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건국은 북한의 도움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못했다. (17)편 연재
■ 마오 “조선 지원” 뜻 밝히자 주더·류사오치 “신중하자” 맞서
● 한국전쟁 (중) 국공전쟁 시절 화북지역의 야전군을 지휘한 녜룽전(왼쪽 셋째)과 합류한 동북의 지휘관들. 오른쪽부터 첫째가 린뱌오
서기 875년, 당(唐) 희종(僖宗) 2년, 산동의 소금 밀매업자 황소(黃巢)가 반란을 일으켰다. 궁지에 몰린 희종은 총신 정경사(程敬思)를 사타국(沙陀國)의 족장 이극용(李克用)에게 파견해 병력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때 희종에게 핍박을 당하고 쫓겨났던 이극용은 거절했다. 내부 사정이 워낙 복잡해서 당나라에 군대를 보낼 형편도 못 됐다. 정경사는 이극용의 집안 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이극용의 아들을 동원해 그의 부인들을 구워삶았다. 이극용은 부인들을 무서워했다. 부인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군대를 동원해 황소의 난을 진압했다. 1070여년 뒤 북한과 중국 사이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김일성 방중 다음날 열린 비밀회의 마오쩌둥, 국공전쟁때 도움 언급하며 “조선 지원요청 거부할 명분 없다”뒤이어 지도부 의견 물어보니 주더 “우리 문제부터 해결해야” 류사오치 “지금은 때가 아니다” 저우언라이 “국제전 비화 가능성 커” 잇단 신중론…가오강은 달랐다 “조선 은혜 잊어서야” 참전 찬성
김일성과 1차 회담을 마친 마오쩌둥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자신을 제외한 3명의 서기와 동북의 가오강, 총참모장 대리 녜룽전까지 포함한 비밀회의를 소집해 김일성의 방중 사실을 공개했다. “간밤에 김일성 동지와 한차례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1개 병단, 3개 군만 지원해주면 통일을 이룰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스탈린도 3주일 안에 전쟁을 종결시키면 미국도 끼어들 수 없다며 무기와 공군력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는 이어서 도의적 책임에 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일성은 동북에서 20년 가까이 일본과 무장투쟁을 벌였다. 30년대 초, 우리가 장시성(강서성) 소비에트에 있을 무렵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의 지휘관 중 한 사람이었다. 15년간 장백산 지역에서 일본군에게 타격을 가한 경력 때문에, 8년간 일본과 전쟁한 우리를 가볍게 볼지도 모른다.”
국공전쟁 시절에 받았던 도움도 거론했다. “1947년 초, 린뱌오의 동북민주연군은 계속 국민당군에게 밀렸다. 북조선은 패배한 우리 전사들의 든든한 피난처였다. 싸우다 지면 무조건 강을 건넜다. 김일성 정권 덕에 동북의 우리 병력은 액운을 면하고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김일성은 소련 점령군 수중에 있던, 다량의 무기와 탄약을 우리 쪽에 제공했다. 북조선에 피신해 있던 우리 쪽 지휘관들은 김일성을 볼 때마다 조선 형제들이 환난에 처하게 되면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조선은 남북의 구분이 없었다. 지금 조선은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에 정권이 들어섰다. 최근 이삼십년간 조선공산당과 조선인민군은 우리의 혁명 사업에 힘을 보태고 희생을 치렀다. 이제 우리는 승리했다. 조선의 요청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지금 도의적 책임이 우리를 구체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마오는 끝으로 황소의 난과 이극용에 얽힌 고사를 인용했다. “지금 우리의 처지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사타국 신세가 됐다. 동북왕 가오강도 원하건 원하지 않건 한번은 이극용이 되어야 한다.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일이다.”
둘째가 가오강.
연설을 마친 마오쩌둥은 각자의 의견을 요구했다. 평소 서열대로 군 총사령관 주더(朱德)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신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겨우 숨통을 튼 상태다. 티베트와 타이완(대만), 연안도서 외에도 토비와 반공구국단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우리 병사들은 진흙 덩어리가 아니다. 마치 우리가 궁할 때 빌려준 돼지 새끼라도 내놓으라는 듯이 10여만을 빌려달라니 말도 안 된다. 전쟁을 치르고 돌려주겠다고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3주일 내에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주더의 발언이 끝나자 류사오치가 뒤를 이었다. “총사령관의 의견에 동감한다. 김일성의 통일사업은 지지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군대를 빌려주는 문제에 앞서 우리 쪽에 있는 조선족 부대의 간부들을 고문 형식으로 파견하는 것은 고려해 볼 만하다. 저들이 자신의 군대를 동원해 38선을 깨고 남한의 대부분을 점령한 뒤에 우리 병력을 파견해 소탕작전을 돕고, 방어를 공고히 해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류사오치는 원래 말이 많았다. 발언이 계속될 기미를 보이자 마오쩌둥이 끼어들었다. “우리 문제부터 처리한 뒤에 남의 일에 끼어들자는 말도 일리가 있다”며 저우언라이에게 눈길을 줬다. “총리 차례다. 의견을 말해봐라.”
마오쩌둥이 기록을 금지하는 바람에 연필만 만지작거리던 저우언라이가 입을 열었다. 그날따라 저장(浙江) 사투리가 유난히 심했다고 한다. “그간 나는 외교 업무를 주관해왔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킬 경우 국제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등 서방국가가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봐 우려된다. 소련 적군은 이미 조선반도에서 철수했다. 스탈린은 다시 조선에 돌아올 의향이 없다고 봐도 된다. 김일성의 통일전쟁은 우리와도 연관이 있다. 한때 우리는 동북에 주둔한 소련군의 철수를 끈질기게 요구하며 소련군이 동북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국민당 군과의 전쟁을 중지하고 소련군과 싸우겠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한 적이 있다. 민심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말이었지만 스탈린의 심기가 편치 않았을 것은 분명하다. 소련은 우리의 요구로 뤼순(旅順)과 다롄(大連)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부동항을 상실했다. 스탈린이 김일성의 통일전쟁을 지원하겠다는 이유는 부동항 확보 외에는 없다. 스탈린은 극동에서 미군과 마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소련의 전략은 모든 위해요소가 서방에서 오지 동방에서 온다고 보지 않는다. 지금 일본에는 미국의 강력한 육해공군이 주둔하고 있다. 이들은 워싱턴의 명령만 떨어지면 며칠 안에 조선반도의 어느 항구건 상륙이 가능하다. 우리는 김일성에게 이 점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한다. 김일성과 스탈린은 미국과 서방국가가 조선반도의 전쟁에 끼어들 가능성을 너무 낮게 보는 것 같다.”
마오쩌둥이 회의장을 정리했다. “세명 동지가 신중론을 제시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동북3성은 김일성 동지의 후방 역할을 해야 한다. 동북왕 가오강의 고견을 듣고 싶다.”
이제 참석자들은 마오를 주시했다 “3차 세계대전 가능성 생각해보라” 마오, 생각지도 않은 질문 꺼냈다.
마오쩌둥이 가오강을 동북왕이라 부르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린뱌오와 함께 동북에서 제4야전군을 지휘한 가오강은 린뱌오가 동북을 떠난 뒤 중공이 최초로 정부 명칭을 붙인 동북인민정부 주석과, 중공 동북국 서기, 동북군구 사령관을 겸한 동북의 최고지도자였다. 당시 동북인들 중에는 가오강의 이름은 알아도 마오쩌둥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집회가 열릴 때마다 가오 주석 만세가 진동했으면 했지 마오 주석 만세를 부르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마오쩌둥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건물도 전무했다. 어딜 가나 가오강과 스탈린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마오쩌둥은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가오강을 부를 때마다 동북왕 소리를 빼놓지 않았다. 일종의 야유였다.
마오의 지명을 받은 가오강은 여유만만했다. 담배를 지그시 물고 불을 댕겼다. 한동안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 동지의 의견은 내용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의미다. 현재 동북에 있는 나는 동지들과 생각이 다르다.
첫째, 조선의 당과 인민들이 베풀어준 은혜를 잊어선 안 된다. 내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동북전쟁 시절 적시에 북조선 경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우리는 국민당 군에게 거의 먹혔다. 군대를 빌려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은혜를 갚는 중국인의 전통을 위배해서는 안 된다.
둘째, 조선이 통일되면 조선반도는 사회주의 진영의 전초기지가 된다. 바다 건너 일본을 호랑이처럼 두 눈 부릅뜨고 위협할 수 있다. 우리의 경제회복과 건설에도 도움이 된다.
셋째, 병력을 집중해서 기습을 가하면 3주일 내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남한의 군대는 모병한 지 2년도 안 되는 오합지졸이다. 전쟁 경험도 없고, 장비도 제대로 없다. 있어도 다룰 줄도 모른다. 일격에 붕괴시킬 수 있다.
넷째, 우리는 수십년 동안 혁명과 전쟁으로 일관해왔다. 혁명과 전쟁은 일종의 도박이다. 모험정신을 상실하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가오강은 평소 주더나 저우언라이를 우습게 알았다. 특히 류사오치에게는 “어디서 뭐 하던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대놓고 멸시할 때가 많았다.
총참모장 녜룽전의 의견은 간단했다. “중앙의 결정에 복종하겠다. 군사위원회 주석의 명령을 충실히 집행하겠다.”
자신의 의견을 밝힌 참석자들은 마오쩌둥을 주시했다. 손에 담배가 한 개비 들려 있었다. 몇번 입에 댔지만 불을 붙이지 않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더니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을 녜룽전에게 던졌다. “조선반도가 전화에 휩싸이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지 생각해봐라.”
18편 한국전쟁 (하)편에서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