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강업계가 유럽연합(EU)과 미국의 탄소 규제 강화 움직임에 직면하면서 열연강판, 강관, 후판 등 고탄소 제품에 대한 추가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 데 이어 세금부담까지 가중된 상황에서 국내 철강 수출 전략의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EU는 올해 말까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전환 기간을 운영하고,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제도를 시행한다.
CBAM은 철강, 알루미늄 등 고탄소 산업 제품에 대해 유럽 역내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올해까지는 탄소배출량 보고 의무만 적용됐지만, 내년부터는 실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직격탄을 맞게 될 품목은 전기로 대비 4~5배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고로(용광로) 기반 제품이다.
문제는 국내 철강 생산의 약 70%가 고로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 가운데 열연강판, 후판, 아연도금강판, 컬러강판 등 판재류는 핵심 품목으로 꼽히며, EU내 수출 비중 또한 높다.
EU의 CBAM이 본격 시행되면 해당 품목들은 탄소세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발표한 보고서 'CBAM 도입이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을 살펴보면 CBAM이 본격 시행되면 한국 철강업계가 10년간 EU에 부담할 탄소 비용은 최소 3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첫해인 내년 예상 부담액은 851억원이지만, 2034년에는 55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도 EU에 대응해 탄소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은 탄소세에 해당하는 청정경쟁법(CCA)을, 공화당은 외국 오염물질 부담금법(FPFA)를 발의한 바 있다.
주정부 차원에서도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워싱턴 등 주(州)가 자체적으로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운영 중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친환경 설비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해왔던 미국은 앞으로 수입 제품에도 탄소 기준을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선 미국 수출 비중이 큰 자동차용 강판, 구조용 강재, 후판 등을 잠재적인 규제 타격 품목으로 보고 있다.
이들 제품 역시 주로 고로 기반 생산 방식에 의존하고 있어, 향후 미국의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 세금 부담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대미 수출은 이미 관세 영향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한국산 철강의 3월 대미 철강 수출량은 25만t, 알루미늄은 9만6844t으로 각각 전년 동월 대비 14.9%, 4.7% 줄었다.
지난달 12일부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쿼터 내 면세 혜택을 종료하고 철강 제품에 25%의 관세를 재도입 한 영향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EU까지 이달부터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강화·시행에 나서 수출량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생산 공정의 친환경 전환에 속도를 내며 대응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수소환원제철, 탄소 포집·저장(CCUS) 기술을 개발 중이며, 전기로 확대와 고부가 저탄소 제품 개발에도 투자를 늘리는 추세다.
정부와 협력해 배출량 측정 시스템 구축과 국제 인증 체계 마련도 추진 중이다.
국내 철강업계에서는 관세와 더불어 탄소 규제가 새로운 통상 변수로 떠오르면서 수출 전략 또한 대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수출 물량을 유지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며 "미국 등 주요국의 탄소 기준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저탄소 기술로의 구조 전환과 수출선 다변화가 병행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조성필 기자 gatozz@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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