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들의 시설 투자 세액공제를 5%포인트 늘리는 이른바 'K칩스법'에 여야가 합의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수조 원 규모의 세(稅) 부담을 덜어낼 것으로 보인다.
투자 확대를 위한 발판이 마련된 만큼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반등의 계기가 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12일 반도체 업계 및 국회에 따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전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을 의결했다.
대·중견기업의 반도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은 15%에서 20%, 중소기업은 25%에서 30%까지 높아진다.
국가전략기술 및 신성장·원천기술 통합투자세액공제 대상에 연구개발(R&D)을 위한 시설 투자가 포함되면서 관련 공제율도 현행 1%에서 20%까지 대폭 늘어난다.
법안은 13일 기재위 전체회의를 거쳐 이르면 이달 중 본회의에 상정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받게 될 세제 혜택은 최소 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용인 기흥캠퍼스에 차세대 반도체 R&D단지 'NRD-K'를 조성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 회장이 두 차례나 찾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삼성전자의 핵심 거점이다.
지난해 11월 설비 반입식을 개최했고 2030년까지 20조원을 투입한다.
기존에는 사업화 시설이 아닌 R&D 시설이란 이유로 공제율 1%(2000억원)가 적용됐지만 K칩스법이 통과되면 20%로 기준이 크게 상향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도 지난해 7월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 공장을 세우기 위해 2028년까지 9조40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초기 집행자금을 차치하고, 두 기업의 투자액에 K칩스법 공제율을 단순 적용하면 약 5조8800억원(삼성전자 4조원·SK하이닉스 1조8800억원)의 부담을 덜 수 있다.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경쟁사들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이번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 삼성전자가 'NRD-K'에 20조원을 들이붓고 공제받는 건 2000억원에 불과하다.
미국에 같은 시설을 짓는다면 세금 감면액은 5조원(투자액 25%)에 달한다.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지난해 시설 투자만 46조3000억원에 달한다.
대부분 국내 설비 투자다.
법안이 빨리 통과됐다면 자금 동원력을 9조원(20%)까지 높일 수 있었던 셈이다.
21대 국회에서 K칩스법을 처음 주도했던 양향자 전 개혁신당 의원은 "한참 늦었지만 투자 촉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며 "인공지능(AI) 시대에서 반도체는 한국에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인데, 이 기회를 놓치면 산업 생태계 전반이 몹시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K칩스법이 초읽기에 들어가도 업계 분위기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지난 연말에도 여야가 법 개정에 합의했지만 감액 예산안을 둘러싼 갈등으로 법안이 본회의에 오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주 52시간 예외 적용)이 걸린 반도체특별법도 처리가 불투명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 설비투자 비중은 2012년 한국 23.5%·중국 6.8%로 우리가 앞섰지만 2023년 한국 18.5%·중국 33.8%로 뒤집혔다.
중국이 시장에서 입지를 키운 건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거듭한 결과다.
트럼프 행정부가 28년 만에 반도체를 겨냥한 관세까지 예고한 만큼 국가 차원의 반도체 지원책이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다른 경쟁국은 국가 차원의 전방위적 지원을 업고 글로벌 시장에서 겨룬다"며 "불확실성으로 투자를 미룬다면 기업 경쟁력도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시설·R&D 투자에 대한 공제는 신규 투자뿐만 아니라 기존 설비에 대한 공정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본회의까지 조속히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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