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세르게이 브린·래리 페이지(구글).
이들은 모두 미국 국적의 억만장자이자, 국가에 맞설 정도의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이들이 위협적인 이유는 단순히 부유해서가 아니다.
기존에 국가가 수행하던 역할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 부호 1위에 오르는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이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로레알 상속자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메예르스 등 다른 억만장자들과 달리 '트랜스휴머니즘'을 지향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사상으로, 인류의 화성 이주, 불멸, 기억 이식 등을 목표로 한다.
프랑스의 경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들 다국적 기업이 우주, 보건, 국방, 외교, 교육 등 핵심 분야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세계가 민주주의 역사상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이 신흥 재벌들은 정부의 고유 권한 일부를 빼앗고 있다"며 주권 행사 주체로서 정부가 맡는 고유한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미국 우주 산업의 주도권이 이미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로 넘어갔다고 분석한다.
미국은 냉전 시기 러시아와 치열한 우주 경쟁을 벌였지만,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고 이후 동력을 잃었다.
발사 1분 만에 폭발한 사고로 7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으며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이후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이, 머스크는 스페이스X를 통해 민간 우주 사업을 추진했고, 현재 저궤도 위성 3분의 1(3,660기)을 보유하게 됐다.
국방 분야에서 빅테크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에 위성 인터넷을 제공해 드론 공격 등 디지털 전투를 지원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정보를 백악관에 신속히 전달해 피해를 막았다.
구글은 GPS 부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유튜브와 페이스북은 심리전에 활용됐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사회 혼란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페이스북 내부 고발자인 프랜시스 하우건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이용자 정보를 여론 기관에 넘기고,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타깃 메시지 발송에 협조했다.
가짜 정보 유통도 심각한 문제다.
2020년 미국 대선 당시 페이스북에선 부정 투표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정치 콘텐츠 조회수의 10%를 차지했고, 트럼프가 이를 선동 도구로 사용하면서 2021년 1월 연방의회 의사당 폭동으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은 이러한 허위 정보를 제재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는 콘텐츠를 방치하거나 노출을 늘려 광고 수익에 집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통제는 쉽지 않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는 머스크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통신 지원을 중단할까 우려한 바 있다.
머스크는 2022년 대통령이나 외교 당국과 협의 없이 트위터에 우크라 평화 중재안을 올려 백악관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버드대 사학자 질 르포어는 머스크를 겨냥해 "그는 스스로를 대통령 위에 있는 존재로 여긴다"고 지적했다.
머스크는 대만을 홍콩처럼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으며 중국 정부에 유화적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상하이에 위치한 테슬라 공장이 아시아 시장 진출의 핵심인 만큼 중국 정부의 지원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저자는 국가 통제에서 벗어난 빅테크를 견제한 사례로 중국을 언급한다.
마윈이 이끄는 엔트그룹은 중국의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으로, 애플페이(오프라인 결제), 페이팔(온라인 결제), 마스터카드(신용카드 결제), 벤모(송금), JP모건(융자), 아이셰어즈(투자)를 모두 아우르는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10억명에 달하는 중국인이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국가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했다.
결국 정부는 엔트그룹을 견제했고, 2020년 10월 마윈이 돌연 공개석상에서 사라진 이후 엔트그룹은 6개로 강제 분할됐다.
저자는 마윈이 호텔 등에 억류돼 심리적 압박을 받는 중국식 ‘백색고문’을 당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이는 일반적인 법치국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인다.
또한 저자는 보다 바람직한 사례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 좌초를 소개한다.
리브라는 2019년 페이스북이 추진한 암호화폐로, 글로벌 결제 수단으로 키우려 했지만, 통화 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에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이 강력히 반발했고, 결국 페이스북은 이를 포기했다.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 브뤼노 르 메르는 "다국적 기업이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정부와 같은 통화 권력을 갖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며 "정부는 국민의 통제를 받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구글 전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미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메시지와 위치 정보를 분석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앞으로 어디로 갈지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 개인의 일상이 민간 기업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저자는 "테크계 억만장자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선거를 치를 필요도, 쿠데타를 일으킬 필요도 없다"며 "이미 필요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기술적 폭력에 맞서 자유를 되찾으려면, 쇼츠 콘텐츠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대안을 마련하는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 위에 군림하는 억만장자들 | 크리스틴 케르델랑 지음 | 배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308쪽 | 1만9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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