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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관람가라는 딱지와 무관하게, 스티브 소더버그의 ‘블랙 백’(19일 개봉·사진)은 이렇게 외치는 영화다.
선정성이나 폭력성 수위가 높아서가 아니다.
마이클 패스벤더와 케이트 블란쳇이 부부를 연기하며 뿜어내는 열기는 오크통과 샌달우드로 숙성한 향수처럼 농익었다.
고도로 훈련된 S급 정보요원인 부부가 수행하는 위험한 임무는 관능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냉정하고 지적인 영국 정보요원 조지(패스벤더)는 세버러스라는 코드명의 극비 소프트웨어 유출 사건을 조사한다.
용의선상에 오른 정보부 내부 첩자 5명 중 한 명은 조지의 아내 캐서린(블란쳇). 영화는 조지가 용의자 4명을 집으로 초대해 캐서린을 포함한 모두를 떠보는 서스펜스 가득한 만찬 자리를 비추는 데서 시작한다.
조지는 캐서린이 문제의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94분이라는 러닝타임에서 보듯 영화는 장황한 설명 없이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를 압축적으로 끌어올린다.
심리 싸움을 펼치는 조지를 따라 ‘누가 첩자인가’를 추적하는 과정이 극의 골자이지만, 더 흥미로운 건 조지와 캐서린의 ‘부부의 세계’를 엿보는 것이다.
서로를 미치도록 사랑해서 능히 살인도 저지를 수 있는, 그래서 약간은 미친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부부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짜임새 있게 펼쳐진다.
‘블랙 백’이란 정보요원으로서 숨겨야 하는 비밀을 뜻한다.
부부간에도 비밀유지는 필수다.
출장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갈 수 없다는 캐서린에게 조지는 묻는다.
“출장 어디로 가?” “블랙 백이야.” 가장 친밀한 사적 관계에서도 공적 임무의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탓에 긴장이 생기는데, 영화는 이 미묘한 심리를 십분 활용해 동력으로 삼는다.
도입과 결말부에 수미상관으로 나오는 두 번의 만찬 시퀀스는 영화의 백미다.
소더버그는 데뷔작인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1989)로 26세 나이에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후 ‘오션스’ 시리즈 같은 화려한 할리우드 상업영화 등 여러 스타일을 오가며 여전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블랙 백’이 소더버그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오락성 넘치는 수작임은 분명하다.
이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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