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혜, 추미림:픽셀들 홍승혜, 픽셀에 유기적 세계 투영 추미림, 픽셀 통해 도시 풍경 재현 서로 닮은듯 다른 두 작가가 만나 교류·소통의 과정 전시 통해 연상
◆홍승혜, 픽셀로 그린 유기적 세계 홍승혜(64)가 디지털 요소를 작품세계에 끌어들인 것은 1990년대 중반이다. 1993년 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강단에 서면서 여러 행정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 홍승혜, 추미림 2인전 ‘파트너스 데스크’(2024) 전시 전경. 작가 및 디스위켄드룸 제공 | 컴퓨터를 일상적으로 다루다 보니 기본 프로그램인 ‘그림판’의 기능을 유심히 보게 되었고, 곧 프로그램 내부의 가상 브러시가 모니터 위에 찍어내는 가장 작은 단위의 네모난 점, 즉 ‘픽셀(pixel)’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픽셀 도입 이전인 1980년대에 홍승혜는 종이를 이용한 조형 실험을 거듭했다. 다이 커팅(Die Cutting) 기법을 자주 활용했는데, 다양한 모양의 금속 틀로 종이를 찍어 패턴을 따낸 뒤 화면 위에 콜라주하는 방식이다. ‘무엇을’ 그릴지에 대한 고민보다 ‘어떻게’ 배치하고 구성할지에 대한 문제에 늘 더 많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종이 실험은 그로 하여금 회화의 관습으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이후 조각 난 종이들이 더 작고 단순한 디지털 픽셀로 대체됨에 따라 조형의 가능성은 한층 무한에 가까워졌다. 홍승혜가 ‘기능적 벽돌’이라고 지칭한 픽셀들은 이후 그의 작품세계 속 핵심적인 조형언어로서 자리 잡았다. 그는 디지털 요소인 픽셀을 다루는 데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자세를 취한다. 개별 픽셀은 마치 벽돌과 같이 전체의 구조를 쌓아 올리기 위한 재료로 활용되며, 그로써 완성된 디지털 드로잉은 많은 경우 물리적 실체를 지닌 회화와 조각의 제작을 위한 청사진이 된다. 작업의 결과물들은 캔버스와 지류 위에 출력되거나, 가공 및 채색된 나무와 금속으로 구현되어 실재하는 장소 안으로 이행한다. 마치 아날로그 현실에 드리운 디지털 가상의 환영처럼. 모니터 속 디지털 픽셀들은 마치 유기적 세포처럼 서로 결합하고, 분열하고, 증식하며 다양한 형태로서 재구성됐다. 픽셀로 만든 그 형태들은 현실의 삼차원 시공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 가운데 재료의 물질성과 관계 맺으며 또 한 번 새롭게 재탄생한다. 디지털 언어를 본 따 만든 아날로그 작업들, 양가적 면모의 이 연작들에 홍승혜는 ‘유기적 기하’(2007∼)라는 이름을 붙였다. | 추미림, ‘미러 픽셀 005’(2024) | ◆추미림, 오늘의 도시를 메운 픽셀 다음 세대의 시공에서 자라난 추미림(41)에게 픽셀은 유년기부터 익숙한 개념이었다. 1990년대의 홍승혜가 디지털 픽셀에 유기적 세계를 투영해 보았다면, 2010년대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한 추미림의 시선은 거꾸로 현재의 도시 풍경 위에 디지털 모듈을 대입해 본다. 추미림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도시의 체계적 구조와 정교한 건축물들, 인공적으로 조성된 풍경들이 환기하는 감각을 디지털 모듈과 패턴, 픽셀의 조합을 통해 재현해낸다. 개별 화면은 서울 및 위성 도시들, 때로 특정한 신도시의 경관을 참조하거나 그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한다. 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동시에 구획 짓는 도로는 직선과 곡선으로 조형화되고, 아파트 단지와 창문들은 기하학적 도형들로 변모한다. 구성 및 표현 방식에는 작가의 주관적 기억과 미감이 크게 개입한다. 화면 위 기하학적 모듈들은 저마다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어 새로운 모습의 지형도를 만들어 낸다. 화면 구성의 재료가 되는 모듈은 디지털 편집 프로그램을 경유하여 얻어지는데, 그러한 디지털 작업물을 회화로 옮겨 내는 과정에서 매우 정밀한 수공 작업이 요구된다. 회화와 영상, 설치 작업을 오가며 확장되는 추미림의 작품세계는 손으로 그린 그림과 디지털로 작업한 이미지의 구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두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결과물로서의 화면은 기계와 유기체 간 긴밀한 연결망으로 직조된 오늘의 도시 생태를 은유한다. | 홍승혜, ‘액자형 부조’(2024) | ◆파트너스 데스크 홍승혜와 추미림이 한남동 디스위켄드룸(대표 김나형)에서 2인전을 연다. ‘파트너스 데스크(Partner’s Desk)’라는 제목으로 5월18일까지 진행되는 전시다. 전시명은 두 사람이 마주 앉는 대면용 책상을 가리키는 단어다. 홍승혜가 제작한 동명의 가구가 1층 전시장 중앙에 놓여 기획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여 준다. 전시를 기획한 박지형 큐레이터에 따르면 “추미림과 홍승혜가 오랜 시간 만나 각자의 세계를 꺼내어 늘어놓고 정해진 답이 없는 퍼즐을 맞추어 보는 장면을 상상하게끔” 하는 사물이다. 출품작은 홍승혜의 신작 8점과 추미림의 신작 12점을 합하여 총 20점으로 구성됐다. 홍승혜는 픽셀을 기초 단위 삼아 만든 조각과 가구,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액자형 부조’(2024)와 같이 벽면에 거는 부조 형태의 연작은 가공된 나무 패널과 거울 등 요소를 활용하여 이미지에 깊이를 부여하는 동시에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면모가 돋보인다. 픽셀로 구축한 도시 풍경을 회화와 영상, 종이 콜라주 등 다채로운 형식으로 선보이는 추미림 또한 ‘미러 픽셀’(2024) 등의 화면 배경부를 거울로 마감했다. 전시 공간 안에서 서로를 투영하는 작품들의 표면이 두 작가 간 나누었을 교류와 소통의 과정을 연상시킨다. 홍승혜가 픽셀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조형언어로 삼기 시작한 1990년대는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 기술의 발전이 미술의 언어에 가시적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넷 아트’와 ‘뉴 미디어 아트’가 미술계 화두로 떠올랐고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조형 실험이 다각도로 행해졌다. 한편 추미림이 작품 활동을 개시한 2010년대는 ‘인터넷 이후의 미술’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된 시기다. ‘복사-붙여넣기의 미학’으로 일컬어지는 디지털 시대 이미지의 생산 및 유통 방식을 고찰하는 해당 논의는 주로 1990년대를 기점 삼는다(마리사 올슨, 2008). 낯선 물결의 초입에 첫발을 디뎌 오늘로 나아온 홍승혜와 열린 물길을 숨 쉬듯 유영하는 추미림의 만남은 그러기에 흥미롭다. 전시는 같은 시공을 살아가는, 그러나 각자 다른 방식으로 헤엄쳐 온 두 작가의 시선이 교차하고 비껴가는 지점을 세심하게 살핀다. 한편 그 물의 한복판에서 태어난 다음 세대의 디지털 네이티브가 바라보는 픽셀은 과연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지 벌써 궁금해진다. 박미란 큐레이터, 미술이론 및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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