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을 꿈꾸는 화학 업체가 있다.
모순돼 보이는 이 목표를 실현하는 회사는 SK케미칼이다.
1960년대 '선경합섬' 시절 페트(PET)를 주력 사업으로 삼았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SK케미칼은 재활용 소재 상용화에 선두를 달리고 있다.
SK케미칼은 산업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흐름을 감지하고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를 단행했다.
SK케미칼은 코폴리에스터를 중심으로 고부가가치 친환경 소재 사업에 집중하며, 국내 석유화학 업계 내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고 있다.
2001년 세계 두 번째로 코폴리에스터 계열인 고기능성 플라스틱 소재 'PETG' 상업 생산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미국 이스트만 사가 독점하던 PETG 글로벌 시장 구조를 깨뜨렸다.
2021년에는 세계 최초로 '해중합(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활용한 코폴리에스터를 상용화했다.

"우리는 더는 새로운 페트를 생산하지 않는 미래를 꿈꾼다.
"
SK케미칼 연구개발을 총괄하는 김한석 연구소장이 최근 경기 성남 SK케미칼 본사에서 진행한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설계하고, 원래의 물성으로 되돌리는 기술을 개발해 플라스틱 순환 체계를 완성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김 소장은 1994년 폴리에스터 원료 연구 담당자로 입사했고 2020년부터는 연구소장직을 맡고 있다.
회사의 변천사를 지켜본 그는 폴리에스터부터 PET, PETG, 코폴리에스터까지 순차적으로 영역을 바꿔온 결정이 유효했다고 봤다.
SK케미칼이 '초(超)격차'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기술은 해중합 기술이다.
일반적인 기계적 재활용은 반복 시 물성이 떨어지지만, 해중합은 플라스틱을 원료 수준까지 분해한다.
이 기술은 이론상 한 번 생산된 페트를 무한히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의 슈에 사 해중합 공장을 인수해 상업화 체제를 마련했다.
국내 파일럿 플랜트인 '리사이클링 이노베이션 센터(RIC)'도 2026년 초 가동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김 소장은 "SK케미칼만의 경쟁력은 해중합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것"이라며 "화학적 재활용은 제품을 '분자 단위'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석유 기반 플라스틱과 거의 동등한 품질을 구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완결적 순환 체계(클로즈드 루프 솔루션) 구축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기술로 손꼽힌다"며 "해중합 기술로 페트를 r-BHET라는 원료로 되돌아가게 하고, 이 원료로 페트나 코폴리에스터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중합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에는 재활용이 어려웠던 유색 플라스틱이나 섬유 등도 재활용이 가능해진다"며 "한 번 재활용된 '재활용 페트'나 '재활용 코폴리에스터'를 여러 번 다시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SK케미칼은 스페셜티로 분류되는 코폴리에스터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할 계획이다.
지난해 석유화학 업계 침체 속에서도 역대 최대 실적을 이끈 사업 부문이다.
SK케미칼은 지난해 코폴리에스터 호조 덕에 2017년 사업 부문 분사 후 최대 실적인 영업이익 1111억원을 기록했다.
김 소장은 "코폴리에스터 PETG는 기존 PET로 만들기 어려운 투명하고 두꺼운 시트나 용기를 만들 수 있다"며 "투명성과 내화학성이 뛰어나 고급 화장품 용기, 건축자재, 가전 부품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를 함유하지 않고 소각·폐기할 때도 유해 물질이 발생하지 않아서 2000년대 초반 개발에 힘을 쏟았다"고 했다.
김 소장은 "재활용 원료로 만든 코폴리에스터 브랜드로 '스카이펫 CR'과 '에코트리아'가 있고, 사용 후 다시 재활용할 수 있는 '클라로' 등이 있다"며 "이를 삼다수 생수병, 오뚜기 식품 용기, 국순당 주류 병 등에 적용하기 위한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에는 자동차나 패션 등 각 산업군에서 필요로 하는 솔루션을 구현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직면한 최대 위기는 중국·중동발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력 저하다.
김 소장에 따르면 SK케미칼은 '범용 제품은 대량 생산 중심 국가에 맡기고, 우리는 기술 기반 고부가소재로 간다'는 전략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김 소장은 이러한 의사 결정이 가능했던 배경에 '혁신'이라는 사주의 확고한 방향성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섬유·보틀용 칩 등 PET 생산하던 때에도 중국이 쫓아왔었다"며 "당시 많은 회사는 원가 경쟁력에 집중했는데, 우리는 연구개발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협력 업체를 적기에 잘 찾아내는 역량도 발휘됐다.
2001년 PETG 상업화 당시에는 오랜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유럽 협력사로부터 촉매 도입에 필요한 지원을 받았고, 파일럿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일본 NJC 사를 발굴해내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2021년 해중합 사업에 진출할 때는 이미 관련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슈에 사와 손잡고 사업을 전개했다.
연구개발 인재 양성을 위한 독특한 사내 문화도 운영 중이다.
김 소장은 "연구 프로젝트의 인력을 구성할 때 성과뿐 아니라 각자의 경력 개발도 함께 고려한다"며 "이 같은 철학은 인사(HR) 체계에도 반영돼 있다.
궁극적으로는 각 연구원이 맡은 분야에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금요일 오후에는 자기 계발을 위한 자율 활동 시간 3시간을 제공하고, 사내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행사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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