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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박보검 "자식 잃은 부모 마음, 연기로 다 표현 못하죠"


“소 죽은 귀신이 씌었나. 뭔 놈의 게 지껄이지를 않아.”


1960년대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서 살아가는 생선장수의 아들 양관식은 첫사랑 애순에게 볼멘소리를 듣는다.
평소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지만, 노점에서는 "양배추 달아요"를 외치며 애순의 자존심을 지켜준다.


소꿉친구 애순과 부부가 된 관식은 모진 시집살이를 견디다 못해 "나랑 살러 왔지, 이 집 며느리 살러 온 사람 아니다"라며 집을 박차고 나온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시청자의 눈물을 쏙 빼놓은 배우 박보검(32)을 만났다.


24일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만난 박보검은 "애순과 관식을 지켜주는 도동리 마을 사람들처럼, 우리 삶에도 따뜻하고 선한 분들이 계시다"며 "약자를 보호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관식은 아내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꽃을 심는다.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던 시절, 아내와 딸이 겪는 차별에도 결코 눈감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관식을 두고 ‘현실에 없는 유니콘 같은 남자’라며 감탄했다.


박보검은 "제 딸이 있다면 관식 같은 사람과 결혼하라고 말할 것 같다"며 웃었다.
"관식이 판타지 같은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우리 주변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죠. 드러나지 않았을 뿐.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과묵하지만 우직하고 기대고 싶은 사람. 연기하면서도 자꾸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관식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죠."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힌 ‘셋째 아들을 잃는 장면’을 촬영하던 날, 비가 내렸다.
박보검은 "참 이상하고 신기했다"고 그날을 떠올렸다.
해녀 3인방을 비롯해 보조 출연자들까지 모두가 부부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그 순간, 그는 오롯이 감정에 몰입했다.
"나와 애순이를 닮은 작은 생명체가 나를 기다리다 떠났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차마 아이 얼굴도 못 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은 감히 연기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어요."


폭싹 속았수다는 그가 2022년 해군 전역 후 선택한 복귀작이다.
박보검은 대본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여운을 기억했다.
"글만 읽었는데도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졌어요. 인물의 서사가 머릿속에 착착 그려지는, 신기한 경험이었죠. 아마 앞으로 유채꽃을 보거나 봄이 오면 이 작품이 생각날 것 같아요."


‘섬놈’ 관식을 표현하기 위해 체중도 4~5kg 늘렸다.
"관식처럼 성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는 관식을 보며 ‘나는 잘하고 있나? 나도 묵묵히 해내는 사람인가’ 돌아보게 됐죠. 사람을 잘 챙기고, 일도 잘하는 덕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박보검의 긍정적인 성향은 현장에서도 빛났다.
아이유는 "박보검이 촬영장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환해졌다"고 말했다.
박보검은 인터뷰 자리에서도 기자들에게 살뜰히 안부를 묻는다.
"즐겁게 일하는 게 좋아요. 제가 밝은 기운을 전하면 다 같이 재밌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릴 때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로 살아와서인지 힘들진 않아요. 그저 다 같이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음악에도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전역 후 뮤지컬 무대에 올랐고, 대학원에서는 음악을 전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KBS2 ‘내일도 칸타빌레’ MC로 매주 가수들과 만나고 있다.
"음악은 리듬과 운율이 있는 연기라고 생각해요. 음악인은 음악으로 연기하는 사람이고요. 곡이나 가사를 쓰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죠. 내 이야기를 음악으로 푼다는 건 참 용기 있는 일 같아요."


"음악의 힘은 대단하잖아요. 갑자기 음악이 스며들면서 감정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언젠가 제가 만든 음악이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는 날을 꿈꿔요. 그때까지 꾸준히 공부하며 준비할 거예요."


폭싹 속았수다는 인생의 사계절을 그린 작품이다.
박보검은 지금 자신의 인생이 ‘봄’에 있다고 했다.
"군 제대 후 카메라 앞에 다시 선 첫 작품이니까요. 지금 제 계절은 봄이에요. 이 작품으로 꽃을 심고, 싹을 틔워서 꽃을 피웠다면, 곧 차기작 ‘굿 보이’가 공개되면 활기찬 여름이 오지 않을까요."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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