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현재 수도권에 집중된 대규모 전력 수요시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전력계통영향평가 도입을 추진 중이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특별법 제정에 따라 이미 시행됐어야 했지만 데이터센터 산업을 위축시킬 것이란 업계 우려에 관련 고시(규정)를 수정해 지난달 재행정예고한 상태다. 전력 계통이란 전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까지의 전 과정에 필요한 전기설비를 말한다.
전력계통영향평가는 크게 기술과 비기술, 정책 등으로 항목이 나뉜다. 배점이 60점으로 가장 큰 기술 항목에선 전력공급 여유, 적정전압 유지 가능 여부, 전력공급 영향 최소화 방안 등을 따지고 비기술 항목에선 사업안정성과 부가가치 유발 등을 평가하는데 해당지역 지원사업이 가점 대상에 포함돼 있다. 정책 관련으로는 전력자립도, 전력정책 부합도, 전력수요 분산화 효과 등을 평가한다. 비기술과 정책은 각각 20점이 배점돼 있다.
데이터센터 업계는 이 가운데 ▲지방재정기여도 ▲부가가치 유발 효과 ▲직접고용 효과 등은 민간에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데이터센터는 대부분 무인 자동화돼 소수의 인력으로 운영되는데 직접고용이 300명 이상 발생하는 효과가 예상될 때 5점 만점을 받고 향후 20년간 해당 지자체의 지방세 징수액의 평균 0.1% 이상의 지방세를 납부하면 5점 만점을 받는 등의 항목으로 이뤄졌다.
강승훈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팀장은 "제도가 발표된 이후에 해외 사업자로부터 한국의 데이터센터에 투자하겠다고 보고된 사례가 한 건도 집계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내 데이터센터 설립이 어려워지면 첨단 기술, 디지털 콘텐츠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는 AI 스타트업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데이터센터 업계는 이런 이유로 몇 차례 고시 수정에도 불구하고 전력계통영향평가 도입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재행정예고된 고시에 자신들의 입장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특히 수도권 집중화를 막는다는 게 제도의 취지이지만 전국적으로 시행된다는 점도 반대하는 이유다. 전국을 대상 지역으로 지정하면 지방 분산에 대한 인센티브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산업부는 이에 대해 "개별 변전소와 행정구역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어 전국을 대상 지역으로 하되, 분산 특구·데이터센터클러스터 등 정책적 필요에 따라 특정 구역에 대해선 대상 지역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전력계통 분야 전문가(대행자)에게 평가서 작성 등을 맡겨야 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이 수반되는 점도 부담으로 본다. 김수현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선임연구원은 "성과 보수, 고가의 대행비 요구 등 벌써부터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10MW당 1억원 이상을 요구하는 사례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업계는 대행비용이 천차만별이고 제한이 없으니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것을 산업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대행자 필수 자격·경력 요건 범위가 좁아 사실상 한전 출신 인사를 위한 전관예우라는 비판도 나온다. 전기분야 기술사 또는 전기 관련분야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이면서, 계통계획·운영·평가 3년 이상 경력과 송전·변전분야를 합산해 2년 이상 경력 등을 보유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력요건은 현실적으로 한전·전력거래소 출신만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또 대행자가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 과정은 한전 인재개발원에서 위탁 시행하도록 규정했다.
산업부는 매년 약 190건의 전력계통영향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예측했는데, 현재 대행사 지정을 받기 위해 대기 중인 곳은 15~20개사에 불과하다. 한남현 한국건축전기설비기술사회 회장은 "대행자 수가 적을수록 경쟁은 약화되고 담합 가능성은 커진다"며 "그럼 시장 가격은 내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련 업계에선 데이터센터만 타깃으로 한 규제라고 본다. 전기를 많이 쓰는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서 지정·보호하는 산업은 이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또 데이터센터 개발 사업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투자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력 공급 가능 여부도 알지 못한 채 투자자를 모집하고 평가서를 작성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강 팀장은 "업계에선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사실상 ‘데이터센터 금지법’으로 보고 있다"며 "전기 사용을 무작정 막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력계통영향평가 도입을 전면 폐지하고 데이터센터 규제가 아닌 성장 정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정식 도입하겠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 현재 수도권에 집중된 데이터센터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과 이른바 ‘전기 알박기’ 관행을 뿌리뽑기 위함이다. 전기 알박기란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면서 전기 사용 예정 통지를 해놓고 실제 운영은 하지 않는 부동산 개발 목적으로 이익만 챙기는 수법을 말한다. 또한 민간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도가 공공에 비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실이다. 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민간 데이터센터의 72.9%, 공공 데이터센터의 41.2%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에 위치해있다.
최성준 산업부 전력계통혁신과장은 "전력계통영향평가는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대규모 전력수요 시설의 지방 입지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사업계획 없이 부지 가격 상승을 노리고 전기사용을 신청하는 수도권 지역의 데이터센터 알박기 사례를 막고 실수요자 위주의 전력공급을 위해 평가 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행 비용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겠지만 제도를 등에 업고 폭리를 취해 민간에 부담이 되는 것은 반드시 막을 방침"이라고 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