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끝엔 좁은 관 속에 누워
유한한 시간의 소중함 느끼고
보다 나은 삶의 가치 되새겨야
시청자의 안구 건조증 치료제라는 말까지 나온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나도 참 많이 울었다.
그중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콸콸 쏟은 장면은 애순(아이유) 할머니 춘옥(나문희)이 죽음을 맞이할 때의 모습. 먼저 세상을 떠난 애순 엄마 광례(염혜란)가 꿈처럼 마중 나와 묻는다.
“사는 것이 어떠셨소. 소풍이셨소, 고행이셨소?” 춘옥이 말한다.
“소풍이었지. 내 자식들 다 만나고 가는 기가 막힌 소풍이었지.” 그때 배경음으로 흐르는 정미조의 ‘귀로’는 또 어찌나 마음에 사무치는지. 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죽음 앞에서 인생이 소풍 같았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때마침 죽음을 배웅하는 사람들을 담은 다큐멘터리 ‘숨(Breath)’을 봤다.
삼베 수의 위에 갓난아이가 입는 배냇저고리를 가지런히 올려놓은 포스터 사진에서부터 삶의 시작과 끝에 놓인 숨의 의미를 숙고하게 하는 작품. 영화는 저승길로 떠나는 이들의 육신을 닦고 장례를 치러주는 유재철 장례지도사와 외로이 세상을 떠나는 이들의 흔적을 보듬어주는 김새별 유품정리사를 통해 삶과 죽음의 내밀한 풍경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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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작가 |
그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고 말한다.
잠이 든 듯 편안한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는 망자도 있지만, 떠나는 순간까지도 손에 쥔 부를 놓지 못해 몸과 표정이 경직된 고인도 많다고. 어떤 죽음을 맞아야 할 것인가. 아니, 어떤 삶을 살아야 평온한 죽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망자들을 통해 그 답을 얻는다고 한다.
“위세를 떨치던 사람도, 평범했던 사람도, 마지막은 결국 좁은 관속이 내 자리”라는 사실을 매 순간 복기하면서.
김새별 유품정리사가 마주하는 죽음은 유재철 장례지도사의 그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일반적인 죽음이 아닌, 고독사나 자살 현장이 그가 주로 만나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사체, 쓰레기, 비워진 술병, 유통 기한 지난 김밥, 얼룩진 벽지, 수신자를 잃은 요금 청구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인의 공간을 들여다보다 보면 고독사의 숨은 말은 ‘고독하게 죽었다’가 아니라, ‘고독하게 살았다’가 아닐까 싶어진다.
그러나 삶의 의지를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물품보다 더 아프게 마음을 찌르는 건, 고인이 누렸을 ‘찬란했던 한때의 흔적’이다.
부패물 속에서 발견된 ‘장영실상(과학기술자상)’ 상장은 생의 의지로 가득했을 순간의 고인을 상상하게 하며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안긴다.
“이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은 관공서 컴퓨터 안에 남아 있는 이름 세 글자밖에 없다”는 유품정리사의 말이 뼈를 때린다.
유재철, 김새별 두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다.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마주하며, 의미 있게 사는 법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죽음 가까이에서 역설적으로 삶을 더 강렬하게 느끼고 있는 셈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이들이 이전보다 더 열심히 살아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사의 경계에서 유한한 시간이 주는 소중함을 느낀 이들에게 삶의 가치는 더욱 상승할 테니까.
‘숨’을 보면서 올해 초 인터뷰로 만났던 이호 법의학자가 떠올랐다.
고인이 몸에 남긴 증거에 귀 기울여주고, 부검을 통해 그들이 떠나는 길에 억울함이 남지 않도록 변호해 주는 법의학자. 그는 내게 의학도들에게 유명한 격언을 알려줬다.
‘투이 비보스 도슨트(Mortui Vivos Docent)’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는 의미로, “법의학은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법의학자가 느끼는 아름다운 죽음은 무엇일까. “내 죽음에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을 꼽으며 그는 이렇게 첨언했다.
“잘 죽는다는 건, 결국 잘 산다는 전제 위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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