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고래의 가스포화도가 높지 않아 경제성 있는 가스전으로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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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6일 동해 심해 가스전 첫 시추 대상인 대왕고래 유망구조의 잠정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가스포화도'를 언급했다.
가스포화도는 유전·가스전의 상업성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일반적으로 가스전의 경제성을 판단할 때 저류층, 덮개암이 양호한지, 가스포화도는 충분한지 등을 보는데 동해 심해 가스전 프로젝트의 7개 유망구조 중 가장 규모가 큰 대왕고래 시추에서는 생산광구로 전환할 만한 가스포화도를 발견하지 못했다.
원유나 가스가 매장된 해저 지대를 발견했더라도, 포화도 수치에 따라 실제 유전·가스전 개발은 좌절될 수 있다.

해저 유전 탐사 과정에서 시추선은 긴 시추공을 해저 암반까지 집어넣어 구멍을 뚫은 뒤, 지층을 이루는 암반 샘플을 일부 채취해 성질을 분석한다.
가스포화도도 이때 조사된다.
가스포화도는 암석의 공극(빈 공간)에서 가스가 차지하는 부피를 백분율로 나타낸 값이다.
원유나 가스가 매장된 암석을 '저류암'이라고 한다.
저류암에는 미세한 공극이 촘촘하게 뚫려 있으며, 이 공극을 통로 삼아 유체가 흐른다.
즉, 가스포화도가 높으면 저류암 내부에 천연가스나 원유가 풍부하다는 뜻이다.
반면 가스포화도가 낮으면, 저류암의 공극엔 원유나 천연가스 대신 염수 따위의 쓸모없는 물질이 흘러 다닐 가능성이 커진다.

이 때문에 자원 탐사 기업들은 먼저 가스포화도를 계산해 유전의 생산성을 판별한다.
국내 원유 자원 탐사 권위자인 이철우 충북대 교수는 "일반적으론 포화도 70%가 경제성 높은 유전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도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고, 유전 유망지대의 구조나 운임에 따라 경제적 포화도 기준은 항상 변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주요 해저 유전인 멕시코만이 대표적인 사례다.
멕시코만 내에는 포화도가 그리 높지 않은 유전도 다수 있지만, 이미 원유 개발 인프라가 풍부한 데다 채굴한 자원을 항만으로 회수하기도 용이해 여전히 경제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대왕고래의 가스포화도가 충분치 않다고 판단하면서도 구체적인 포화도 수치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전문가는 심해에 위치한 동해 유전 특성상 경제성 확보에 필요한 포화도 기대치가 애초에 높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교수는 "심해 유전에서 가스를 뽑아 내륙으로 가져오려면 파이프를 연결하거나, 해상 운송 인프라를 건설해야 한다.
석유가스 산업에 쓰는 자재들은 매우 비싸다"며 "미국 멕시코만 유전의 경우 포화도는 높지 않지만, 이미 많은 가스 파이프가 깔려 있어 추가 유전 개발 비용 부담이 낮아 지속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동해는 이제 개발 시작단계라 초기 자본 부담이 커 포화도가 높아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왕고래의 가스포화도가 높지 않다고 해도, 동해 심해 유전 프로젝트 전체가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시추를 포기하느냐'는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의 질의에 "향후 탐사 시추 작업을 지속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산업부는 대왕고래에 대한 1차 시추 결과 경제성을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전반적인 석유시스템 구조 자체는 양호하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시추에서 얻은 데이터를 나머지 6개 유망구조의 탐사시추를 위한 유망성 평가 자료 보정에 활용하기로 했다.
매장된 가스가 대왕고래를 지나간 경우, 옆에 있는 6개 유망구조 부근에도 가스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가스는 가볍기 때문에 저류층을 통과해 위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다가 단단한 암반층이 형성된 곳에 막히면서 고이는데, 이것을 ‘트랩’이라고 칭하며 바로 이곳에 구멍을 뚫어 자원을 채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트랩은 전체 유망구조 내에도 여러 곳 있으며, 가스가 정확히 어떤 트랩으로 이동했는지는 예측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며 "결국 트랩들을 일일이 뚫어 보면서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자원 강국도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통해 유전을 찾아냈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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