뽐뿌 뉴스
문화뉴스 입니다.
  • 북마크 아이콘

광고, 시장을 흔들고 세상을 바꾸다

광고계 거장이 세계광고사 본격 엮어내
기법·트렌드 등 소개 백과사전처럼 정리
단순한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광고 탈피
문화 이끄는 첨병 보여주는 사례 풀어내
광고 전설들 ‘사기 열전’처럼 등장 눈길
쟁쟁한 인물들의 업적·영향력 등 나열해


유혹의 전략, 광고의 세계사 - 하드 셀과 소프트 셀은 어떻게 세상을 중독시켰는가/ 김동규/ 푸른역사/ 4만5000원

‘남자 노예 셈이 좋은 주인인 하푸 마스터로부터 도망쳤습니다.
··· 그는 힛타이트족인데 키가 5피트 2인치이고 혈색 좋은 얼굴에 갈색 눈입니다.
셈의 거처를 알려주는 사람에게 금화 반 닢을 드리겠습니다.
그를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일 좋은 옷감을 짜주는 직물장인 하푸의 상점으로 직접 돌아오게 해주는 분께는 금화 한 닢을 드리겠습니다.


문서로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광고는 기원전 2000년쯤 이집트 11왕조 수도 테베의 폐허에서 발견된 파피루스다.
오늘날로 치면 광고용 전단이다.
내용 가운데 후반부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제일 좋은 옷감을 짜주는 직물장인 하푸의 상점’은 현대 기업PR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가장 오래된 광고. 기원전 2000년 이집트 나일강에서 자생하는 파피루스로 제작됐다.
푸른역사 제공
황홀한 표정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금발의 미녀와 쌍을 이뤄 스텝을 밟는 무표정의 시크한 남자. 20세기 초 ‘애로우(ARROW)’ 드레스 셔츠 광고에 등장한 이 남자는 당대 미국 청년들의 롤 모델이자 여성들이 선망의 눈으로 쳐다본 이미지였다.
발표된 지 10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 봐도 놀라운 미적 균형과 고급스러움을 과시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제작된 것처럼 남성적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이 선망하는 이상적 캐릭터를 만든 다음 ‘제품과 소비자의 자기 동일시’를 끌어낸 역사상 최초 사례다.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 ‘트로이의 헬렌, 뉴욕’에 영감을 주는 등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각지에서 가상의 남자 ‘애로우맨’ 앞으로 보내온 여성들의 팬레터가 하루 1만7000 통을 넘길 정도였다.

여러 광고상을 거머쥔 현장 출신의 대학교수가 세계광고사를 본격적으로 엮어냈다.
광고의 기법이나 트렌드 등을 소개하는 데서 적당히 멈추지 않고 백과사전처럼 정리한 것은 큰 미덕이다.
소비자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망치(하드 셀)’와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는 ‘솜사탕(소프트 셀)’을 축으로 시대적 변화나 세계사적 흐름을 짚어낸다.

김동규/ 푸른역사/ 4만5000원
이를테면 2차 대전이 한창일 때는 근육질의 여성 노동자 ‘리벳공 로지’류의 광고가 득세했다가 종전 후엔 여성 노동자의 가정주부 이미지를 강조하는 광고들로 대체됐다.
전쟁 중엔 군수품과 무기 생산을 위해서 가용 여성노동력을 공장으로 집중시켜야 했다.
그러나 승리가 눈에 보이자 공장노동도 중요하지만 가사 또한 여성의 의무라는 내용을 늘려나갔다.
전쟁에서 돌아올 남성들의 일자리 확보 ?문이었다.
당면 과제를 달성하면서도 기존 가부장 질서의 전면적 해체를 원하지는 않는 주류 미국사회의 요구를 광고에 투영시킨 것이다.

순수예술과 상품 광고의 첫 만남으로 기록된 ‘피어스 비누 광고’,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극우파 골드워터 후보를 한 방에 꺾은 린든 B 존슨 후보의 ‘데이지 걸’ TV 광고 등을 보면 광고가 ‘세상의 거울’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애로우맨’. 제품과 소비자의 ‘자기동일시’를 이끌어낸 최초 사례다.
푸른역사 제공
저자는 단순히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광고만 다루지 않는다.
광고가 문화를 반영하는 ‘거울’을 넘어 문화를 이끄는 첨병임을 보여주는 사례 또한 풍성하게 배치했다.
세계 최장의 광고로 마초적인 남성상을 뇌리에 심은 말보로 담배의 ‘말보로맨’을 오래 기억한다.
그러나 2001년 암환자원조협회의 의뢰로, 제작사 오길비 앤 매더가 전설의 헤비스모커 말보로맨을 비틀어 만든 광고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황량한 벌판에 쓰러진 말을 난감하게 바라보는 카우보이가 등장하는 광고의 카피는 “간접흡연이 죽입니다”였다.
호소력이 뛰어난 금연 캠페인의 상징으로 남았다.

일상언어가 되어버린 ‘따봉’. 포르투갈 말로 ‘매우 좋다’는 뜻이다.
푸른역사 제공
‘따봉’은 어떤가. 1989년 국내 한 오렌지 주스의 TV 광고에 등장한 이 포르투갈 단어는 국어사전에 등재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을 만큼 대박을 터뜨렸다.
대개 유행어는 생명주기가 짧다.
그러나 ‘따봉’은 일상언어에 스며들었다.
지금도 50대 중반 이상은 자신도 모르게 ‘매우 좋다’라는 뜻으로 ‘따봉’을 외치곤 한다.

광고계의 전설로 기억되는 거장들이 마치 ‘사기 열전’처럼 등장하는 것도 읽는 재미를 배가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알버트 라스커’, ‘냉혹한 저격수 클로드 홉킨스’, ‘광고의 피카소 윌리엄 번벅’, ‘크리에이티브의 왕 데이비드 오길비’ 등 쟁쟁한 인물들의 업적과 영향력을 나열한다.

‘신부와 수녀의 키스’.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베네통의 ‘쇼크 광고’ 중 하나. 푸른역사 제공
1990년대 ‘신부와 수녀의 키스’ 등 발표할 때마다 세계적 논란을 일으킨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베네통의 ‘쇼크 광고’를 제작한 올리비에로 토스카니. 그가 그토록 파격을 추구한 데는 전 세계적 마케팅을 펼치기에는 베네통의 자금이 넉넉지 않았던 데다 의류는 비교 우위적 하드셀 소구가 어려운 상품이란 사정이 작용했다.
세계적인 불매운동이 일면서 베네통을 떠났다가 복귀하는 등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였다.

‘리벳공 로지’. 2차 대전 중 여성은 강하므로 중노동도 감당해낸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푸른역사 제공
토스카니가 만든 최초의 베네통 광고는 아동복인데도 아이 모델을 쓰지 않았다.
대신 테디 베어 인형을 등장시켜 소비자 주목과 흥미를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카피를 줄이고 비주얼 중심의 파격적 표현을 고집한 것이 특징이다.
십몇 년 동안 베네통 캠페인에 등장한 언어적 요소는 ‘United Colors of Benetton’이란 슬로건 딱 하나뿐이었다.
인종과 종교 갈등, 차별과 폭력 같은 반목을 이겨내고 인류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오직 비주얼을 통해 풀어낸 것이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뉴스 스크랩을 하면 자유게시판 또는 정치자유게시판에 게시글이 등록됩니다. 스크랩하기 >

0
추천하기 다른의견 0
|
  • 알림 욕설, 상처 줄 수 있는 악플은 삼가주세요.
<html>
에디터
HTML편집
미리보기
짤방 사진  
△ 이전글▽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