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홀릭] 강한 기업과 약한 기업의 차이는 위기를 맞았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대표 자동차 산업은 지난 반세기 동안 대외 여건이 한번도 쉬운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면돌파하며 난국을 극복해 낸 곳이 현대자동차이다.
현대차의 저력은 곧 한국 경제의 저력이며 위기를 돌파하는 힘은 불확실성이 가득한 글로벌 시장에 한 줄기 등대처럼 빛난다.
정의선 회장의 뚝심의 리더십은 타협을 거부하고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품질과 기능, 가격의 획기적 개선으로 소비자를 사로잡는다.
현대차는 지난 달 23일 발표된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2024년 4분기 실적 및 연간 실적을 발표했는데 이 결과를 보면 지난해 현대차의 누계 판매량은 도매 판매 기준 414만 1959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 경이적인 실적 달성을 이루어낸 것을 알 수가 있다.
이 가운데 친환경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전기차 21만8500대, 하이브리드 49만6780대를 포함해 전년 대비 8.9% 늘어난 75만7191대가 판매되며 실적을 견인했다. 화석연료 자동차 기업이 전기차 하이브리드 글로벌 시장에 맞춰 품질과 신뢰를 높이며 얻어낸 놀라운 결과이다.
최근 현대차의 판매 주종은 하이브리드(HEV)와 제네시스 브랜드를 포함한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 판매이다. 이 시장을 중점적으로 노려왔기에 시장 확대에 따른 평균판매단가(ASP) 개선이 일어났고 금융 부문 실적까지 좋아지면서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에서 △도매 판매 106만6239대 △매출액 46조 6237억원(자동차 35조7502억원, 금융 및 기타 10조8735억원) △영업이익 2조8222억원 △경상이익 3조1189억원 △당기순이익 2조4742억원(비지배지분 포함)을 기록하며 실적 호조를 기록해 냈다.
한번도 쉬운 적 없었던 미국 시장 공략
북미 시장은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각축의 장이다. 품질과 신뢰성, 가격, 소비자 친화력 등 무엇하나 소홀히 하면 곧바로 점유율이 떨어지는 법이다.
그럼에도 전기차와 프리미임 시장을 공략하며 놀라운 신장세를 보여준 것이 현대차이다.
특히 북미 시장의 신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업계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2020년대 들어 10% 내외의 미국 신차 판매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다. 현대차그룹의 지난해 미국 판매량은 170만8293 대로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이러한 매출 시장의 원인으로는 하이브리드차,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등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의 판매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올해 트럼프 정권이 다시 들어서면서 상당한 위협요인이 발생할 전망이다. 이미 철강 알루미늄 시장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다음 달 12일부터는 모든 철강, 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트럼프는 자국 내 자동차 철강 기업들이 반대하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곧 상호관세를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서 상호관세는 상대국이 부과하는 관세율 수준에 맞춰 동등한 관세를 매기는 것이다.
당장 상호관세 우선순위로 자동차 산업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7일(현지시간) "우리가 자동차를 공급하지 않는데도 우리에게 파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동등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일본 자동차 시장을 거세게 압박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한 발 앞서 트럼프 위협 요인을 제거해 나갈 방침이다.
한발 앞선 트럼프 위협 요인 공략
우선 현대차는 대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아이오닉9의 미국 판매 모델을 미국에서만 생산키로 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로 분석된다.
아이오닉9은 현대자동차의 전기 SUV 플래그십 모델로, 대형차 수요가 많은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전 세계 최초 공개 행사도 미국에서 열면서 미국 시장을 정면 조준했다. 피하고 물러서기보다 관세 압박을 우회적으로 피하며 시장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심산이다.
이철민 현대자동차 국내마케팅실 상무도 11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에서 열린 아이오닉9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행사에서 "아이오닉9 미국 판매 모델은 미국에서만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혀 자사의 미국 시장 공력 방향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는 6000만 원대의 합리적 가격과 전기차 안전 확보로 전기차 캐즘 극복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전기차 시장이 일견 주춤한 듯 하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지만 자동차 시장은 앞으로 나아가지 뒤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글로벌 생산 물량은 한국 공장이 담당하고, 미국 판매분은 조지아주 신공장에서 생산하는 투 트랙 체제를 가동할 방침이다. 다시 말해 아이오닉9 관련 국내와 유럽 등 미국을 제외한 지역의 판매 모델은 모두 한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현대차가 올해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는 조지아주 신공장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통해 미국 판매량의 다수를 현지에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내비친 점은 다분히 트럼프 정권에 대한 유화 제스처로 해석된다.
HMGMA는 연산 최대 50만대까지 늘릴 수 있어 기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기아 조지아 공장까지 더하면 미국 100만대 이상 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되므로 미국의 고용 시장에도 이바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현대차의 아이오닉9의 국내 목표 판매량은 6500대 수준이다. 아이오닉9 판매 가격은 6715만 원부터 시작한다. 동급인 기아 EV9과 비교하면 약 600만 원 저렴하다.
전기차 안전도 크게 강화했다. 최준석 현대자동차 배터리 설계1팀 팀장은 전기차 배터리의 이상 가능성을 문자로 통보해 주는 배터리 진단 통보 기능인 커넥티드 서비스(블루링크) 무상 지원 기간을 기존에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한다고 밝혀 전기차 안전을 염려하는 고객들의 염려도 덜어주었다.
아이오닉9은 110.3kWh 대용량 배터리를 탑재해 1회 충전으로 최대 532km를 주행할 수 있다. 현대차는 전비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디자인 요소와 기술들을 적용해 대형 SUV로는 최고 수준인 공기저항 계수 0.259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GM과의 협업으로 미국 시장 동략 기회 넓혀
한편 현지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의 협력도 강화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고, 올해 상반기 전에 구체적인 협력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업계는 현대차가 미국에서 생산한 전기 상용차에 GM 브랜드를 달고 파는 리뱃징(Rebadging) 전략을 채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지 엔지니어링(Badge Engineering)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하나의 모델을 여러가지 브랜드들로 출시하는 것으로 여기서 배지(badge)란 브랜드의 마크, 로고, 엠블럼을 뜻하기도 한다.
현대차는 이에 앞서 지난 달 23일 2024년 현대차 4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GM과 바인딩 계약 체결을 논의 중이라고 밝히고 올해 1분기에 최종 계약서에 서명을 완료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 서명이 완료되면 현대차는 GM과 북미, 중남미 중심의 아이템을 선정해 공동 구매 등을 추진하는 계획을 추진하게 된다.
이는 현대차 생산 상용차가 GM 엠블럼을 달고 미국에 진출할 날이 곧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대차의 노력은 국내 소부장 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1차 중소·중견 부품 협력사들의 매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90조원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경이적인 실적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국내 협력사들과 동반 성장하며 치열한 미국 시장 싸움을 정면 돌파해 나가려는 현대차의 노력에 대해 박수를 아끼지 않으면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한편으로 설득하고 한편으로 압박하는 고강수 협상 전략을 선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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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지난해 12월 12일(현지시간) 그룹의 대표 혁신 거점인 『현대자동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진행된 타운홀미팅에서 발표하고 있다.(사진=현대차그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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