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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에피소드 제목은 왜 '빵과 복권'일까[오겜 톺아보기③]
아시아경제 기사제공: 2025-01-15 15:00:00

'오징어 게임' 시즌 2의 첫 에피소드 제목은 '빵과 복권'이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딱지남(공유)이 탑골공원에서 노숙자에게 빵과 복권을 내민다.
"내일이 없는 삶에 힘겨워하시는 선생님을 위해서 제가 자그마한 오늘의 선물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선물은 하나, 빵과 복권. 둘 중 하나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



빵과 복권은 '빵과 서커스'를 떠올리게 한다.
권력자로부터 무상으로 받는 식량과 오락을 가리키는 말이다.
고대 로마 시인인 유베날리스의 탄식에서 비롯됐다.
"시민들은 로마가 제정되면서 투표권이 사라지자 국정에 관한 관심을 잃었다.
과거에는 정치와 군사 모든 영역에서 권위의 원천이었던 시민들이 이제는 오매불망 오직 두 가지만 기다린다.
빵과 서커스를."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의도적으로 조장된 결과다.
무상 지급은 기원전 2세기 후반 그라쿠스 형제가 처음 시도했다.
당시 시민과 농민은 군단병으로 포에니 전쟁에 투입돼 살림이 빈궁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 농지가 황폐해졌다.
로마 경제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승리로 얻은 시칠리아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값싼 곡물을 대량으로 유입할 수 있어서다.
노예를 부리는 귀족들의 대농장까지 확대돼 밀 가격이 크게 폭락했다.


로마는 몰락하는 중소 자작농을 위해 밀을 대거 사들이고 싼값에 배급했다.
대상은 포풀루스, 즉 시민권을 가진 남성이었다.
곡물의 안정적 수급은 국가 발전의 필수 조건이다.
통상 식량난이나 폭정이 극에 달하면 내란이 일어난다.
군비 확대가 요구되면 증세는 불가피해진다.
다시 반란이 발생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그라쿠스 형제는 불평불만을 잠재우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안한 배고픔 해결과 오락 제공은 훗날 포퓰리즘의 효시가 됐다.



흥미롭게도 '오징어 게임' 속 대한민국에선 잘 통하지 않는다.
노숙자 대부분이 빵이 아닌 복권을 선택한다.
하나같이 배고픔보다 욕망이 앞서있다.
게임 참가자들도 다르지 않다.
상당수가 가상화폐, 부동산, 주식 등 각종 자산증식 열풍에 휩쓸려 자산을 탕진했다.
운영 요원은 이를 교묘하게 자극한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삶의 벼랑 끝에 서 계신 분들입니다.
(중략) 돌아가서 남은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쓰레기처럼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드리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시겠습니까?"


로마 시대에도 희박한 확률의 생존 게임이 있었다.
바로 검투사 경기다.
시민들에게 무료 또는 염가로 관람을 제공했다.
당시 서커스는 곡예사, 동물, 광대 등이 등장하는 현대의 그것과 의미가 달랐다.
서커스는 라틴어 발음으로 '키르쿠스'다.
본래 로마의 전차 경주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영화 '벤허(1959)'에서 관중이 열광하던 키르쿠스 막시무스가 바로 그곳이다.


로마 정치인들은 서커스를 인기몰이에 이용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대표적 예다.
조영관이던 기원전 65년에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검투사 경기를 열었다.
그는 호사스러운 지출로 경쟁자들의 의욕을 꺾었다.
시민들은 감사 표시로 카이사르에게 관직이나 명예를 찾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젖었다.



오징어 게임의 목적은 VIP들만을 위한 오락에 불과하다.
물론 게임의 본질은 똑같이 잔혹하고 광포하다.
검투사 경기는 애초 훈련받은 프로들만 출전했다.
칼리굴라의 제안으로 중죄인, 노예, 전쟁 포로 등 검술을 훈련받지 않은 사람들이 참가하면서 잔혹해졌다.


그런데 원로원 의원 등 일부 귀족은 '오징어 게임' 오일남(오영수)처럼 생지옥에 직접 뛰어들어 재미를 느꼈다.
검투사로 데뷔한 황제도 있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들인 콤모두스다.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을 살아있는 신, 헤라클레스의 환생이라고 주장했다.
정사를 측근과 원로원에 내맡기다시피 한 채 검투를 빙자한 살인을 일삼다 측근의 손에 암살당했다.
그와 함께 제국은 황혼을 맞이했다.
오징어 게임도 비슷한 전철을 밟을지 모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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