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에서 40여 분만 오르면 저 멀리 남산타워를 비롯해 경복궁, 광화문광장의 나란히 선 빌딩들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청와대전망대’가 청와대 뒤편 북악산에 숨어 있다. 이곳은 청와대가 개방되기 전에는 갈 수 없는 곳이었지만, 이젠 누구나 복잡한 도심의 소음에서 벗어나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장소가 됐다. 청와대 춘추관을 지나 뒷길을 따라 청와대전망대까지 간단히 오르는 코스는 등린이도 가뿐히 오를 수 있을 정도다. 지난달 말 서울에 기록적 폭염이 내리고, 설산(雪山)을 경험해 보고 싶어 이달 1일 북악산을 찾았다. 북악산에 오르기 전 북악산, 인왕산 등 알짜 등산코스를 알려 준다는 삼청동 도심등산관광센터에 들르기로 했다. 이 센터는 서울관광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도심등산광광센터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삼청동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고즈넉한 한옥으로 지어졌다. 이곳은 서울 한복판에서 자연과 역사를 탐험하려는 이들에게 완벽한 시작점이다. 그래서인지 북악산 센터를 비롯해 제1호로 지어진 북한산 센터, 최근 문을 연 관악산 센터를 찾은 총방문객이 지난 2일 기준 4만9556명에 달할 정도다. 방문객 3명 중 1명은 외국인이다. 센터 내부를 살펴보니 아담하지만 알찼다. 지하와 1층, 2층까지 그 쓰임이 다 달랐다. 방문객들은 이곳 1층에서 산행 지도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지하에서는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는 등산화, 등산복 등 장비를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해 주고 있다. 기자는 이날 하루 외국인 관광객이 돼 설산에 오를 때 필요한 아이젠, 등산 스틱 그리고 등산화 등을 빌려봤다. 이 센터 관계자에게 북악산 등산 코스 중 좋은 곳을 추천해 줄 수 있냐 물으니 “춘추관 뒷길을 따라 청와대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짧고 쉽게 갈 수 있어 많이 추천해주고 있다"며 “탁 트인 서울 도심 풍경을 한 눈에 보고 싶다면 인왕산 코스가 좋다”고 소개했다. 등산 채비를 마치고 센터를 나와 춘추관으로 향했다. 끼니를 못 챙겨 춘추관으로 오르는 초입 '서울구경'이라는 풀빵집에서 청와대 모양의 단팥이 한아름 들어있는 빵을 하나 먹으니 배도 든든히 찼다. 들뜬 마음에 등산 스틱으로 길가에 쌓인 눈도 찔러보고 걷다 보니 금세 춘추문에 다다랐다. 춘추관을 지나 오르면 멀리 인왕산이 보이는 광장이 나오고, 광장을 돌아 걸으니 본격적인 등산 코스를 알리는 푯말을 발견했다. ‘청와대전망대 920m’ 청와대 돌담길을 따라 오르는 등산길은 매우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덕수궁 돌담보다 낮아 깔끔하게 얹어진 기와도 한눈에 들어왔다. 그 위엔 하얗게 눈들이 쌓여 있었다. 주말인데도 사람들이 많지 않아 오르는 길이 고요하고 한적했다. 나무 사이로 간간이 불어오는 찬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정신을 맑게 했다. 20분 정도 올랐을 때 청와대 관저 뒤편 쉼터인 백악정을 만났다. 이곳은 역대 대통령들이 가장 즐겨 찾던 산책 코스로 알려져 있다. 백악정 쉼터 오른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함께 심은 느티나무, 왼편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식수한 서어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백악정을 지나 눈으로 얼어버린 나무 계단을 한발한발 오르니 청와대전망대에도 금방이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은 단숨에 숨을 멎게 했다. 가까이는 청와대와 경복궁부터 멀리는 여의도 더현대 등 서울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빌딩 숲과 전통 기와가 한데 어우러진 이 풍경은 서울이 가진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했다. 고요한 청와대전망대에서 도심을 한참 바라보며 근심, 걱정을 덜어내니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삼청동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른 작은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은 추위에 얼어있던 몸을 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