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메달리스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만 거머쥘 수 있는 영광의 이름이다.
메달의 색이 결정되는 순간 대중은 열광하고 언론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 기분과 승리의 비결 등을 묻는다.
이 과정에서 선수가 어떤 연습을 하고 어떻게 역경을 헤쳐왔는지는 사실 큰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승리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영광은 찰나에 그친다.
은퇴한 선수들은 하나같이 스포츠로 가득했던 삶이 끝나면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정체성과도 같았던 일을 승리로 마무리해도 희열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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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 비숍 지음/ 정성재 옮김/ 클랩북스/ 2만5000원 |
1988 서울 올림픽에 출전한 육상 선수 벤 존슨은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금메달을 손에 넣었으나 사흘 뒤 불법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밝혀져 수상이 취소됐다.
그가 누린 영광의 시간은 고작 55시간.
이는 스포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국내에서 논란이 되는 ‘4세 고시’ ‘7세 고시’도 마찬가지다.
명문대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만들어진 변종이다.
그렇다고 명문대 입학이 종착지도 아니다.
사회에 나와서 또다시 치열한 경쟁을 겪어내야 한다.
해외 언론은 “한국 학생들은 성적은 뛰어나지만, 자살률 또한 심각할 정도로 높다”고 문제를 지적한다.
어디 한국뿐이랴. 영국에서도 갓 기저귀를 뗀 2년 6개월 아기의 사교육을 걱정한다.
최초의 달 착륙에 성공하며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버즈 올드린조차, 지구에 돌아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이쯤 되면 한번 생각해보자. 경쟁과 승리의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는 왜 승리에 집착하는가.
‘롱 윈’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조정 선수이자 분쟁 지역에 파견된 외교관이라는 전혀 다른 커리어를 경험한 저자가 고민한 지속 가능한 성공에 대한 얘기다.
그래서 부제도 ‘찰나의 영광을 넘어 오래 지속되는 승리로’다.
미국 교육학자 케런 아널드 전 보스턴칼리지 교수가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고등학교 성적은 대체로 대학까지는 이어지나 직장에서의 성과와는 무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그저 학교에서 ‘규칙을 잘 따르고 시험에 필요한 것만 공부하는 태도’로 학교 안의 성공만 이뤘을 뿐, 직장에서는 기존 범주를 뛰어넘지 못했다.
저자는 결국 삶을 평가할 때 승리와 실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과정으로서의 삶은 철저히 무시되는 만큼 ‘승패 이분법’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분법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원하는 성공의 모습과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고 △당장의 결과가 어떻든 배움의 자세를 잃지 않고 △사람들과 꾸준히 연결돼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공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개념이다.
승자의 메달을 얻는 것보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할 수 있는 더 큰 게임이 존재한다.
21세기에 승리란 무엇일까? 우리 모두 다시 정의해야 할 때다.
”(364쪽)
정진수 기자 je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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