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후 낮은 관세를 기반으로 30년간 지속돼온 세계화(Globalization)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신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상한 현지화(Localization)가 대세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과거엔 ‘최적의 비용’이 공급망 구축 1순위였다면 이젠 공급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기업들의 최우선 순위가 됐다.
특히 두차례의 트럼프 집권기를 거치면서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생산기지가 자리 잡는 흐름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통상 정책에 따라 생산 전략을 뜯어고쳐야 할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지 기로에 섰다.
아시아경제는 글로벌 공급망의 지각변동 속 우리 기업들의 대응 방안을 6차례에 걸쳐 심층 분석한다.
미국의 관세 전쟁이 기업들의 공급망 재편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관세 부담을 줄이면서 안정적인 생산 거점을 확보하려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기업들은 여전히 미국 시장을 놓칠 수 없는 상황이다.
공급망과 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는 방향이 유력하다.
하지만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관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기업들은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26일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과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에게 답을 구했다.
두 전문가의 분석을 ‘가상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할 경우 우리나라 수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이= 현재 발표되는 관세 부과 계획이 정말로 실현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혔듯이 본격적인 관세 부과는 조사가 완료되는 4월 이후 진행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마저도 양국 간 협상 결과에 따라 실제 관세율이 달라질 수도 있고 아예 관세를 면제받는 케이스가 생길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조= 개별 기업들이 입는 타격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관세라는 건 기본적으로 수입자 부담이다.
미국 기업이 한국 기업에서 수입하던 경우 관세로 인해 부가되는 비용만큼 수출자에게 납품가에 대한 추가 단가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는 자국 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철강을 예로 들면 미국의 철강업체와 우리나라의 철강업체가 수출에서 얼마나 경쟁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그 피해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경쟁이 심한 상황이라면 자국 보호 기조에 따라 우리가 받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기존에 발표된 추정치 이상으로 피해 규모가 커질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타격을 최소화하려면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이= 리밸런싱(Rebalancing·재조정)을 통해 대외 리스크를 관리하고 기업의 핵심역량을 재정의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재편해야 한다.
당장 미국의 정책적 영향만 보고 리밸런싱을 하기에는 위험이 크다.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 기업과 정부가 어떤 산업, 어떤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대전략이 선행돼야 한다.
다시 이를 바탕으로 공급망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조= 지금의 변화는 단순히 트럼프 2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트럼프 1기 시절부터 시작해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흐름이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지정학적 요인에 대한 위험을 등한시한 측면이 있다.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해온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다.
세계적인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 한다.
당장 지역의 상황이 나빠진다고 해서 공장을 철수하고 이전하긴 쉽지 않겠지만, 20년 또는 그 이상을 내다볼 때 이전하는 게 맞다고 판단되면 움직이는 게 맞겠다.
투자지를 많이 선택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일단 비용이 낮아야 하고, 현지에 시장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또 그 시장이 아니면 다른 제3국으로 수출하기에 용이한 환경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트럼프발 관세 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기업들은 생산지를 어디에 둘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 현재로서는 미국에 대한 투자가 더욱 촉진될 가능성이 크다.
공급망 측면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중요한 시장이다.
▲조= 지금 당장은 대체 시장이나 내수로 전환할 여력이 없는 기업이라면, 결국 미국으로 가는 것이 맞다.
미국 경제는 당분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3억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거대한 시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전후를 변곡점으로 삼아 장기적인 투자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미국을 대체할 생산 지역은 어디인가?
▲조= 인도와 베트남이 괜찮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인도는 높은 관세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 조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구가 많아 내수 시장이 탄탄하다.
또한, 모디 총리가 제조업 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생산 기지로서의 매력도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도 투자 유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특히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대체 생산지를 찾는 기업들이 싱가포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최근 기업들이 인도에 공장을 짓고 있는 것은 트럼프발 관세 정책 이전부터 추진해 온 계획일 가능성이 크다.
인도는 전통적으로 보호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가로, 현지 진출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과거부터 인도 시장의 잠재력을 평가해 온 기업들이 이제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대체할 시장으로 EU 국가도 고려할 수 있다.
폴란드와 체코는 한국 기업들의 주요 진출지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면서도 생산 비용이 상대적으로 낮다.
이공계 인재 수준이 높고, 주변 국가와의 공급망이 원활하게 연결돼 있어 유럽 시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와의 교역 가능성도 염두에 둘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
-우리나라가 관세 조치로 반사 이익을 입을 가능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조= 우리나라와 경쟁하고 있는 타 국가 생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그만큼 가격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경쟁력이 높아지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산 전기차 같은 경우 미국에서 그동안 엄청나게 높은 관세를 부과하다 보니 미국 시장에 거의 진입하지 못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제품을 잘 만든 것도 있지만 반사이익을 일정 부분 본 것도 있다.
▲이= 장기적으로 보면 반사이익을 얻는 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중국 기업을 대체하면서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이 늘어나면 이는 대미 무역흑자 확대로 이어진다.
우리 기업들도 미국의 추가 관세 부과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피해 예상은 기본적으로 반사이익에 대한 고려를 배제한 '최악의 시나리오'로 준비하는 게 맞다.
이후 미국의 정책 기조의 변화에 따른 신규 기회 요인은 '최상의 시나리오'로 준비해 최대한의 과실을 가져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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