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파괴인가, 시대상의 반영인가. 그을린 피부에 노란 드레스를 입은 백설공주를 관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19일 개봉한 디즈니 실사 영화 '백설공주'는 1937년 제작돼 100년 가까이 사랑받아온 그림 형제의 동화이자 세계 최초의 풀컬러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뮤지컬 영화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백설공주가 여왕에게 빼앗긴 왕국을 되찾기 위해 선한 마음과 용기로 맞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영화는 제작 초기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백설공주 역에 콜롬비아 출신의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캐스팅되자, 원작 설정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 원작 속 백설공주는 독일 출신으로 검은 머리와 눈처럼 하얀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을린 피부를 지닌 지글러가 주인공으로 낙점되면서 '원작 훼손' 논란이 불거졌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미국 할리우드와 스페인에서 열린 백설공주 시사회는 조용히 치러졌다.
디즈니 텐트폴 실사 영화라면 주연 배우가 참석하는 레드카펫 행사와 대규모 인터뷰가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지글러를 비롯한 주요 배우들의 레드카펫 행사 없이 진행됐다.
2016년부터 실사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온 디즈니는 원작 이미지와 맞지 않는 캐스팅 논란에서 좀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2023년 개봉한 실사 영화 '인어공주'에서 아프리카계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애리얼 역을 맡았을 때도 의견이 엇갈렸다.
원작 안데르센 동화 속 인어공주는 빨간 머리의 북유럽 백인으로 그려져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2019년 영화 '알라딘'에서 지니 역에 배우 겸 가수 윌 스미스가 캐스팅됐을 당시에도 우려가 있었지만, 윌 스미스가 탁월하게 배역을 소화하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알라딘은 국내에서 역대 25번째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양한 인종을 주연으로 세우려는 디즈니의 시도가 돋보이지만, 아시아계 캐스팅은 상대적으로 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0년 개봉한 실사판 '뮬란'은 주인공 뮬란 역에 백인 배우 제니퍼 로렌스를 낙점했다가 비판을 받고, 결국 중국 배우 류이페이(유역비·劉亦菲)를 최종 캐스팅했다.
엔딩 크레디트(영화가 끝난 뒤 제공되는 자막)를 통해 중국 정부의 인권 탄압을 정당화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디즈니가 최근 몇 년간 일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주인공을 내세운 이유는 분명하다.
오랫동안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수동적 캐릭터를 반복 묘사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디즈니는 '뉴웨이브 프린세스'(New-wave Princess)를 내세우며 모아나,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 뮬란 등 능동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
또 2020년 디즈니플러스에서는 "작품에 등장하는 스테레오타입은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립니다"라는 인종차별 경고문을 삽입하기도 했다.
이후 디즈니는 편견에 맞서는 사회 운동인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태도)를 본격적으로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이를 두고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긍정적 시도로 보는 시각과, 지나친 PC주의가 작품의 매력을 해친다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논란 속에서도 할리우드 배우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라틴계 배우 에바 롱고리아는 백설공주 논란에 대해 "이제 라틴계 배우가 메인 역할을 맡는 시대가 왔다"며 "그동안 할리우드는 다양성 측면에서 뒤처져 있었다"고 말했다.
공주는 백인이어야 한다는 '화이트워싱'(White washing·인종과 상관없이 백인을 캐스팅하는 관행)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라틴계 백설공주가 라틴계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캐스팅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피부색보다 중요한 건 캐릭터의 정체성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유색인종 캐스팅은 문화 다양성을 위해 필요하며,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더 중요한 건 완성도"라며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작품의 퀄리티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콘텐츠는 지금의 대중 감수성에 부합해야 한다.
차별적 요소나 시대착오적인 표현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하며, 이런 고민 없이 변화를 무조건 과도한 PC주의로 치부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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