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영화로 개봉하고, 2011년에는 뮤지컬로도 제작된 ‘원스’에서 주인공 ‘가이’는 늘 기타를 메고 다니는 거리의 음악가다.
원스를 번역한 황석희는 가이의 모습에서 때때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석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타를 쳤고, 20대엔 밴드 활동을 거의 10년 가까이 했다.
밴드를 그만둔 뒤로도 약 4년간 버스킹을 했다"고 말했다.
그의 방에는 기타 네 대가 걸려 있다.
그는 "기타는 시도 때도 없이 그냥 끌어안는 친구 같은 존재"라며 "아무 때나 꺼내어 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악기"라고 덧붙였다.
그런 그에게 영화 원스 번역은 설레는 작업이었다.
"영화 내내 거리에서 음악하는 장면이 굉장히 많다.
나도 거리에서 노래를 많이 했기 때문에 너무 익숙하다.
가이가 부르는 노래들은 버스킹할 때 자주 불렀던 곡들이라 더 애정이 갔다.
"

뮤지컬 원스는 2012년 미국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2014년 12월부터 2015년 3월까지 국내에서도 초연됐다.
초연 이후 10년 만인 지난 2월 19일, 서울 코엑스 신한카드 아티움에서 재연 무대의 막이 올랐다.
제작사 신시컴퍼니는 재연 무대를 준비하며 황석희에게 새롭게 번역을 맡겼다.
그는 "영화 번역을 했던 작품이라 뮤지컬도 꼭 해보고 싶었다"며 "원작 영어 대본에 있는 재미있는 부분들을 초연 때보다 더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원스는 여느 뮤지컬과 달리 오케스트라 반주가 없다.
대신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직접 16개의 악기를 연주하며 음악을 만든다.
중심 악기는 가이가 연주하는 기타다.
황석희는 "기타가 익숙해서 여러모로 마음이 편한 작업이었다"고 했다.
그는 노래 속 대사의 말맛을 살리기 위해 몇 곡은 직접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가이드 녹음을 해 배우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원스에 등장하는 음악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리시 포크 장르라는 점도 즐거운 요소였다고 말했다.
"포크 음악을 워낙 좋아해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

원스는 우연히 만난 남녀가 서로에게 반하지만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쩌면 수없이 반복된 낡은 이야기 같은 이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가 아이리시 포크 음악 때문일 수 있다고 황석희는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번역했던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해 포크 음악의 매력을 설명했다.
"코엔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을 번역한 적이 있다.
굉장히 좋아하는 포크 음악 영화인데, 재미있는 장면에서 ‘포크라는 게 그놈이 그놈이죠’라고 번역한 대사가 있다.
사실 원문은 ‘낡아지지도 않고 새로워지지도 않는 것, 그게 포크다’이다.
포크는 누군가에겐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굉장히 힙하게 다가올 수 있는 음악이다.
"
황석희는 최근 개봉한 밥 딜런의 전기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도 1990년대 음악을 다루지만 포크 음악이기 때문에 촌스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영화 원스보다 뮤지컬 원스가 더 완성도가 높다고 평했다.
"영화 원스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영화가 상도 많이 받았지만, 사실 인디밴드 홍보용으로 제작된 영화라 다소 허술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뮤지컬로 각색되면서 영화에서 소모됐던 인물들에 서사가 부여되고, 많은 부분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뮤지컬 원스는 더 풍성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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