다면 업은 가변적이다. 운명은 현상이라면 업은 에너지의 이동이다. 운명이 아름답다면 업은 처벌이다. 곧 업을 갚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변고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은 업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변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엄청난 노력을 한 자에게 주어진다. 그것이 죄와 업이 존재하는 의미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운명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바로 삶의 소명Darma이다.

 

삶의 소명Darma은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가며 행해야할 가치이다. 사명과는 다르다. 삶의 소명은 아름다움을 위한 가치이고, 사명은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아름다움을 위한 가치라는 말이 어렵긴 하다. 아름다움이란 삶의 가치를 이루어냄을 말한다. 또한 그 과정을 말한다. 삶의 소명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자세로 본인의 삶의 소명을 임하느냐가 중요하다. 모든 삶에는 사람의 작용이 존재한다. 사람의 자세가 작용을 이끈다. 삶의 소명을 안내받는 사람의 작용도 사람의 자세에 달려 있다. 바른 자세로 바른길을 가는 구도자는 삶의 소명을 바르게 안내받는 경험을 하게 되어있다. 삶의 소명을 언어로 규정하려들지 말고, 통찰하고 실천해 나아가서 이루어내기까지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사명이란 무엇인가? 삶을 살아가며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다. 곧 목숨 걸어 이루어내야 하는 일이다. 사명이 없는 사람이 없다. 사명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이는 아무개를 구해내는 일이라면 어떤이는 스스로를 구해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떤이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어떤이는 스스로 나쁜 짓을 못배우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삶의 소명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삶의 소명이 아름다움을 향해간다면 사명은 삶의 가치와 함께 한다. 무슨 차이인가? 말 그대로 과정과 결과의 차이이다. 삶의 소명이 과정이라면 사명은 결과론적 이루어냄이다. 사명은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이기에 이루지 못한다면 변고의 운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사명 또한 사람의 작용과 삶의 자세가 핵심이다. 구도자의 바른 자세를 갖춘자는 스스로도 모르게 사명을 이루어내게 되어 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전율과 묘한 촉감이 사람의 묘한 작용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대자연과 사람의 작용이다. 얼마나 수행해야 나타나는가? 구도자의 바른 자세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일어나는 현상이다. 온 몸에 묘한 촉감과 묘한 작용과 전율의 휘몰아침이 수행을 하며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것의 의미를 의아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의 감각으로 그것이 좋은 작용인지 안좋은 작용인지 알게 된다. 끈기와 인내가 있는자는 그것을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폭풍처럼 휘몰아친다고 할 정도로 강한 묘한 촉감과 묘한 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고, 잔잔한 호수같은 고요한 묘한 촉감과 묘한 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신비 그 자체이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무엇인가? 오래살고 죽는 것이 아름다운 죽음인가? 아니다. 내가 사후세계를 경험했을 때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죽을 때가 아닌 상태로 사후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을 때가 된 존재에게는 아름다운 곳일 것이다. 그곳은 편안하고 안락하며 평화롭다. 온갖 빛이 감싸안아주며 온갖 축복이 깃든 곳이다. 곧 천국이다. 아름다운 죽음이란 천국으로 가는 죽음을 의미한다. 지옥은 존재하는가? 그렇다. 지옥으로 가는 죽음은 비참한 죽음이다. 지옥은 역시 아름답다. 그러나 지옥으로 가는 존재에게는 비참하고 끔찍한 고통이 다가온다. 삶을 망친 벌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 실제로 존재한다. 아름답게 죽기 위해서는 바른 삶의 자세와 바른 길을 개척해가야 한다.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길을 걷는 자는 지옥으로 도착하게 되어 있다.

 

죽음 이후에 윤회한다는 전제가 있기에 업이 존재한다. 윤회란 무엇인가? 바로 기억의 초기화이다. 윤회를 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알아야 한다. 삶의 기회를 획득하려면 바른길을 개척해 나아가거나, 잘못 살았더라도 반성을 하고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에 헤메이게 되어있다. 가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는 존재가 있다. 이들을 환생한 존재라 부른다. 이들은 초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얽매어버린 것이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면 여러 가지 병을 지니고 살아갈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나 역시 반성하고 새로 태어난다면 그 기억들에 휩쓸리지 않고 바른길을 개척해 나아갈 수 있다.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삶은 배움의 장이다. 배움이 존재하기에 삶이 존재한다. 사람은 언제나 함께하는 배움의 기회를 인지하고 바른자세로 임해야 한다. 배움의 기회는 태어날 때부터 아니,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한다. 만약 가능성 없는 존재일지라도 배움의 기회는 존재한다. 그는 가능성을 일깨워야 한다. 언제나 함께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상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바로 죄와 업(, Karma), 약속, 인연, 공덕, 복덕, 역할, 삶의 소명(Darma) 외 여러 표현들을 고려한다. 이러한 세상의 법칙을 무시하면 안된다. 너무 깊게 파고들지 말고 바른자세로 임하면 삶의 가치를 깨달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나의 삶의 자세를 통렬하게 다시 한번 꿰뚫어봐야 한다. 분명 잘못된 자세가 있을 것이다. 아집이 바로 그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이다 라는 고집이 바로 아집이다. 집착이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상을 그리지 않아야 한다.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오만과 잘못된 습관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라는 존재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지만 나의 본질 곧, 진짜 나는 다 알고 있다. 바로 깨달았을 때의 나, ‘본질의 나이다. 존재의 깨달음은 본질의 나를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의 나는 어떠한 가능성이 있는가?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기나긴 시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의 역사는 생각보다 매우매우 오랜시간을 품고 있다. 기나긴 시간을 지내오며 얼마나 바른자세로 바른길을 개척했는지가 바로 구도의 정도를 의미한다. 도를 얼마나 이루었는가 라는 뜻이다. 이번생의 노력만으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오만이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알고 있다. ‘본질의 나를 깨달은 자는 그 수많은 시간의 과거생을 꿰뚫을 수 있게 된다. 가능성이 상상을 초월한다. 이 말의 객관적 가능성을 고려해보자. 물론 손해볼 것은 없다. ‘구도자의 바른길은 존재가 마땅히 가야할 길이다. 선택사항이라는 말도 통용되지 않는다.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지 않는 자에게는 불행과 고통이 기다릴 뿐이다.

 

세상의 법칙은 인과응보와 약육강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Karma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인과응보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오해를 할 수가 있다. 물론 오해이다. 반성하는 바른 자세는 구도자의 기본이다. 세상이 인과응보와 약육강식에 머무른다면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삶의 가치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패배주의와 부정적 의식의 장에 걸려든 존재들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자기 최면이 되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통찰하며 객관적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 배워가며 깨달아 갈 수 있다. 겸손이며, 용기이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과한 욕심만 내려놓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본질의 나는 욕심이 없다. 욕심은 육체의 여섯가지 감각에 의해 생겨나는 마음이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감각, 생각에 의해 생겨나는 허망한 마음일 뿐이다. 여러 가지 욕심은 사람이라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돈 많이 벌고 싶고, 좋은 옷 입고, 맛있는 밥 먹고 싶은 생각은 욕심이 아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과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잘못된 마음이 욕심이다. 무조건 버려야 한다. 욕심으로 인해 조급해지고 욕심으로 인해 지나친다. 욕심으로 인해 무너지고 욕심으로 인해 다른 욕심을 또 찾는다. 이를 깨닫고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노력해야 한다.

본 게시글은 작성자에 의해 2021-02-23 13:50:3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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