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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된 믿음 그 파멸을 담다

연상호 감독 영화 ‘계시록’ 21일 넷플릭스 공개
목사·형사, 실종 사건 범인 추적
그릇된 의심에 빠져 파국 치달아
확증편향 빠진 사람 세밀 묘사
연 “판타지 요소들 최대한 배제
내밀한 심리스릴러 만들려 노력”


‘넷플릭스 공무원’. 첫 드라마 연출작인 ‘지옥’(2021)으로 넷플릭스와 처음 호흡을 맞춘 이래 영화 ‘정이’(2023), 지난해 ‘기생수: 더 그레이’와 ‘지옥’ 시즌2의 연출, 드라마 ‘선산’의 극본가이자 제작자로 역할을 바꿔가며 넷플릭스와 손잡은 연상호(46) 감독에게 붙는 별칭이다.
‘넷플릭스와 전속 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나올 정도인 연 감독은 21일 공개되는 영화 ‘계시록’으로 넷플릭스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서양화를 전공한 후 독립 애니메이션으로 데뷔한 그는 2011년 첫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으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되며 이름을 알렸다.
애니메이션 ‘사이비’(2013)를 연달아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좀비물 ‘부산행’(2016)으로 첫 실사영화를 찍어 대성공을 거둔 이후에는 극장용 영화와 TV드라마,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영화 등 플랫폼을 종횡무진 오가며 장르물을 변주해 왔다.

21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계시록’(감독 연상호)은 소녀의 실종사건을 둘러싸고 범인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 ‘성민찬’(류준열)과,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담당 형사 ‘이연희’(신현빈)가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넷플릭스 제공
지난 10년간 연상호 작품세계에선 이야기의 만듦새만큼이나 시각특수효과(VFX)가 중요했다.
예고 없이 벌어지는 지옥행 선고와 종교단체 새진리회의 진실을 파헤친 ‘지옥’에선 지옥의 사자들을 구현하는 컴퓨터그래픽(CG)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기생수: 더 그레이’의 핵심은 쪼개진 인간의 얼굴에서 촉수를 뻗어내는 크리처(괴생명체)의 존재였다.
22세기를 배경으로 한 SF ‘정이’에선 첨단 CG로 만든 인공지능(AI) 로봇이 극 전체를 이끄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계시록’에선 이 모든 걸 덜어냈다.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조명 사용과 배우들의 메이크업마저 최소화했다.
대신 서늘한 전개로 긴장의 압력을 높인 서사로 승부한다.
연 감독은 18일 서울 마포구 호텔나루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고,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믿는 인물들의 파멸과 구원에 대한 이야기”라며 “이전 영화들과 달리 판타지 요소를 배제하고 사실적 톤과 연기로 내밀한 심리스릴러 형태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부터 연 감독의 절친한 친구이자 오랜 협업 파트너인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며, 영화 ‘그래비티’, ‘로마’를 연출한 멕시코 거장 알폰소 쿠아론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연 감독은 “작품 초반부터 ‘계시록’에 대해 품었던 비전을 작품 공개 때까지 지킬 수 있도록 쿠아론 감독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한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도시 외곽의 교회 개척을 신이 주신 사명으로 여기고 따르는 성민찬 목사(류준열). 어느 날 교회를 찾은 낯선 사내 권양래(신민재)를 새 신자로 여기고 환대하지만, 그가 발목에 전자발찌를 찬 전과자임을 우연히 알게 된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성 목사는 아내로부터 어떤 남자가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갔다는 전화를 받는다.
성 목사는 권양래를 범인으로 의심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의심은 어느새 확신으로 굳어진다.
교회 성도인 여중생 아영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성 목사는 범인을 단죄하는 게 신의 계시라는 믿음에 사로잡힌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자연현상에서도, 공사 중인 건물 벽에 우연히 쓰인 글씨에서도 성 목사는 자신을 위해 예비한 하나님의 섭리를 읽어낸다.
어느새 그는 죄인 권양래를 심판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게 된다.
믿음은 광기로 변한다.

성 목사가 신의 계시에 사로잡혀 그릇된 의심을 품듯,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동생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환영을 본다.
권양래와 질긴 악연이 있는 이연희가 아영 사건 수사를 담당하며 성 목사와 함께 이야기의 두 축을 맡는다.
두 주인공 모두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18일 서울 마포구 호텔나루에서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계시록’ 제작보고회에서 배우 류준열(왼쪽부터), 신현빈, 연상호 감독, 배우 신민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계시록’은 감독의 초기작 ‘사이비’를 연상케 한다.
종교와 맹목성, 사적 제재라는 코드를 경유해 ‘믿음’의 문제를 집요하게 주제화했던 애니메이션 ‘사이비’의 요소들이 변주된다.
이날 제작보고회에서 연 감독은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여러 영화를 만들어왔는데, ‘계시록’은 내 색깔을 정리하고 응축한 작품”이라며 “제 작품을 한 편도 안 본 분이 계시다면 ‘계시록’을 보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계시록’과 ‘사이비’ 주인공의 여정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사이비’는 진실을 견딜 수 없어 환상과 기만에 의지하려는 인간의 조건 탓에 ‘악은 응징되지 않는다’는 으스스한 결말에 도달했다.
이와 달리 ‘계시록’은 허상을 믿는 망가진 인간을 구할 탈출구를 일부 열어둔다.

하지만 작품이 소환하는 정신의학이라는 장치가 다소 맥빠지게 느껴진다는 게 문제다.
그릇된 믿음에 의지하고자 하는 정신병리의 기전을 소상하게 설명하는 정신과 전문의 대사를 통해 영화의 주제를 노골적으로 설파하는 결말부와, 우연이 겹쳐 인물이 너무도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도착하는 클라이맥스의 장르적 과장 탓에 단단한 듯 보였던 서사에선 긴장감이 깎여나간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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