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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건국은 북한의 도움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못했다. 18편 연재

 

◇  중국의 건국은 북한의 도움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못했다.   (18)편     연재




■  “3차 세계대전 없다” 확신한 마오, 김일성에 아낌없는 충고



●  한국전쟁 (하)


 

베이징 중난하이. 앞줄 왼쪽 여섯째가 초대 중국 주재 대사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로신. 중국 쪽에서는 마오와 저우언라이 외에 린보취(林伯渠)



왕빙난이 참석했다.



중국인들은 기록을 중요시했다. 비밀회의일 경우, 노출을 우려해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참석자들에게 대화 내용을 복원시켜 연보(年譜)나 평전(評傳) 편찬에 활용한다.


인간의 기억은 한계가 있다. 만물의 영장답게 잘난 척하기 좋아하고, 잘못을 남에게 덮어씌우거나 남의 공을 가로챌 줄 아는 동물이기도 하다. 조작도 할 줄 알고 조작을 믿는 것도 인간이다. 그러다 보니 자고무신사(自古無信史), 자고로 역사는 믿을 게 못 된다고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역사의 쓰레기통을 뒤지다 보면 사실에 근접은 할 수 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과 중국 공산당의 교류는 정부수립 선포 뒤에도 전쟁으로 시작됐다. 전쟁을 준비하던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동의를 구하라는 스탈린의 말을 한 귀로 흘리지 않았다. 베이징에 와서 5일간 머무르며 중공의 속시원한 대답을 기다렸다. 마오쩌둥은 중공이 대혁명시기라고 부르는 1차 국공합작과 항일전쟁 시절 조선 혁명가들이 중국 혁명에 세운 공로를 잊지 않았다. 국공전쟁 초기 김일성의 도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 병력을 빌려 달라는 김일성의 요청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마오쩌둥은 의견을 취합하기 위해 고위 회의를 소집했다. 동북의 가오강(高崗)을 빼고는 한결같이 신중론을 폈다. 참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마오는 한수 위였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38선을 만든 장본인들인 미국과 소련이 충돌해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지를 숙고했다.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묻는 마오쩌둥의 질문에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오가 특정 인물을 지목해 묻지 않았을 때 첫번째 발언이 류사오치의 몫이라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류사오치는 양 진영을 대표하는 두 나라가 직접 충돌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마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저우언라이에게 류사오치를 대신해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세계대전 발발 묻는 마오 질문에 비밀회의는 한동안 침묵만 흘러 늘 그렇듯, 류사오치가 먼저 답해 “미국-소련, 직접 충돌 가능성 없다”그 이유는 저우언라이가 설명했다 “2차대전에서 기력 소진…회복 안돼. 전쟁 발발땐 국지성 전쟁 확신”



국제정세를 분석한 저우언라이의 발언은 1세대 중국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미국과 소련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에 그대로 소개한다. “류사오치의 생각이 정확하다. 나도 동의한다. 미·소 쌍방은 조선반도 문제가 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길 바라지 않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서구에서 발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미국과 소련의 대치는 유럽을 벗어나지 않았다. 양국은 동독과 서독,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에 가장 민감한 군사분계선을 설치해 놓고 대치 중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라고 봐도 될 정도로 두 나라는 이곳에 최정예를 투입시켰다. 단,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소련이나 미국, 혹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진영 모두 2차세계대전을 치르며 기력을 소진했다.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사람이나 정치인 할 것 없이 새로운 세계대전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문제는 미국이다. 그간 미국은 자신의 전쟁에 대리인을 내세우고 앉아서 어부지리를 취했다. 영국이 나치독일과 전쟁을 할 때도 한동안 관망하기만 했다. 아주(亞洲)가 연일 전쟁의 불구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할 지경에 처했을 때도 무기 생산에만 열을 올리고 전략물자 공급으로 횡재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진주만을 공습하는 바람에 태평양 함대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고, 미국민의 애국 열기가 일어나자 그제야 독일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나마도 초기 2년간은 유럽과 아주 전선의 제한된 공간에만 병력을 투입하고 무기를 지원했다. 유럽 전선은 소련 적군이 독일군 주력과 싸우게 내버려 두고, 아주에서는 중국 군민이 일본군 주력과 싸우기를 재촉했다. 1944년 여름, 영국과 소련 등의 재촉이 있고 나서야 미국은 정식으로 병력을 대량 투입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취했던 행동을 분석해 보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미국이 3차 세계대전까지 유발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고, 일으키려고 해도 성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훗날 주더(朱德)에게 들었다는 주더 비서의 회고에 따르면 미국의 전쟁관을 한차례 설파한 저우언라이는 목이 탔던지 단숨에 차를 냉수 마시듯이 들이켰다고 한다.

 

 

녜룽전



저우언라이는 목을 축이고 숨을 가다듬은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계속해서 소련에 관한 얘기를 하겠다.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은 시종 독일군 주력과 정면으로 힘을 겨뤘다. 희생이 엄청났다. 사상자가 무려 2500만이었다. 현재 스탈린은 70 고령에 접어들었다. 건강은 물론이고 정력도 예전만 못하다고 들었다. 단기간 내에 새로운 세계대전에 끼어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국토가 전쟁터로 변하는 것을 바랄 리도 없다. 미국은 이미 원자탄을 보유했다. 소련은 제작 중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소련군은 이미 조선반도에서 철수했다. 다시 돌아갈 생각도 없다. 미국 정보기관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조선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한 지역에 국한된 국지성 전쟁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김일성 수상에 의하면 소련이 공중지원을 승낙했다고 하지만 나는 회의적이다. 공군을 출동시킨다면 참전이나 다를 바 없다. 이승만의 정권이 멸망 위기에 처하면 미국은 일본에 주둔 중인 미군을 참전시킬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김일성에게는 불리하

다. 스탈린의 의중을 이해하기 힘들다.”


저우언라이의 발언이 끝나자 마오쩌둥은 그제야 만지작거리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차례 박수를 치고 나서 결론을 내렸다. “하고 싶어서 하는 전쟁은 없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전쟁이 대부분이다. 다들 겪어봐서 알겠지만 앞날을 예측 못하는 것이 

전쟁이다. 원래 국민당의 800만 대군과 싸우려면 이기건 지건 5년에서 7년은 허비해야 한다. 우리는 2년 만에 저들을 와해시키고 섬으로 내쫓았다. 다들 좋은 얘기를 해 줬지만 나는 가오강의 분석이 옳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보급선이 길다.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야 전쟁물자 조달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군대를 빌려 달라고 하지만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면 참전은 피할 수 없다. 심리적인 준비들을 해라. 미군이 조선반도에 상륙하

면 우리도 앉아서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상대가 전쟁광이라면 우리는 더 전쟁광이 돼야 한다.”



결론 내린 마오 “심리적 준비 하라. 

미국 상륙때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당 지도부에 참전 통보나 마찬가지.  김일성, 마오와 두 차례 더 만나.  “단숨에 제주도까지” 호언장담. 마오는 “항상 만일에 대비” 당부



마오쩌둥은 다시 비밀을 엄수하라고 지시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김일성이 우리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병력을 빌려줄 건지 말 건지, 빌려주게 되면 몇 명을 빌려줄 건지, 총사령관 주더는 연로하고, 류사오치는 당무(黨務)에 분주하니 나와 저우언라이, 가오강 세 사람에게 일임해 주기 바란다.” 당 지도부에게 참전을 통보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 가오강과 함께 김일성을 두차례 더 만났다. 김일성은 단숨에 부산과 제주도까지 밀고 내려갈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마오는 충고를 많이 했다. “전쟁은 무조건 밀고 내려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군대는 시야에 들어오는 곳에 있어야 한다. 예상도 못했던 일이 하루아침에 벌어지는 것이 전쟁이다. 항상 만일에 대비해야 한다. 만에 하나 미군이 너희들 반도 중부지역 해안에 상륙하면 너희 군대는 허리가 잘린다. 연락이 단절된 군대는 없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대비를 철저히 해라.”


김일성은 파안대소하며 큰소리를 쳤다. “그 일은 우리가 가장 연구를 많이 한 부분이다. 현재 일본의 4개 섬과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국의 육해공군은 20여만에 불과하다. 그 정도라면 상륙하자마자 독 안에 든 쥐처럼 두들겨 팰 수 있다. 우리 민족은 반침략의 전통이 강하다. 재차 군대를 보내도 불구덩이에 처넣을 수 있다.”


가오강이 ‘하오’(好)를 연발하자 마오가 말했다. “알았다. 준비가 완벽하고 미국만 출병한다면 우리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침략 전쟁을 지원하겠다.”


저우언라이는 말이 없었다.


마지막 만남은 김일성이 평양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저우언라이의 제의로 마오쩌둥의 서재에서 이뤄졌다. 가오강은 이미 연병(練兵)을 이유로 선양(瀋陽)으로 돌아간 뒤였다. 저우언라이가 “가오강 휘하 동북군구의 조선족 간부와 조선말을 할 줄 아는 한족(漢族) 사병들로 구성한 부대를 만들어 정치공작 교육을 시키겠다”고 보고했다. 저우언라이도 참전에 동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마오는 급히 김일성을 불렀다. 그가 이날 만남에서 20여만의 동북 변방군을 편성해 국경에 배치하겠다는 말을 김일성에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19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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