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중사 케로로’는 지난 1999년부터 ‘월간 소년 에이스(Monthly Shonen Ace)’에 연재되고 있는 요시자키 미네(Yoshizaki Mine) 원작의 만화이다. 이 만화를 원작으로 지난 2004년부터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일본 현지에서 총 300화 이상 방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채널인 투니버스(Tooniverse)에서 지난 2005년부터 방영중이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온라인 게임도 우리나라 게임 시장에서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일본에서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역시 우리나라에 선별적으로 수입되어 개봉되고 있다. 이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현재까지 총 다섯 편이 제작되었으며, TV에서 방영된 에피소드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스핀 오프(Spin-Off)의 성격이 강하다. 애초에 원작 애니메이션 자체가 옴니버스(Omnibus)에 가까운 형식으로 진행되므로, 본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지 못한 관객들이라 해도 이야기 자체를 즐기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하겠다.

이 ‘케로로’의 다섯 번째 극장판인 ‘기적의 사차원섬’은, 어느 날 강우주와 강한별, 그리고 케로로 소대원이 생활하는 집에 난데 없이 케로로를 쏙 닮은 석상이 떨어지며 시작된다. 이 석상이 대체 무엇을 하는 물건인지(?) 고민하던 케로로와 강한별은 결국 이것이 칠레령 이스터 섬에 존재하는 모아이 석상의 일종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스터 섬으로 향한다. 게다가 이 일행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고 모험을 떠난다.

▲ 정체 모를 물건을 가까이 한다면 그 결과는...?

흔히 ‘영화의 법칙’ 중 하나로 꼽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체 모를 물건과 관련되면 반드시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 법칙은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작용한다. 케로로와 강한별 일행은 이스터 섬으로 향하다 정체 모를 무언가의 습격을 받고 이스터 섬에 불시착한다. 섬에 떠밀려와 정신을 차린 한별은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정체 모를 쌍둥이 ‘이오’와 ‘라나’를 만난다.

‘이오’와 ‘라나’의 도움으로 잠시 생이별한 케로로와 만나서 기뻐하는 것도 잠시, 이 두 쌍둥이의 정체는 아무래도 수상쩍다. 게다가 ‘이오’와 ‘라나’의 설명으로는 오랫동안 이스터 섬에 봉인되어 있던 전설의 악령 ‘아쿠아쿠’가 부활활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오’와 ‘라나’의 정체는 무엇이며, 과연 케로로를 닮은 기묘한 석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한별과 케로로를 덮쳤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케로로와 강한별 일행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

이 작품은 이러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약 74분간 펼쳐진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다. 작품 속에서 케로로는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언가 반드시 치루어야 한다’는 당연한 테제(These)역시 던져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별은 아버지 서재에 붙어 있던 이스터 섬 포스터를 보고 키운 꿈을 이스터 행으로 실현한다. 그러나 적어도 그 순간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온전히 그의 손에 맡겨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담담히 보여준다.

▲ ‘좋아, 가는 거야’를 외쳤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다.

사실 74분간 웃고 끝나도 무방했을 작품이 이런 식으로 암암리에 메시지를 던져주게 된 데에는 각본을 담당한 야마구치 히로시(山口 宏)의 영향이 크다. 유명 작품의 애니메이션 각본을 줄곧 담당해 온 뼈대 있는 연출가인 그는, 담당하는 작품마다 은연중에 ‘남자의 모험’, ‘꿈에 따르는 책임’, ‘고난을 통한 성장’을 유난스레 강조한다. 그가 연출한 작품인 ‘기동전함 나데시코’나 ‘게이트 키퍼즈’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르리라. 그리고 이번 작품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써 놓으면 이 작품이 마치 심각한 성장 영화처럼 비춰질지도 모르지만, 초등학생부터 다 큰 어른들까지 즐겁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5월용 애니메이션’이다. 굳이 본편을 보지 않아도, 74분이라는 시간 안에 모든 것이 기승전결을 갖추어 마무리된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특성 탓에, 기존의 일본 애니메이션 상영시 등장하던 자막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더빙판이다. 투니버스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친숙한 목소리를 극장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일본식 말장난도 무난하게 한국어로 옮겼으며, 번역 수준도 흠 잡을 필요는 없다.

특히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선라이즈(SUNRISE)가 건담(GUNDAM)도 만드는 탓에, 상영 중 곳곳에서 ‘대놓고’ 특정 메카닉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곳곳에 등장하는 메카닉을 보며 실소하는(?) 재미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애초에 이 작품이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의 패러디로 구성된 작품이라, 사전 지식이 없다면 제대로 웃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유일한 흠이 되겠다. 다만 아직 개봉되지 않은 이 영화에 대해 하나 힌트를 던지자면, ‘세상에 쓸모 없는 물건은 없다’ 정도랄까.

▲ ‘이오’와 ‘라나’. 사실 이 둘의 이름부터가 말장난에 가깝다.

누군가는 ‘왜 더빙판인가, 우리는 원판을 원한다’며 볼멘 소리를 늘어 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의 대상 연령이 ‘전연령’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가로로 나오든, 세로로 나오든, 어른들도 때때로 따라가기 힘든 자막을 굳이 아이들에게 강요할 이유는 없다. 원판을 원한다면 현지에서 발매되는 DVD 등 영상 소프트웨어를 공수하면 될 일이다. 다만 오프닝(여는 노래)과 엔딩(닫는 노래)까지 우리말로 옮겼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가정의 달 5월을 앞두고 여러 영화들이 저마다 ‘가족애’를 내세우며 도전장을 내밀고 있지만, ‘케로로더무비:기적의 사차원섬’은 그야말로 유일한 애니메이션 영화다. 물론 다른 영화들도 많이 있지만, 갓 초등학교 들어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는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꿈과 희망’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든다면, 조카나 동생 손 잡고 한 번쯤 극장 구경 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한편, 일부에서는 ‘중사(軍曹)’라는 계급이 구 일본군에 존재하는 계급이라는 점,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복장이 구 일본군의 그것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음모론을 제기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문제시되는 ‘침략전쟁’을 조롱하는 것에 더 가깝다. 역사 교육, 특히 근/현대사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면 이미 알아서 걸러 듣고 볼 만 하다. 다만 요즘 국사 제대로 안 가르치는 학교가 점점 늘어 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 조카나 동생 손 잡고 극장 구경 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

케로로 더 무비:기적의 사차원섬 / 시사회 / 2010-4-22-목요일 / 전연령 관람가 / 상영시간 74분 / 평점 : 8점(10점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