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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ey Madison poses with the leading actress award for 'Anora' at the 78th British Academy Film Awards, BAFTA's, in London, Sunday, Feb. 16, 2025. (Photo by Joel C Ryan/Invision/AP) |
화제의 중심에 오른 건 역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5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아노라’였지만, 소위 ‘뒷말’ 차원에서 풍부한 반응을 흩뿌린 건 ‘아카데미상을 ‘빼앗긴’ 데미 무어’ 이슈였다.
실제 흐름이 그랬다.
‘오스카 레이스’ 초반을 장식하는 비평가협회상 당시만 해도 ‘아노라’ 마이키 매디슨이 우세했지만, 레이스 후발로 아카데미상과 더 높은 일치도를 보여주는 골든글로브상과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선 데미 무어가 ‘뒤집기’에 성공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그런데 왜 예상을 벗어나 도로 마이키 매디슨에 트로피가 돌아갔느냐는 것. 이에 온라인상의 현지 영화마니아들은 다소 일관된 답을 내놓는다.
아카데미상 투표권한을 가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은 지난 10년간 엄청난 수로 불어났는데, 특히 미국 외 국가들서 회원을 다수 받아들인 탓에 미국 내에서 ‘서사’ 요소로 어필하는 후보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단 것이다.
여기서 ‘서사’ 요소란 ‘오스카 레이스’ 동안 해당 영화인의 성과가 재조명돼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해당 영화인이 수상해야 하는 개인적 배경, 말 그대로 영화인 개인의 ‘서사’가 크게 어필된 경우를 가리킨다.
복잡한 얘기 같지만 차례로 살펴보면 쉽다.
먼저 아카데미상 투표인단에 획기적 변화를 불러온 사건이 있었다.
2015년 아카데미상 주요 부문 후보로 유색인종이 단 한 명도 없단 점을 들어 문제를 제기한 ‘오스카 소 화이트(Oscar So White)’ 캠페인이다.
그러자 아카데미상 측에선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지적받은 여성, 유색인종, 그리고 미국 외 국가 영화인들을 회원으로 대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2015년 당시 6446명으로 알려졌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은 2024년 이르러 1만910명으로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당장 지난해만 해도 487명의 새 회원이 탄생했고, 그중엔 한국배우 강동원과 유태오, 음악감독 조영욱 등도 포함돼 있었다.
아카데미상 측에선 “올해 초청 회원 중 44%가 여성, 56%가 미국 외 56개국 출신 영화인”이라 발표한 바 있다.
엄밀히 2020년 한국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석권 신화도 이 같은 투표인단 변화에 기인해 벌어졌다고 봐야한다.
미국 외 국가에서 영어 외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들에 수상의 기회를 줄 투표인단 바탕이 마련됐던 셈이다.
또 같은 원인으로 올해 ‘데미 무어 불발 쇼크’와 같은 상황도 사실 이미 한 번 연출됐었다.
2021년의 ‘채드윅 보즈먼 불발 쇼크’다.
당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채드윅 보즈먼은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 향년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한 추모 여론과 함께 특히 비슷한 시기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여파 탓으로 이번 아카데미상은 흑인배우에 주어져야 한단 여론이 미국의 트위터 등 SNS와 각종 영화 사이트들에서 크게 조성됐었다.
그렇게 보즈먼 역시 ‘오스카 레이스’ 후발인 골든글로브상과 미국배우조합상을 휩쓸게 됐다.
그러나 막상 아카데미상은 ‘더 파더’에서 열연한 80대 베테랑 배우 안소니 홉킨스에 주어졌고, 이 같은 이변은 늘어난 미국 외 국가 투표인단 탓이란 해석이 돌았다.
미국서 벌어진 사회사건 탓에 조성된 미국 내 ‘공기’를 새로 가입한 해외 회원들이 알 리도 없고, 알더라도 그를 따라야한단 압박도 이렇다하게 느끼지 못한 탓이란 것. 해외 회원들은 그런 ‘서사’ 요소 없이 그저 자신들이 보기에 최고의 연기를 뽑았을 뿐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이 데미 무어에게서도 그대로 펼쳐진다.
데미 무어 역시 ‘서사’ 요소로 ‘오스카 레이스’ 후반부에 탄력받은 경우이기 때문이다.
출연 영화 ‘서브스턴스’ 소재와 맞아떨어지는 데미 무어 본인의 개인적 스탠스, 즉 상업영화계서 설 곳을 잃어가는 60대 이상 여배우들 현실이 하나의 ‘서사’이자 ‘테마’로서 작동하면서 PC 풍조에 크게 영향받는 SNS 등에서 동의와 지지를 얻고 각종 영화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순서. 그런데 똑같이, 해외 투표인단은 미국 내 이 같은 ‘공기’를 함께 하는 이들도 아니고 자국 배우도 아닌 데미 무어의 커리어에 대한 관심과 애착도 크게 떨어졌단 것.
둘러보면 사실 아카데미상 해외 투표인단 증가의 영향이 더 뚜렷이 보이는 부분은 다른 데 있다.
가장 주목받는 작품상 부문이다.
쉽게, 세계 최대 국제영화제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 최고상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도 오르는 경우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있단 것. 지난 5년 간만 해도 그렇다.
총 5편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 4편이 아카데미상서도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그중 ‘기생충’과 ‘아노라’는 수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이 같은 분위기는 이전 20년 동안과 비교해 보면 가히 천지개벽 수준이다.
그전 20년 동안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도 오른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고작 3편이었고, 수상작은 단 한 편도 없었다.
여기에 칸국제영화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까지 더해보면 지난 10년간 5편이 더 추가된다.
‘로마’ ‘노매드랜드’ ‘가여운 것들’ 등이다.
즉 아카데미상은 점점 더 3대 국제영화제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단 뜻이며, 그 원인으론 미국 내 시각에 머물지 않고 세계영화 흐름을 가늠하려는 미국 외 국가 투표인단의 증가가 지목되는 현실이다.
한국영화산업 입장서도 분명 인지해둬야 할 부분이다.
국제영화제 도전 의욕이 점차 줄고 있는 현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국제영화제서 좋은 성과를 보이면 세계영화계 최고 광고탑으로 여겨지는 아카데미상서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추세라서다.
그럼 당연히 글로벌 콘텐츠 수출에도 거대한 전환점이 된다.
심지어 최고상까진 아니더라도 일단 국제영화제서 주목받았으면 ‘드라이브 마이 카’ ‘존 오브 인터레스트’ ‘에밀리아 페레즈’ 등처럼 언어와 관계없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는 일도 점차 빈번해지고 있다.
그간 국제영화제를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며 산업적 지렛대로선 생각지 않아 온 풍토도 이제 개선될 필요가 있단 얘기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런던=AP/뉴시스] 배우 미키 매디슨이 1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78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시상식에서 '아노라'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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