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실패를 살펴보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AI오답노트'는 AI와 관련한 제품과 서비스, 기업, 인물의 실패 사례를 탐구합니다.
<i>"저 지금 게이트 앞에 도착했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i>서울, 인천으로 가는 한국인입니다. <i>보안 심사가 예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늦었어요. <i>지금 바로 탈 수 있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국제선 비행기를 놓쳐본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였죠. 아시다시피 국제선 비행기를 놓치면 그에 따른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보통이 아닙니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큽니다. 이후 몇 년 간 출국 직전엔 비행기를 놓치는 악몽을 꿀 정도였으니까요.
“비행기를 한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는 글을 읽었을 때, 웃음이 나왔고 비로소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스티글러는 어떤 배경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비행기를 놓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낭비한 사람’이라뇨.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버스, 지하철과 달리 꽤나 큰일입니다. 여행 비용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고,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점에서 의미도 무게도 다르죠.
그래서 비행을 앞둔 대부분의 사람은 공항에 일찍 도착하려고 노력합니다. 공항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 빈 주차장 여부, 티켓팅 지연, 수하물 위탁 지연, 수하물 추가 요금 여부, 보안 검색 지연, 출입국심사 지연, 면세품 수령 지연, 탑승수속 지연 등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너무도 많죠.
도대체 어디서 지연이 발생할지 모릅니다. 비행기를 탄다는 건 이런 불확실성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국제선의 경우 최소 2~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라는 권고가 뒤따릅니다. 그러나 2~3시간도 여유 있다고 하긴 어렵죠. 사람들은 공장에 권고보다 더 일찍 도착하려고 하고, 결과적으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공항 이용과 관련해 발생하는 불확실성, 예측 불가능성은 소비자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누군가에겐 비즈니스의 기회가 됩니다. 불안한 승객들에게 ‘강요된 시간’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버는 곳, 어디일까요.
네, 바로 공항입니다.
공항에는 면세점과 레스토랑, 카페,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공항은 비행 관련 사업 외에 다른 사업에서 상당한 돈을 벌어들이는데, 그중 대부분이 임대료입니다. 요즘 공항의 쾌적함과 화려함은, 일찍 도착하느라 신경이 곤두선 승객을 소비자로 전환시키기 위한 일종의 눈속임에 가깝습니다.
재미있게도, 승객들은 비행기를 놓치는 것보다도 공항에 일찍 도착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덜 나쁜 선택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만족화(Satisfying)’ 개념입니다. 불만족스러운 상황이지만, 스스로 상황을 합리화하고 수용하는 방식이죠. 승객들은 일찍 도착해서 생긴 여유 시간을 쇼핑과 식사 등으로 채우면서, 이를 낭비시간이 아닌 여가시간이라 여기게 됩니다.
물론 면세점 쇼핑과 공항 편의시설 이용을 낭비라 생각하지 않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없진 않을 겁니다. 그 점을 인정하더라도, 국제선 항공편 이용이 지하철처럼 간편하고 예측 가능했다면, 공항의 풍경이 달랐을 것임 또한 분명합니다.
개인 전용기를 타는 사람은 공항에서 쇼핑을 하지 않습니다. 비싼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지도 않죠. 이들에게는 최대한 빨리 비행기에 타는 것, 그게 유일한 목표이자 최선의 이익입니다.
공항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이유 : '예측력'의 부재
우리는 왜 공항에서 시간을 낭비할까요?
네, 예측 불가능성 때문입니다. 만약 예측 기술이 발전하면 이런 낭비와 공항을 갈 때마다 매번 느껴야 했던 불안이 사라질 겁니다. 집을 떠나 비행기에 탑승하기까지의 시각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공항을 향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 점에서 현재의 우리가 겪는 공항 시스템은 ‘예측’ 싸움에서 실패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AI는 바로 그러한 예측 싸움의 최종병기입니다. 해외의 몇몇 스타트업은 바로 이 시장에 돈벌이의 기회가 있다고 보고 뛰어든 상태입니다. 항공편과 집을 나서는 시각을 입력하면, 교통상황, 공항혼잡도, 날씨 등 수집 가능한 모든 변수를 종합해 최적의 여행 출발시간을 안내하죠. ‘7시30분에 집을 나서면, 8시55분 비행기를 5분 내외로 기다렸다가 탈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를 받는 겁니다.
예측력이 확보되면, 승객 개개인은 시간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여행 첫날의 모든 걸 결정하는 상황과 멀어질 수 있게 되죠.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이야기는 공항업계가 까무러칠 소식이기도 합니다. 화려하게 꾸민 공항 시설은 다 어째야 할까요. 굳이 공항에 일찍 도착해 시간을 낭비하는 승객이 없다면, 공항은 뭘 먹고 살아야 할까요. 현재 공항 시스템의 비즈니스 모델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즉, AI를 통한 예측력은 특정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를 초래할 만큼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놀라게 해온 AI 혁신의 결과물은 예측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AI스피커는 우리의 말과 언어의 맥락을 예측해서 응답했고, 아마존은 우리가 사려는 것을 예측해서 보여줬습니다. 구글은 우리가 검색해서 얻고자 하는 링크가 무엇인지를 예측해서 보여줬고, 넷플릭스는 우리가 무얼 볼 것인지를 예측해서 보여줬죠. 자율주행차도 예측의 관점에서 보면 브레이크를 언제 작동시키는지, 언제 차선을 바꾸는게 안전한 것인지를 예측하는 과정입니다.
즉 AI는 예측 기술입니다. AI가 가져다준 것은 지능이 아니라, 지능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예측'입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