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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트]범죄자에서 사회운동가로…계기는 성전환?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과거의 죄를 씻고 타인을 구원하는 이야기다.
멕시코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는 여성의 삶을 꿈꾼다.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의 도움으로 성전환 수술대에 올라 에밀리아 페레즈라는 여성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4년 뒤 리타에게 다시 접근해 자신을 죽었다고 믿는 전처와 자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리타는 페레즈를 마니타스의 친척이라 속이고 기묘한 동거를 유도한다.
안정감을 되찾은 페레즈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고 마약 범죄에 연루돼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자크 오디아르 감독은 보리스 라종의 소설 '귀를 기울이다(Ecoute)'에 등장하는 성전환을 원하는 마약상에게서 영감을 얻어 시나리오를 썼다.
사랑과 배신, 죽음과 부활, 속죄와 구원 등을 범죄물, 로맨스,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엮어 풀어낸다.


빠른 전개까지 더해져 엉성해지기 쉬운 짜임새는 뮤지컬로 최소화하고자 한다.
장르가 변하는 시퀀스나 설명이 필요한 신에 노래를 배치해 이질감을 낮추는 식이다.
그러나 노래와 춤마저 일관성이 부족해 전개는 매끄럽지 않다.
일부 뮤지컬 신은 레오 카락스의 '아네트(2021)'를 표절한 듯한 인상도 남긴다.



뮤지컬 영화에서 노래는 주로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거나 감정을 전달할 때 사용된다.
'에밀리아 페레즈'에서는 이보다 빠른 전개나 캐릭터 설명에 방점이 찍혀 있다.


리타가 태국 방콕에서 성전환 수술 의사와 대화하는 신에 나오는 노래 '질 성형술(La Vaginoplastia)'이 대표적 예다.
의사가 리듬에 맞춰 성전환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쉴새 없이 설명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성전환 수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음경에서 질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성전환 수술은 성형수술처럼 그려지고, 생존을 위해 수술대에 오르는 사람들은 합창과 춤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된다.
트랜스젠더라는 소재를 단순히 흥미를 위한 도구로 사용한 듯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지각이 배제된 연출만큼 이야기의 골자도 헐겁다.
속죄와 구원이라는 주제 의식을 꿰뚫지 못하고 주변을 계속 맴돈다.
페레즈가 수많은 죽음을 일으킨 범죄자에서 사회운동가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조명한 탓이 크다.
무자비했던 성격이 판이해지는 계기나 사건 없이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연기에서도 인간적 고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특히 마약 범죄 피해자의 가족들을 따뜻하게 품는 얼굴에서 죄책감이나 불편함을 찾아볼 수 없다.
누가 그의 지난 잘못을 용서해주었을까. 성전환이 면죄부일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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